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찰이 작심하고 법원과 날선 각을 세운 것은 배임죄가 무죄가 나는 경향을 지적하고 여론을 환기하기 위한 것으로 풀이된다.
이영렬 서울중앙지검장은 11일 오전 11시쯤 기자실을 내려와 지난주 강영원 전 사장의 배임 무죄 선고와 관련해 카메라 앞에서 공식 입장을 발표했다. 직전까지 누구도 예측하지 못한 기습 발표였다.
이 지검장은 "강영원 전 한국석유공사 사장은 석유개발회사 하베스트의 정유공장 인수 당시 나랏돈 5,500억원의 손실을 입혔고, 결국 1조 3,000억원이 넘는 천문학적 손실이 났다"며 "정파에 관계없이 정치권 전반 뿐만 아니라 시민단체까지도 처벌이 필요하다고 보고 검찰에 고발한 사안이다"고 말했다.
이어 "검찰은 엄정하게 수사해 책임자를 구속하고, 국민의 이름으로 기소했다. 그런데 재판과정에서 위와 같은 손실이 발생한 사실이 인정되었는데, 무리한 기소이고 형사책임을 물을 수 없다 하니 도저히 이해할 수 없다"고 비판했다.
이 지검장은 "공중으로 날아간 천문학적 규모의 세금은 누가 책임을 지느냐"며 "경영평가 점수 잘 받으려고 나랏돈을 아무렇게나 쓰고, 사후에는 '경영판단'이었다는 이유로 처벌할 수 없다면 회사 경영을 제멋대로 해도 된다는 말이냐"고 법원 판결을 꼬집었다.
또한 "아무런 실사 없이 3일만에 묻지마식 계약을 하고 이사회에 허위 보고해 1조원이 넘는 손해를 입혔는데, 이 이상으로 무엇이 더 있어야 배임이 되겠느냐"고 되묻기도 했다.
마지막으로 이 지검장은 "1심 판결처럼 경영판단을 지나치게 폭넓게 해석하기 시작하면 책임자에게 면죄부를 주게 되며 그나마 유일하게 존재하는 검찰수사를 통한 사후통제를 질식시키는 결과가 된다. 검찰은 단호하게 항소하여 판결의 부당성을 다툴 것이다"고 재차 강조했다.
서울중앙지검장이 공개석상에서 마이크를 잡고 법원의 판결을 비판한 것은 경우를 찾아보기 힘들 만큼 이례적이다.
지난 8일 1심에서 무죄가 선고되자, 대검찰청과 협의해 이같은 입장표명을 결정한 것으로 알려졌다. 김수남 총장 체제 초반에 법원과 날선 각을 세우는 배경에 관심이 쏠리고 있다.
배임죄에 대해 몇차례 법원에서 무죄가 나고, 재계에서 법을 개정해야 한다는 움직임이 일면서 검찰이 비판 여론을 환기한 것으로 분석된다.
앞서 서울중앙지검 특수1부(임관혁 부장검사)는 지난해 9월 하베스트의 부실 자회사 날(NARL)을 아무런 검증 절차 없이 사들여 공사에 5천억원대 국고 손실을 끼친 혐의로 강영원 전 사장을구속기소했다.
검찰은 지난해 이명박 정부 시절 자원개발 비리에 대해 야심차게 수사를 시작했지만 초반에 성완종 전 경남기업 회장의 자살로 수사 초점이 흐려졌다.
이후 강영원 전 사장과 김신종 전 광물자원공사 사장을 특경법상 배임 혐의로 기소했지만 최경환 당시 지식경제부장관의 외압설 등 윗선을 규명하지 못했다는 평가를 받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