벼랑 끝에 몰려 '보육대란 초읽기' 사태를 불러오고 있는 누리과정 예산 갈등이 일단 그렇다. 정부가 사법 대응까지 거론하며 시도 교육감들을 압박하는 배경에는 불과 두달여전 통과시킨 시행령이 있다.
최경환 경제부총리는 지난 5일 기자회견을 자청해 "지난해 10월 지방재정법 시행령을 개정해 누리과정 예산을 의무지출 경비로 지정한 바 있다"며 "따라서 시도 교육감이 누리과정 예산을 미편성하는 것은 엄연한 직무유기"라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예산 편성을 거부할 경우 감사원 감사 청구와 검찰 고발을 포함한 법적· 행정적· 재정적 수단 등 모든 방법을 동원해 강경 대처하겠다"고 '으름장'을 놨다.
하지만 시행령보다 상위체계인 법률에는 '보육비용'인 누리과정 예산을 교육청이 편성할 근거가 없다는 게 교육감들의 입장이다.
정작 직무유기를 한 건 누리과정을 대선공약으로 내걸었던 박근혜 대통령과 중앙정부인데도, 시행령 하나 달랑 바꿔 부담만 떠넘기려 한다는 것이다.
시행령 하나로 본말을 뒤집는 상황은 지방자치단체들과의 이른바 '복지 축소' 갈등에서도 고스란히 드러난다.
그동안 보건복지부는 서울시의 '청년수당', 성남시의 '무상교복'이나 '공공 산후조리' '청년배당' 같은 제도에 대해 '중앙정부와의 협의사안'임을 강조하며 "수용할 수 없다"는 입장으로 일관해왔다.
해당 지자체들이 검토 끝에 원안대로 도입을 추진하려 하자, 지난 연말엔 행정자치부까지 나서 "정부 협의 없이 운영하면 교부세를 깎겠다"며 시행령을 급조해 통과시킨 것이다.
이재명 성남시장은 "복지의 제한이 아닌 복지의 확대가 헌법과 법령에 의한 국가의 의무"라며 "그런데도 현 정부는 오히려 복지를 축소시키려 시도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입법부가 이러한 시행령 남발을 막기 위해 지난해 6월 국회법 개정에 나섰을 때, 박 대통령의 거부권 행사로 집권여당 원내대표가 사퇴하는 초유의 사태가 빚어지기도 했다.
더불어민주당 문재인 대표는 당시 "헌법 아래에 법률이 있고, 법률 아래에 시행령이 있다"며 "법률을 무시하고 시행령으로 대통령이 마음대로 하겠다는 것은 행정 독재적 발상"이라고 성토했다.
하지만 "(박근혜) 대통령이 나라를 팔아먹어도 35%는 지지할 것"이라는 유시민 전 복지부 장관의 분석에서 보듯, 박 대통령의 '시행령 정치' 역시 지금껏 그래온 것처럼 남은 임기 내내 '전가의 보도'로 기능할 전망이다.
박 대통령 입장에선 지지율에 큰 변화가 생기지 않는 한 '복잡하고 불편한' 입법 절차보다는, 스스로 임명한 각료들을 통한 국무회의 의결을 선호할 개연성이 크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