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장 규모가 큰 서울시 내년도 예산에서 누리과정 2521억원이 전액 삭감됐다. 이대로 간다면 당장 새해 1월20일쯤부터는 이른바 '보육대란'이 현실화될 것으로 보인다.
개별 유치원과 어린이집에 누리과정 예산을 주는 시점이 매달 20일쯤이다. 당장 정부에서 지원받던 보육비 20여만원씩을 각 가정이 부담해야 한다. 그러나, 정부와 지방정부는 서로 '해볼테면해보라'는 식의 치킨게임을 벌이고 있다. 서로 책임을 상대방에게 떠넘기며 나몰라라하고 있다.
누리과정 예산은 정말 누구의 책임인지를 따지기 이전에 반드시 짚어야할 것이 있다. 무상보육은 분명히 박근혜 대통령의 선거 공약이었다는 사실이다. 따라서, 이 문제는 법령이나 규정을 따지기 이전에 적어도 정치적으로만큼은 양비론(兩非論) 으로 접근할 사안이 아니다.
박근혜 대통령이 책임져야할 사안이고 따라서 중앙정부에게 1차 책임이 있다. 박근혜 대통령은 대선 당시 이렇게 얘기했다. "지킬 것만 공약으로 내놓았다" "국민에게 약속한 것은 반드시 지키겠다"라고 말했다.
무상보육으로 이름붙은 누리과정 예산은 이렇게 탄생한 것이다. 물론 공약이라고 해서 반드시 모두 지켜야하는 것은 아니다. 불가능한 측면도 분명히 있다. 그러나, 정치적 상징성과 정체성에 직접적 관련이 있는 공약은 반드시 지켜져야한다.
무상보육과 경제민주화, 특별감찰관제 등 박근혜 대통령의 공약은 그래서 당선의 보증수표가 됐던 것이다. 그러나, 집권 절반이 지나간 이 시점에서 이 공약들은 대부분 물거품이 돼가고 있다.
최근 박근혜 대통령의 국정 화두는 '진실한 사람들'이다.
경제민주화같은 거창하고 거시적인 공약은 차치하고라도 당 대표 시절 국회선진화법을 만들어놓고 국회의장을 상대로 직권상정을 압박하고 '경제위기'를 주창하며 경제장관들을 총선표밭으로 내모는 모순이 나타나고 있다.
기자가 한나라당 출입기자 시절 박근혜 대통령은 당의 부총재로서 비주류의 상징적 존재였다.
박 대통령을 만날 때 마다 느낀 점은 참으로 원칙있고 소신있으며 진정성 있고 검소한 정치인이라는 점이었다. 그러나, "지금도 그렇게 생각하느냐?"고 묻는다면 자신있게 대답할 수가 없다.
부모로부터 학대를 받아 몸무게가 16kg이 되버린 11살 소녀의 사연이 국민적 공분을 사고 있다. 소녀를 상담한 경찰과 전문가에 따르면, 소녀는 유독 먹는 것에 집착을 보였다고 전했다.
지금 130만 전국 유치원생과 어린이집 원생들이 볼모로 잡혀있다. 이는 정치적 학대다.
지방정부와 교육청에게도 책임이 있다. 그러나 그 이전에 이는 박근혜 대통령이 책임져야할 사안이다.
박 대통령은 비주류 시절 공천에서 탈락한 측근들의 무덤을 돌아보며 "나도 속고 국민도 속았다"라고 말했다.
무상보육 등 하나 둘씩 사라져가는 박 대통령의 공약 속에 박 대통령에 대한 신뢰도 사라지고 있다. 박근혜 대통령 자신도 속이고 국민도 속이고 있다. 진실성 있게 자신의 공약을 다시 한번 되돌아보아주시기를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