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응팔' 정봉은 왜 '덕후'가 됐을까

옛 추억과 낭만 온몸으로 표현

사진=tvN 제공
tvN 드라마 '응답하라 1988'(이하 '응팔')에서 정봉(안재홍 분)은 '덕후'다. 덕후는 한 가지 분야에 열광하는 마니아의 일본식 표현 '오타쿠'에서 변형된 말이다. 정봉의 '덕질' 범위는 수집부터 PC통신까지 다종다양하다. '응팔'에서 정봉은 왜 덕후 캐릭터를 갖게 됐을까.

그 이유는 '응팔'이 1988년을 배경으로 한 가족극이기 때문이다. 28년 전 이야기가 시청자의 공감을 사려면 당시 분위기와 정서를 장면 곳곳에 어색함 없이 녹여내야 한다. 정봉이 그 시절을 그리워하게 하는 중책을 맡았다고 볼 수 있다.


정봉은 옛 추억과 낭만을 가장 많이 간직한 인물이다. 덕후답게 우표, 복권, LP 수집에 열을 올리는가 하면, 오락실 게임 '보글보글'에 심취한다. 또 라디오 프로그램 '이문세의 별이 빛나는 밤에'에 정성껏 쓴 엽서를 보내 사연이 소개되기도 한다.

시대적 배경이 80년대에서 1994년으로 바뀐 후에도 정봉의 덕후기질은 변함이 없다. 대학을 졸업한 후 사법고시 준비에 돌입했지만, 정봉은 천리안 '영퀴방'(영화퀴즈방) 방장을 맡는 등 PC통신 채팅에 푹 빠져 있다.

우표, LP, 라디오 엽서, PC통신, 보글보글 등은 지난 시절의 향수를 자극하는 물건이라는 공통점이 있다. 편지봉투에 붙여진 우표를 핀셋으로 조심스럽게 떼어내고, 방송국에 밤 새워 쓴 엽서를 보낸 후 사연이 소개되길 손꼽아 기다리고, 느린 전화모뎀으로 PC통신 채팅을 하던 모습은 이제 추억이 됐기 때문이다. 당시 유행하던 호돌이 티셔츠와 양배추 인형도 '덕후' 정봉과 함께라면 어색하지 않다.

사진=tvN 제공
한 가지에 올인하는 정봉의 성품은 첫사랑 미옥(이민지)을 향한 순정을 표현하는 데 제격이기도 하다.

미옥과의 첫 데이트날 꽁꽁 언 손으로 빨간 장미꽃 다발을 내밀고, 병원생활로 답답해 하는 미옥에게 브루마블 게임 속 우주여행 초청장을 선물하고, 미옥을 위해 손편지와 종이학을 준비하는 정봉과, 원치 않는 이별을 한 후 몇 년이 지나 재회의 포옹을 나누는 두 사람에 시청자는 설렌다. 정봉과 미옥의 사랑은 썸과 밀당의 시대의 인스턴트 사랑과는 다른 무공해 사랑이기 때문이다.

이렇듯 정봉이 '덕후'가 된 데는 이유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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