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현수-美 볼티모어 교민의 '해프닝과 언중유골'

'사장님, 저 김현수입니다' 미국 프로야구 (MLB) 볼티모어 오리올스와 입단 계약을 한 김현수가 29일 오후 서울 대치동 한 컨벤션 홀에서 입단 기자회견을 갖고 취재진을 향해 포즈를 취한 모습.(자료사진=황진환 기자)
메이저리그(MLB) 진출을 이룬 '대한민국 3번 타자' 김현수(27 · 볼티모어)의 기자회견이 열린 29일 서울 강남구 벨라지움. 성탄절 선물을 안고 25일 귀국한 김현수가 차분하고 홀가분하게 소회를 밝히는 자리였다.

올해 전 소속팀 두산과 국가대표팀의 프리미어12 우승을 이끈 김현수는 꿈의 무대 진출까지 이루며 만족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기자회견에서 김현수는 "신인이기 때문에 성적보다 주전 경쟁에서 먼저 이기겠다"면서도 "보스턴의 데이비드 프라이스와 붙어보고 싶다"며 호기로운 각오를 드러내기도 했다.

메디컬 테스트와 입단식을 위해 볼티모어에 체류했을 때의 흥미로웠던 일화도 들려줬다. 현지 교민과 있었던 해프닝이었다.

김현수는 "볼티모어에서 가장 좋았던 점은 아무도 나를 알아보지 못하는 것"이라면서 "아무 음식점이나 들어가서 먹었다"고 운을 뗐다. 두산에서 활약은 물론 베이징올림픽 금메달과 월드베이스볼클래식 준우승 등의 업적으로 김현수는 이미 국내에서는 유명인이나 미국 현지에서는 아직까지 이와 관련한 속박이 없었다는 것.

하지만 그래서 재미나는 상황도 벌어졌다. 김현수는 "한국 음식점을 찾아서 2번인가 갔는데 사장님이 '미국 이민을 올 거면 정말 열심히 일해야 한다. 하루도 쉬면 안 된다'고 하시더라"며 웃었다. 현지 교민이 고액 연봉 야구 선수인 김현수인 줄을 모르고 20대 후반의 일반 한국인 청년으로 알고 조언을 건넨 것이다.


'아놔, 그래도 한국에선 유명인인데...' 미국 프로야구 (MLB) 볼티모어 오리올스와 입단 계약을 한 김현수가 29일 오후 입단 기자회견에서 볼티모어에서 있던 일화를 들려주다 멋쩍은 표정을 짓는 모습.(자료사진=황진환 기자)
김현수는 올해 7억5000만 원으로 FA(자유계약선수)와 해외 복귀 선수를 뺀 최고 연봉 선수였다. 또 볼티모어와 2년 700만 달러(약 82억 원)에 계약하며 일반인을 넘는 부를 눈앞에 두고 있다. 그런 김현수가 성공하려면 정말 열심히 해야 한다는 충고를 들은 것이다.

국내 팬들에게는 우스운 상황이지만 일견 험난했던 이민 생활을 이겨냈던 현지 교민의 애환이 묻어나는 대목이다. 인생 선배로서, 또 조국의 동생, 아니 조카뻘 혹은 아들뻘일 청년에게 진심어린 교훈을 전한 점에서 짠한 장면이기도 하다.

하지만 김현수가 허투루 들어넘길 말도 아니다. 김현수는 KBO 리그 정상급 타자지만 본인의 말대로 MLB에서는 신인일 뿐이다. 확실히 주전이 보장된 것도 아닐 뿐더러 새롭게 다시 기량을 점검받아야 한다.

'KBO 리그 출신 1호 야수' 강정호(28 · 피츠버그)가 성공을 거뒀지만 많은 일본인 야수들이 쓴맛을 봤던 MLB 무대다. 더욱이 KBO 외야수로 MLB에 진출한 것은 김현수가 처음. 증명해야 할 것들이 적지 않다.

김현수의 계약 조건에는 일단 마이너리그 강등 거부 조항이 있다. 매니지먼트 회사인 이예랑 리코스포츠 대표가 이를 확인했다. 시즌 중 빅리그 25인 로스터에 들어가면 구단이 마이너리그로 내리려고 해도 거부할 수 있다. 일종의 안전장치다.

'사장님, 2017년 WBC는 꼭 미국까지 갈게요' 김현수는 2008년 베이징올림픽부터 올해 프리미어12까지 국가대표 간판 타자로 활약해왔다.(자료사진=박종민 기자)
하지만 독소 조항이 될 수도 있다. 한번 올리면 내리기 어려운 만큼 구단이 확신이 없다면 아예 선수를 빅리그 로스터에 넣는 것을 꺼릴 수 있다. 지난해 볼티모어와 계약했던 윤석민(29 · KIA)이 그래서 마이너리그에만 머물렀고 결국 국내로 복귀했다. 김현수도 같은 전철을 밟지 않기 위해서는 스프링캠프에서 구단에 신뢰를 줘야 하는 것이다.

다행히 김현수는 이런 점들을 잘 알고 있다. 앞선 사례들의 교훈도 있고, 상황도 윤석민보다는 유리하다. 윤석민은 지난해 1월에야 계약이 공식 발표돼 비자 문제 등으로 합류가 늦어 시즌 준비가 부족했다. 그러나 김현수는 연내 계약이 마무리돼 내년을 빠르게 준비할 수 있다.

무엇보다 김현수는 신고 선수 신화를 쓴 연습벌레다. 2006년 어느 구단의 지명도 받지 못해 두산에 연습생으로 들어온 김현수다. 누구보다 많은 훈련으로 오늘의 자리에 올랐다.

현지 교민의 웃픈(?) 조언에 김현수는 "하루도 안 쉬고 열심히 일하겠다"고 다짐했다. 그 말대로 귀국하자마자 몸 만들기를 시작했다. 미국에도 최대한 빨리 들어갈 계획이다. 김현수는 "비자가 나오는 대로 미국에 가서 운동을 하려고 한다"면서 "시차 적응도 할 생각"이라고 강조했다.

김현수는 "미국에서 은퇴하지 않고 국내 복귀한다면 MLB 진출은 실패"라고 힘주어 말했다. 아메리칸 드림을 이룬 볼티모어 모 한국 식당의 주인처럼 김현수 역시 각오와 자세는 갖춰졌다. 과연 김현수의 아메리칸 드림은 이뤄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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