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군이 한국 여성에서 저지른 만행을 그린 이 만화는 지난달 31일 모바일 콘텐츠 플랫폼 피키캐스트 피키툰을 통해 공개됐다.
그런데 지난달 28일 한일 위안부(성노예) 협상이 타결되자, 최 작가와 피키캐스트가 “모든 할머니들 마음의 상처를 치유하는 협상이었는지는 아직 의문으로 남아 있다”면서, 전시용이었던 이 만화를 웹 버전으로 바꿔 공개했다.
이어 “당시 할머니들께서 얼마나 많은 고통과 아픔을 겪으셨는지 함께 느끼고 과거의 역사를 기리는 시간이 되었으면 한다”고 당부했다.
만화 전체 보기 - 피키캐스트 피키툰.
☞최인선 작가의 ‘우린 어디로 가고 있는가?’
그들에게 자랑스러울지 몰라도 짓밟힌 이들에게는 다른 의미이다. 최 작가는 빨간색 동그라미를 ‘(당시) 위안부 소녀들의 시체와 피가 가득한 구덩이’로 보았고, 붉은 햇살은 ‘소녀들의 몸이 끌려가는 피 묻은 흔적’으로 풀어냈다.
조금 더 작품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고 싶어 최 작가에게 인터뷰를 요청했다. 다음은 일문일답.
▶ 2014년 프랑스 앙굴렘국제만화페스티발에서 전시됐던 작품이라고. 작가 20명이 참여한 것으로 알고 있는데, 최 작가는 어떻게 참여하게 됐나.
= 참여 의뢰를 받고, 약 한 달간 위안부에 대한 공부를 한 뒤 2013년 12월 정도에 작품을 완성했다.
▶ 한 달이 긴 시간이 아니라 쉽지 않았을 것 같은데.
= 의뢰를 받았을 때 심도 있게 공부한 뒤 그림을 그리고 싶었다. 기간이 짧아 충분히 공부하지 못했지만, 인터넷이나 영화, 박물관 내 영상을 통한 할머니들의 증언을 많이 들으며 알아갔다. 내 상상이 가미되지 않게 하려고 당시 배경이나 소품 등 소소한 것을 챙겨 봤다. 그때 당시 트럭이나, 일본군이 입은 옷은 허리띠로 돼 있는지, 고무줄인지. 그런 자료 조사도 포함된다.
▶ 그릴 때 어떤 마음이 들었나.
= 위안부 피해 할머니들을 위로하기 위해 그린 건 아니었다. 만약 내가 그 시대 살았다면 어떤 마음이 들었을까를 고민했다. 아마 나도 지금처럼 가진 것도 배운 것도 없었을 테고, 돈 벌러 간다니 그냥 쫓아갔을 것 같더라.
그때부터 그분들이 아닌 나의 이야기가 됐다. 처음에는 돈 벌러 간다는 마음에 신이 났겠지. 하지만 트럭 타고 배 타고 계속 이동하면서, 옆에서 나와 친구들을 지키고 서 있는 군복 입은 사람 때문에 점점 두려워지지 않았을까. ‘나(우리)는 어디로 가고 있는가?’.
그러한 감정선을 따라서 그림을 그렸다. 그리면서 많이 울었다. 하지만 내 상상에서 이루어진 것뿐, 막상 실제로 당한 할머니들에게는 내가 생각하지 못한 감정이 있을 거다. 그래서 이런 그림을 그릴 때 조심스럽다.
▶ ‘우린 어디로 가고 있는가?’라는 제목의 '우리'가 ‘나를 포함해 후손들’에게 하는 얘기 같더라.
= 만화를 다 그린 다음 제목을 지었다. 앞서 얘기했지만 나 또는 내 친구의 상황이 될 수도 있다고 생각하고 그렸다. 그래서 마지막 부분에 친구들의 이름을 부르면서 ‘우리 이제 어디로 가야 하지?’라고 물었다. 오가지도 못하는 꽉 막힌 상황에 대한 이야기다.
▶ ‘나’ 자신에게 어디로 가고 있느냐고 느낀 건, 찔려서인지도 모르겠다.
= 그렇게 얘기하면 나도 할 말이 없다. 내가 정대협이나 다른 사회단체에서 위안부 피해 할머니들 문제를 놓고 지속적으로 활동하던 사람이라면 모를까. 그랬다면 이런 인터뷰 요청에도 적극적으로 나서서 그런 단체나 할머니들이 겪는 사회적 불이익에도 도움이 될 텐데. 지금은 인터뷰에서 한 말들이 할머니들에게 누가 될까 걱정이다. 그래서 나서서 말을 하는 것보다 그저 작품으로 메시지를 전하고 싶다.
▶ 시기가 시기인 만큼 작품이 SNS 등을 통해 많이 회자되고 있다.
= 이전에 전시할 때랑 비교하면 젊은 사람들이 많이 접한다. 특히 청소년들. 전시 때는 욕설이나 청소년이 보면 안 되는 부분이 있다며 총 15점(컷) 중 8~9점(컷)만 전시했다.
그런데 어른들이 야하다며 전시 못하게 한 그림을 중학생들이 보고 ‘이걸 보고 야하다 생각하면 안 되지’라며 이해해 주더라. 또 같이 가슴 아파해 주니 작가로서 고맙다.
▶ 혹시 또 다른 작품은 없나.
= 지난달 30일에 올린 작품이 있다.
차기작을 준비하는 것은 아니지만 고국으로 돌아온 할머니들의 삶은 어땠을까 생각해봤다. 좋지 않은 시선으로 2차 피해를 입어 힘들었을 거다. 치료는커녕 보듬어주지 못하는 우리 사회에게 느꼈을 울화가 더 큰 문제이겠구나 생각했다.
작가들은 사회적 문제를 그릴 때 조사를 많이 한다. 시간이 부족하면 치우치게 되고, 감정 이입이 힘들다. 2~3달은 그것만 파고들어 감정을 이입할 수 있게 자료 조사도 충분히 하는 기간이 필요한데, 요즘 세상은 너무 빨라서 감정 이입할 시간 안 주는 것 같다.
▶ 6일 수요집회가 24주년을 맞는다더라. 혹시 할머니들에게 하고 싶은 말이 있다면.
= 이 문제에 대해서 손발이 닳도록 도움이 되지 못해 죄송하다는 말밖에 못하겠다. 지속적으로 관심은 갖되 30일 그린 소녀상 그림처럼 떠돌아다니는 뉴스나 영상 보다가 떠오르는 아이디어를 그리겠다. 잊힐 만할 때 올려서 사람들 마음속에 한 점이라도 남는다면 의미가 있을 것 같다. 그런 식으로라도 도움이 됐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