韓 감독·애니메이터가 들려준 '굿 다이노' 탄생기

[노컷 인터뷰] 마지막 작업 끝나고 한국말로 주고 받은 '고마움'

(왼쪽부터) '굿 다이노'의 김재형 애니메이터와 피터 손 감독. (사진=디즈니컴퍼니코리아 제공)
애니메이션 강국 미국에서 한국계 미국인 감독과 한국 애니메이터가 만났다. 애니메이션 영화 '굿 다이노'는 이들이 의기투합해 만들어 낸 결과물이다.

'굿 다이노'는 '만약 공룡이 멸종하지 않고 살아 있었다면?'이라는 가정에서 시작된 영화다. 지능을 가진 공룡 알로가 인간 아이 스팟을 만나 잃어버린 가족을 찾아 나서는 모험담이다.

독특한 점은 완전히 반대 상황에 놓인 공룡과 인간의 처지에 있다. 공룡은 인간처럼 농경사회를 이루고 있지만 인간은 말조차 하지 못하는 '늑대' 혹은 '개'와 같은 생물체다.

어떻게 감독과 애니메이터는 이런 캐릭터를 창조할 수 있었던 것일까. '한국'이라는 키워드로 묶여 있기에 더욱 값진 그들의 이야기를 들어봤다.

◇ 늑대 같은 인간과 인간 같은 공룡

피터 손 감독과 김재형 애니메이터의 원칙은 '믿음'에 있었다. 상상 속에서 움직이는 캐릭터라도 관객들이 믿을 수 있어야 한다는 것. 그래서 이들은 관객들에게 익숙한 동물들에서 캐릭터들의 특징을 가져왔다.

김 애니메이터는 "제작을 시작하기 전에 동물들의 움직임을 연구하기 위해 동물원에 갔다. 사람을 원숭이처럼 그린 작품은 많아서 인간 아이 '스팟' 캐릭터는 개과 동물에서 참고를 많이 했다. 공룡인 '알로' 같은 경우 긴 목의 움직임은 기린이나 낙타, 몸은 코끼리를 참고했다"고 말했다.

그는 애니메이션 영화 '인사이드 아웃'을 제작할 때도 주인공 마일리를 만들며 사춘기 아들을 생각했다. 이번에는 작고 약한 공룡 '알로'가 그의 딸을 닮아 있었다.

김 애니메이터는 "가족에게서 홀로 떨어진 알로는 그 때 자기에게 뭔가 있는 것을 발견한다. 딸이 아직 어린데 믿고 맡겨두면, 시간이 지나면 무엇인가를 찾을 수 있겠다는 생각을 했다. 알로 아버지의 대사 중에 "네가 나보다 낫다"는 말이 있다. 그 대사가 제 기억에 제일 남는다"고 고백했다.

◇ 애니메이션 제작에서 빛난 한국인의 情


피터 손 감독은 1970년대 미국 이민 사회에서 자라난 한국계 미국인이다. 그런 그에게 '굿 다이노'는 한국에서 개봉한 첫 연출 작품이기에 더욱 큰 의미를 가진다.

손 감독은 "연출한 작품으로 모국인 한국에 돌아온 것이 영광"이라면서 "동양적인 요소가 작품에 녹아 들어갈 수 있었겠지만 의도적인 발상이 있었던 것은 아니다. 한국계 미국인이라는 내 정체성 때문에 그런 표현들이 나타났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그가 성장하면서 배운 '공동체 의식'은 영화 작업에서도 중요한 역할을 했다.

손 감독은 "작은 공동체가 모여서 토론하고, 그것이 모여 스토리가 진화한다. 그래서 공동체 의식이 픽사 안에서도 중요하다"고 전했다.

피터 손 감독과 일하게 된 김재형 애니메이터도 더욱 편하게 작업에 임할 수 있었다. 그가 한국인과 크게 다르지 않은 정서를 갖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는 모든 작업을 마친 후, 손 감독과 나눈 한국말 인사를 기억하고 있다.

김 애니메이터는 "한국계 미국인이 감독이기 때문에 당연히 자부심도 있었다. 실제로 나를 더 잘 봐주거나 그런 일은 없었지만 마음이 편했다. 100여 명이 의견 교환을 하기 때문에 한국말로 작업을 한 적은 한 번도 없었다. 마지막 작업을 끝냈을 때, 손 감독이 내게 한국말로 '너무 고맙다'고 하더라. 나도 '너무 고맙다'고 한국말로 이야기하며 서로 끌어 안았다"고 회상했다.

그 역시 '굿 다이노'를 그리면서 미국과는 다른 독특한 한국적 정서를 녹여냈다.

김재형 애니메이터는 "한국 감독을 좋아하고 한국 영화를 많이 본다. 그것을 작품에 적용했기 때문에 독특한 부분이 많다. 배우 송강호와 한석규의 연기를 참고하기도 했다"고 밝혔다.

(사진=디즈니컴퍼니코리아 제공)
◇ 디즈니·픽사에서 활약하는 韓 애니메이터들

'겨울왕국'부터 '굿 다이노'까지. 이제 '디즈니·픽사' 애니메이션에 한국인 애니메이터가 비중있게 참여하는 것은 그리 놀라운 일이 아니다.

'픽사'에 소속된 김재형 애니메이터는 "디즈니 애니메이터들과도 다 알고 친하다. (한국인 애니메이터들은) 나보다 나이 많은 사람들이 대부분이었는데 최근에는 젊은 친구들도 굉장히 많아졌다. 열심히 일하고, 성실한 태도는 당연하고, 여기에 창의성까지 더 좋아지고 있는 상황"이라고 뿌듯함을 드러냈다.

국내에서는 열악한 직업으로 인식되고 있는 애니메이터. 그렇다면 김재형 애니메이터가 현재 한국에 있는 애니메이터 지망생들과 현직 애니메이터들에게 해줄 조언은 무엇일까.

김 애니메이터는 "사실 애니메이터라는 직업이 너무 어렵다. 잘 되다가도 정체하고, 이런 일이 반복적으로 일어난다. 그래서 결국 시간이 필요하다는 걸 인지해야 한다"면서 "기본을 충실히 하면서 꾸준히 쌓다 보면 어느 순간 뭔가 되는 상황이 생길 것이다. '픽사' 애니메이터가 되고 싶다고 하는 것보다는 좋은 애니메이터가 되고 싶어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설명했다.

어느 직업이나 그렇듯 조건 좋은 직장이 최종 목표가 되어서는 안된다는 이야기다. 좋은 애니메이터의 조건은 가장 간단하고도 어렵다. '일'에 '애정'을 가지라는 것이다. 특히나 캐릭터에 숨을 불어 넣는 애니메이터의 역할에는 더욱 이런 마음가짐이 필요하다.

김재형 애니메이터는 "애니메이션에서 애니메이터는 배우와도 같은 존재다. 캐릭터를 창조하기 때문이다. 애정이 있어야 관찰을 할 수 있고, 관찰을 통해 캐릭터의 움직임 안에서 어떤 것을 잡아야 하는 지 알아낼 수 있다. 감정적인 것도 마찬가지다"라고 말했다.

◇ 데뷔 작품인 '굿 다이노', 골든글로브 시상식 노미네이트

다소 이전 '픽사' 애니메이션의 정서와 다르다는 평가도 존재한다. 김재형 애니메이터는 이것이 새로운 세대를 대표하는 손 감독의 저력이라고 봤다.

김 애니메이터는 "느낌은 달라도 전달하는 메시지는 같다고 생각한다. 계속 만들던 감독들이 만들면 비슷한 스타일의 영화가 나올 수밖에 없다. '픽사'는 새로운 세대의 감독들을 키우기 위해 노력한다"면서 "손 감독은 처음에 조감독으로 이 영화를 시작했는데, 2년 동안 작업을 하다가 스토리 진행이 힘든 상황에 놓였다. 그 때 감독으로 승격된 것이다"라고 피터 손 감독이 '굿 다이노'를 맡게 된 배경을 설명했다.

오늘(7일) 개봉하는 '굿 다이노'는 일단 미국에서는 성공적인 결과물로 평가 받고 있다. 오는 10일(현지시간) 열리는 제73회 골든 글로브 시상식에서 장편애니메이션상 후보에 올랐기 때문이다.

피터 손 감독은 데뷔 작품이 세계적인 시상식에서 주목받은 것에 대해 "매우 영광이고 자랑스럽다. 가장 강조하고 싶은 것은, 많은 아티스트들이 이것을 이뤄내기 위해 직무 이상의 노력을 소화했다는 점"이라며 "만약에 상을 받는다면 동료들 덕분이라고 생각한다. 이들이 모든 영광을 누리면 좋겠다"고 소감을 이야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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