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상(理想)'한 뮤지션, 루시드폴의 귀환

[노컷 인터뷰]

루시드폴(사진=안테나뮤직 제공)
정규 7집 '누군가를 위한,'으로 돌아온 가수 루시드폴(본명 조윤석)의 행보는 이상(異常)해 보였다. 그가 택한 컴백 무대는 다름 아닌 홈쇼핑 방송. 귤 모양의 모자를 쓰고 등장한 루시드폴은 자신의 새 앨범을 직접 재배한 귤과 제주에서 찍은 엽서와 함께 판매했다. 결과는 그야말로 대박. 1천장 한정 패키지는 9분 만에 전량 매진됐고, 방송 후 SNS와 각종 온라인 커뮤니티에서 크게 회자됐다.


루시드폴은 최근 서울 신사동에 위치한 안테나뮤직 사옥에서 라운딩 인터뷰를 진행했다. 기자들에게 귤을 나눠주고, 기타 연주와 함께 신곡을 들려준 그는 담담히 2년 간 이번 앨범을 작업한 소회를 털어놨다.

"기왕이면 팬들이 재밌게 살 수 있는 앨범을 만들자고 생각했죠. '이 가수는 스트리밍으로 듣는 것보다 앨범을 사는 게 더 좋네?' 라는 생각이 들도록이요. 막상 실행에 옮기려니 암담했어요. 그러다 회사 식구들과 밥을 먹으면서 (유)희열이 형이 농담처럼 '홈쇼핑에서 해봐' 라고 제안하셨어요. 그땐 다들 깔깔 웃었죠."

웃자고 한 말이 현실이 됐고, 대표부터 매니저까지 소속사 식구들은 제주도로 내려와 루시드폴과 함께 귤을 따고 포장을 했다. 귤이 손상되지 않도록 '뽁뽁이'로 불리는 에어캡을 넣었고, 한정판 앨범이니만큼 일일이 일련번호도 붙였다. 이처럼 정성껏 준비한 신선한 이벤트는 전량 매진으로 이어졌다. 아이디어의 힘도 컸지만, 무엇보다 루시드폴의 이번 앨범이 소장가치가 있는 참 이상(理想)적인 앨범이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2년보다 더 빨리, 더 자주 앨범을 낼 자신이 없어요. 어떻게 생각하면 길지만, 앨범을 만드는 입장에서는 길지 않은 시간이거든요. 그사이 많이 보고 느끼고 듣고 기타연습도 하려면 빠듯해요. 앨범을 내는 것도 중요하지만, 뮤지션으로서, 또 사람으로서 성장하고 변화하는 모습을 보여주어야 하니까요."

그렇게 만들어진 '누군가를 위한'에는 타이틀곡 '아직, 있다'를 비롯한 10곡의 신곡과 그가 직접 쓴 동화책 '푸른 연꽃', 해당 OST 5곡이 함께 담겼다. 루시드폴은 특히 자연스러운 소리와 공간감을 함께 담아내려 애썼다. 피아노 솔로곡 녹음을 위해 스튜디오를 바꿔가며 몇 변을 재녹음했을 정도. 디지털 싱글 앨범이 보편화된 시대. 그는 2년 동안 공들여 탄생시킨 작업물들로 꽉 채운 완성도 높은 앨범을 내놨다.

여기에는 어떤 이야기가 담겼을까. 지난해 제주로 이주한 루시드폴은 우연히 동네 초등학교에서 아이들에게 동화책을 읽어주는 일을 하게 됐다. 이후 동네 바다와 숲에서 만날 수 있는 꽃, 나무, 들짐승, 물고기, 산새 등 온갖 생물들을 관찰하고 사진으로 담았다. 그런 과정 속에서 '푸른 연꽃'이라는 동화책과 '누군가를 위한,'이라는 앨범이 탄생할 수 있었다.

소속사의 설명을 빌리자면, "'누군가를 위한'은 한 사람이 아닌 수많은 영혼을 위로하는 앨범"이다. 아름다운 멜로디는 유유히 흐르는 물처럼 자연스럽게 흐르고, 시적인 가사는 가슴을 촉촉하게 적신다. 루시드폴은 "2년 동안 지냈던 모습이 직접적 가사는 아니더라도, 서정으로 녹아있을 것"이라고 소개했다.

"저에게 정규앨범은 하나의 기록이죠. 이전 앨범에도 항상 그 시절 제가 보고 느낀 이야기들이 담겼어요. 그때 만났던 사람들, 겪은 일이 아니라면 노래를 쓰지 못했을 거예요. 이번에도 마찬가지죠. 동화에 나오는 새, 꽃, 나무는 제가 다 동네에서 직접 봤던 것들이에요. 제주도로 모시고 그것들을 다 보여줄 수 있을 정도죠. 보고 느낀 모든 것들이 어느 때보다 더 직접적으로 표현된 앨범 같아요."

'친구들은 지금쯤 어디에 있을까. 축 처진 어깨를 하고 교실에 있을까', '따뜻한 집으로 나 대신 돌아가줘', '나는 영원의 날개를 달고 노란 나비가 되었어' 등의 가사가 담긴 타이틀곡 '아직, 있다'는 세월호 참사를 떠올리게 하기도 한다. 루시드폴은 이와 관련한 질문을 받고선 "듣는 분들이 느끼시는 대로 받아들이는 게 맞다는 생각"이라며 "창작자가 '이렇게 봐주세요'라고 말씀을 드리지 않는 게 맞다는 게 내 소신이자 의무"라고 답했다.

"사람마다 노래를 듣는 방법이나 태도가 다 다르잖아요. 저와 비슷한 정서적 유대가 있는 분들, 이를테면 제 팬들에게는 오래 곱씹으면서 들을 수 있는 앨범이 되었으면 좋겠고, 우연히 듣게 되시는 분들에게는 그냥 큰 거부감없이 언제나 들을 수 있는 앨범이었으면 좋겠어요. 일할 때, 글을 쓸 때, 설거지를 할 때, 혹은 출퇴근 시간에 이어폰으로만 들어도 재충전 될 수 있는 노래들이었으면 하죠."

다음 앨범 제작 계획도 밝혔다. "CD 형태이건 USB 스틱 형태이건 물리적으로 만질 수 있는 앨범이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있어요. 가상의 디지털로만 존재하는 음반을 만들면 조금 허무할 것 같거든요. 물론 생각이 바뀔 순 있겠지만. 누군가가 제 음반을 책장 구석에 꽂아놓고 있었으면 좋겠어요. 중고시장에도 돌아다녀도 좋고, 그런 무언가로 만질 수 있는 형태로 다음 앨범을 만들 계획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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