가요계 덮친 '음원 사재기' 의혹, 그 뒷이야기

[문화연예 연말정산 ⑤] 우려 목소리 여전…긍정적 변화 움직임도

CBS노컷뉴스가 2015년의 끄트머리에서 올 한 해 문화·연예계를 달군 굵직한 사건들을 되짚어 보는 자리를 마련했습니다. 차곡차곡 모아 온 관련 자료와 정교한 시선으로 사건의 현재와 흥미로운 뒷이야기를 전합니다. [편집자 주]

글 싣는 순서
① 유병재·최민수·김미화와 함께 기록한 '세월호 1주기
② 승자 없는 서울시향 사태, 남은 건 언론의 마녀사냥
③ 네 번 터진 '천만영화'…그 이면의 '양극화'
④ "빼앗긴 '볼 권리' 되찾자"…영화계·국회는 '불구경'
⑤ 가요계 덮친 '음원 사재기' 의혹, 그 뒷이야기
(계속)

(사진=스마트이미지 제공)
지난 9월 가요계에는 먹구름이 잔뜩 꼈다. 한동안 잠잠하던 음원 사재기 의혹이 다시 수면 위로 올라온 탓이다. 음원 사재기는 음원차트 순위 조작 또는 저작권사용료 수입을 목적으로 저작권자 또는 저작인접권자가 특정 음원을 부당하게 구입·반복재생하거나, 불법 업체 및 기타 관련업자를 통해 해당 음원의 순위를 높이려는 행위다.

높은 음원차트 성적이 인기의 바로미터가 되면서 생겨난 일. 업계에서는 음원 사재기 의혹은 온라인 음원시장 초창기부터 존재했으며, 특히 지난 2012년부터 가요순위 프로그램의 부활, 저작권 사용료, 순위로 산정되는 행사 출연료 등과 같은 경제적 수익과 맞물려 심각해졌다고 분석한다.

지난 2013년 SM·YG·JYP엔터테인먼트와 스타제국 등 대형기획사들이 합심해 '사재기 브로커'를 검찰에 고발했지만 증거 불충분으로 불기소처분 된 적도 있다. 문화체육관광부(이하 문체부)의 사재기 방지대책 발표 및 검찰조사 등으로 잠시 수그러들었던 음원 사재기 의혹은 왜 다시 뜨거운 감자로 떠오른 걸까.

◇ '차트 믿을 수 있나?' 불신 이어져

이번에는 가짜로 의심되는 동일패턴 아이디가 무더기로 발견된 것이 문제였다. 지난 9월 말 종합편성채널 JTBC '뉴스룸'이 이를 집중적으로 보도했는데, 국내 최대 음원사이트 멜론에서 특정 가수에게만 '팬 맺기'를 한 동일 패턴 아이디가 적게는 1,000여 개에서 많게는 수만여 개가 발견됐다는 내용이었다.

동일패턴 아이디는 앞의 영어 조합은 같지만, 뒤에 숫자만 다르게 만들어진 아이디를 뜻한다. 해당 아이디들은 특정 가수만 팬으로 등록하고 최근 들은 곡이 거의 없는 경우가 많았고, 이 아이디들이 사재기에 이용된 게 아니냐는 의혹이 제기됐다.

당시 논란의 중심에 선 멜론 측은 CBS노컷뉴스에 "동일패턴 아이디를 인지하고 있었으나 '팬 맺기' 이외 부정적 움직임이 없어 제재하지 않았다"고 해명했다. 또 "동일 음원을 지속적으로 스트리밍이나 다운로드를 할 경우 자체 필터링 시스템에 의해 순위에 반영되지 않는다"는 입장을 밝혔다.

멜론 측의 해명에도 논란은 쉽게 가라앉지 않았는데, 이용자들 사이에서는 "음원 차트 순위를 믿을 수 없다"는 불신이 생겨났다. 차트에서 좋은 성적을 거두고 있는 가수들의 리뷰 코너에는 악성 댓글이 지속적으로 게재됐고, 일부 기획사는 "음원 사재기 루머를 양산하는 악플러들을 상대로 형사고소를 진행하겠다"고 엄포를 놓기도 했다.

◇ '이번엔 뿌리뽑자' 한 목소리

(사진=JTBC 방송화면 캡처)
한편 가요계는 '이번에는 음원 사재기를 제대로 뿌리뽑자'고 뜻을 함께했다. 가수들은 방송에 출연해 직접 입을 열었고, 관련 협회들도 좀 더 기민한 움직임을 시작했다.

박진영은 지난 10월 초 JTBC '뉴스룸'에 출연, "음원 사재기가 회사 차원에서만 한다고 생각하는 건 맞지 않는 생각일 수 있다. 회사 소속의 개인이 할 수도 있고, 혹은 작곡가가 할 수도 있고 연예인 본인이 할 수도 있다. 가능성은 여러 가지"라며 수사의 필요성을 강조했다.


또한 이승환은 같은 방송에 나와 "음원사재기는 가요계의 공공연한 비밀이다. 음원 브로커로부터 연락을 받은 적이 있다. 순위를 올려 줄 테니 수억 원을 달라고 했다"고 밝혀 이목을 끌었고, 양현석은 기자들과 만난 자리에서 "필요하다면 다시 검찰에 고발할 생각"이라고 언급하기도 했다.

한국음악콘텐츠산업협회(음콘협)도 나섰다. 음콘협은 문체부와 함께 '음원차트 정책위원회'를 운영, 국내 주요 음원차트에서 발생하는 음원 사재기 방지를 위해 4가지 목표를 가지고 공동 대응하겠다는 방침을 밝혔다. 음원 사재기에 대한 처벌 기준 마련, 사재기 방지를 위한 정책적·기술적 가이드라인 제시, 사재기 패턴에 대한 지속적인 모니터링, 사재기 신문고 운영 계획 등에 대한 내용이 포함됐다.

한국음악레이블산업협회 주최로 열린 '디지털 음악산업 발전 세미나'
'끝장 토론'도 열렸다. 한국음악레이블산업협회 주최로 열린 '디지털 음악산업 발전 세미나'에는 토론 발제자인 경희대 김민용 교수를 비롯해 멜론 박진규 대외협력실장, 엠넷닷컴 이동헌 디지털뮤직사업부장, 기타리스트 신대철 등 업계 관계자들이 참석해 음원사이트의 문제점과 개선 방향을 논의했다.

이후 조용한 변화의 바람도 불었다. 음원사이트들이 '음원 추천제 폐지'를 선언한 것이다. 추천제는 음원사이트 차트 상단에 특정 음원이 노출되는 제도로, 추천 음원이 되면 자연스럽게 순위 상승에 탄력을 받는다. 상위권에 오르지 못한 콘텐츠를 더 많은 대중에게 알리자는 취지이나 선정 기준이 명확하게 공개되지 않으면서 형평성 논란이 제기되어 왔다.

10월 말 CJ E&M이 운영하는 엠넷닷컴을 시작으로 KT뮤직이 운영하는 지니, 벅스 등이 추천제를 폐지했다. 건전한 음악생태계 조성을 위한 긍정적인 움직임이 일어난 셈. 하지만, 국내 최대 음원사이트 멜론은 여전히 음원 추천제를 유지하고 있다.

◇ '언제 다시 터질지 몰라' 우려 목소리 여전

최근 업계 분위기는 어떨까. 관계자들은 "한창 뜨거웠던 논란이 연말 들어 잠잠해졌다"면서도 "명쾌하게 해결된 것이 없는 것 같아 아쉽다"고 입을 모았다.

업계 관계자 A 씨는 "음원 사재기 논란이 이후 기획사 간은 물론, 가수와 기획사 간의 불신도 생겨났다"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자신의 음원 순위가 낮을 경우 '왜 우리 회사는 나에게 투자를 하지 않을까'라며 섭섭한 감정을 드러내는 가수들도 있다더라. 명확한 대책이 나오지 않았고, 근거 없는 소문이 계속 나돌기 때문"이라고 분위기를 전했다.

인기 그룹이 속한 가요기획사 관계자 B 씨는 "우리 기획사는 애초에 음원 사재기와 관련한 제의도 받은 적이 없는데, 악성 댓글로 피해를 입는 등 애꿎은 희생양만 됐다"고 토로하기도 했다.

그런가하면, 한 가요기획사 대표 C 씨는 "일시적으로 줄어들었을 뿐 음원 사재기가 완전히 없어진 것 아니다"라는 이야기도 꺼냈다. 그는 "논란 이전과는 방식이 조금 달라졌다. 예전에는 브로커들이 대놓고 기획사 측에 '음원 사재기를 해보라'고 제안했다면, 요즘은 '홍보에 도움이 될만한 방법이 있는데 예산을 검토해보라'는 식으로 제안을 해오고 있다"고 설명했다.

이어 "현재와 같은 상황이라면, 음원 사재기 논란이 또 언제 터져나올지 모른다. 소속 가수를 띄우기 위한 기획사 입장에서 무시해버리기엔 워낙 강한 유혹이기 때문"이라며 "과거에도 기획사들이 검찰에 수사를 요청했다가 흐지부지된 적이 있지 않나. 그만큼 쉽게 뿌리 뽑힐 수 있는 문제가 아닌 것 같다"고 우려를 표했다.

◇ '근본적 해결책 절실' 긍정적 변화 움직임

취재 결과 음콘협 및 주요 음원 유통사 관계자들은 지난달 20일 문체부와 정책 회의를 갖고, 음원 사재기 근절 방안을 논의한 것으로 확인됐다. 사재기 주요 패턴과 이를 방지하기 위한 정책·기술적 시스템, 향후 대응 방침 등을 공유한 자리였다.

특히 이날 유통사 관계자들은 사재기 유인 우려가 있는 '0시(자정) 음원 발매'에 대한 문제점을 함께 고민하고, 이를 억제하기 위한 정부 차원의 공문이나 행정지도 근거를 마련해달라고 요구했다. 0시 음원 발매는 불법 사재기 업체가 이용자 수가 적은 새벽 시간대를 공략한다는 점과, 이 시간대 형성된 순위가 다음날 오전까지 영향을 미친다는 점에서 문제로 지적되어 왔다.

이에 문체부는 지난 11일 음콘협 및 음원 유통사들에 '음원사재기 유인 발생의 우려가 있는 음원 유통 및 차트 집계 시간에 대한 조정(통상적 업무시간 이내)에 대한 합리적인 대책을 추진해달라'는 내용의 공문을 보냈다. 유통사들 역시 0시 음원 발매 폐지를 "긍정적으로 검토하겠다"고 밝혔다.

◇ 법적 처벌 근거 없어…관련 법안 2년째 국회 계류 중

가장 큰 문제는 아직 음원 사재기를 처벌할 수 있는 구체적인 법적 근거가 없다는 것이다. 국회 미래창조과학방송통신위원회 소속 최민희 의원이 음원 사재기를 금지하고 위반 시 영업정지 등의 행정처분과 과태료 부과처분을 하는 '음악산업진흥에 관한 법률' 일부개정법률안을 국회에 제출했지만, 2년째 계류 중이다.

출판계의 경우 출판문화산업진흥법에 사재기 행위를 금지하고, 이를 어겼을 경우 2년 이하의 징역과 2천만원 이하 벌금을 부과하는 처벌 규정이 있다. 인위적으로 '베스트셀러'를 만들어 책 판매량을 높이려는 '꼼수'를 막기 위한 제도다.

한 음원사업업계 관계자는 "음원 사재기는 소속 가수를 차트 1위로 올려 놓으려는 기획사뿐만 아니라, 정산금을 노리는 작곡가 및 창작자들에 의해서도 이루어진다. 이를 억제하기 위한 강력한 처벌규정 마련이 절실하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이와 관련 문체부는 앞서 언급한 공문을 통해 '공정한 음악시장 질서를 왜곡하는 음원사재기 근절을 위한 법안 개정 등을 위한 다각적인 대책을 추진 중'이라고 밝힌 상태다.

음콘협 최광호 사무국장은 "기술적 방어는 한계가 있다. 결국 불법적인 움직임을 처벌하기 위한 법률적 근거가 마련되어야 하는데, 그런 의미에서 문체부 측의 최근 움직임은 고무적이라고 판단한다"며 "향후 처벌 규정이 마련된다면, 기획사들은 물론이고 누구라도 음원 사재기를 감히 시도하긴 어려울 것"이라고 내다봤다. 또한 "건전한 유통 질서 마련을 위한 업계의 꾸준한 노력도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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