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기문, 반반(半半)총장에서 친박(親朴)총장으로?

반기문 유엔 사무총장이 지난해 5월 20일 여의도 국회를 예방해 정의화 국회의장 및 여야 원내대표 등과 만나며 인사말을 하고 있다. 윤창원기자
반기문 유엔사무총장이 연초부터 여의도 정치권을 달굴 조짐이다. 지난 1일 박근혜 대통령과의 새해 인사 전화통화에서 한 발언 때문이다.

반 총장은 졸속협상 논란이 뜨거운 한일간 위안부협상 타결에 대해 "합의에 이른 것을 축하한다"며 "박 대통령께서 비전을 갖고 올바른 용단을 내린데 대해 역사가 높게 평가할 것으로 생각한다"고 말했다.

단순한 외교수사라고 넘겨버리기에는 너무 많이 나아갔다.
국내에서는 일본으로부터 달랑 10억엔을 받고 '최종적 및 불가역적'이 돼버린 협상결과에 대해 협상 무효, 박 대통령의 사과, 윤병세 외교부장관의 해임안 국회 제출 등이 거론되는 상황이다.

일본 기시다 후미오 외무상조차 '일본이 잃은게 무엇이냐'는 질문에 "10억엔"이라고 말할 정도로 한국이 완패한 협상이자, 이젠 어쩔 도리도 없는 '불가역적'인 상황이라 국민적 좌절감마저 증폭되는게 현실이다.

박 대통령의 결정이 "올바른 용단"이고 "역사가 높게 평가할 것"이라고 극찬한 배경이 그래서 자못 궁금할 따름이다.

반 총장이 언행에 신중하기로 유명하다는 점에서, 박 대통령과의 전화통화 내용이 언론에 공개될 것을 충분히 알고 있었다는 점에서 계산된 의도가 있을 것으로 보는 견해가 많다.

그동안 친박계가 '차기 대선주자 반기문'에게 보내온 러브콜에 화답한 것 아니냐는 분석들이다.


박 대통령과의 전화통화에 앞선 그의 행보를 보면 해당 발언이 우연이 아니라는 심증을 굳게 한다.

반 총장은 앞서 연말 뉴욕 특파원들과의 만찬에서 대선 출마 입장을 명확히 해달라는 거듭된 질문에 끝까지 답변하지 않았다. 기회가 되면 대선에 나서겠다는 의지를 분명히 내보인 셈이다.
그는 지금껏 차기 대선에 나가지 않겠다는 말을 한번도 한 적이 없다.

그리고 연초 각 언론들이 쏟아낸 차기 대선 후보 지지율에서 반 총장은 2위와 현격한 차이를 보이는 1위를 기록했다.

뚜렷한 대선주자가 없는 친박계는 2년여에 걸쳐 '반기문 대망론'으로 집권연장을 꾀해왔다.

2014년 10월말 친박계 의원 모임인 국가경쟁력강화포럼은 반 총장의 차기 대선출마 가능성을 조명해보는 세미나를 열면서 이른바 '반기문 대망론'에 불을 붙였다.

물론 야권 비노계에서도 반 총장에게 러브콜을 보내긴 했지만, 집요함과 실현 가능성에선 친박계가 앞섰다.

지난 해 11월에는 친박계 홍문종 의원에 의해 반기문 대통령- 친박계 총리라는 이원집정부제 개헌카드까지 제시되기도 했다. 친박계 내에서는 천기를 누설했다는 얘기까지 나돌았다. 비슷한 시기에 불거져나온 반 총장의 방북추진설은 여의도를 발칵 뒤집어놓았다.

청와대와 깊숙한 교감하에 반 총장이 방북을 추진하는 것 아니냐는 얘기들이었다.

앞서 박근혜 대통령은 9월 유엔방문시 반 총장과 7차례나 만나는 등 밀도를 높이던 터였다.

반 총장은 위안부 협상에 대한 이 번 발언으로 그동안의 반반(半半)총장에서 확실한 친박(親朴)총장으로 탈바꿈하려는 듯 하다 .

반반(半半)총장이란 여권에도 절반 야권에도 절반, 정치도 절반 외교도 절반씩 발을 담그고 있는데 따라 붙여진 별명이다.

총선을 앞둔 시점에서 선거구가 사라지고 야당이 핵분열하는 상황으로 인해 아직 반 총장의 발언에 정치권 전체가 주목하지는 못하는 듯하다. 정당과 계파에 대권주자가 있는 것과 없는 것은 총선에서도 큰 영향을 줄 수 밖에 없다. 반 총장이 선택할 다음의 키워드에 관심이 쏠릴 수 밖에 없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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