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뒤끝작렬] 전직 대법관의 '초선' 국회의원 도전기

노컷뉴스의 '뒤끝작렬'은 CBS노컷뉴스 기자들의 취재 뒷 얘기를 가감없이 풀어내는 공간입니다. 전방위적 사회감시와 성역없는 취재보도라는 '노컷뉴스'의 이름에 걸맞은 기사입니다. 때로는 방송에서는 다 담아내지 못한 따스한 감동이 '작렬'하는 기사가 되기도 할 것입니다. [편집자 주]

국회 (사진=윤성호 기자)
"국회의원이라는 직업이 참 피곤한 직업이다. 지역구 민원 해결이나 선심성 사업 예산 따내는데 매달리다 보면 내가 왜 국회의원이 됐나 하는 생각이 든다"

정부 고위직 출신 여당 초선의원의 푸념이다. 휘하에 수백명의 엘리트 공무원들을 거느리던 시절을 회상하면 더욱 더 초선 국회의원 신분이 초라하게 느껴진다고 그는 말했다.

본인과 보좌진 월급을 포함해 한해 수억원의 예산을 쓰고, 상임위 산하 기관에 무소불위의 권력을 휘두르는, 그래서 특권이 수백가지라고 알려진 대한민국 국회의원.

장관 등 정부 고위직은 물론이고 돈많은 기업가, 변호사, 교수 등 우리 사회에서 소위 잘나간다는 사람들이 너도나도 '금뱃지'를 달기위해 발버둥치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하지만 그 이면을 들여다보면 국회의원에게 특권만 있는 것이 아니다. 앞서 한 초선의원의 푸념처럼 지역에서 소위 힘깨나 쓴다는 유지들의 친.인척 취업청탁 해결부터 시작해 예산이됐든 행사가 됐든 때만 되면 지역구에 무언가를 갖다바쳐야 다음 4년을 보장받는다.

이 과정에서 각종 편법은 물론 불법까지 자행되기도 한다. 또, 정치후원금이나 선거자금 모집 과정에서 자의가 됐든 타의가 됐든 검은 돈이 흘러들어가는 장면도 종종 목격된다.


정치인을 두고 '교도소 담벼락을 걷는 사람'이라고 하는 이유다. 그런데 이 교도소 담벼락을 걷는 일을 하겠다고 한 전직 대법관이 나섰다. 바로 안대희 전 대법관이다.

대중 인지도가 높은 안 전 대법관의 출마 선언은 새누리당 입장에서는 환영할 만한 일이다. 단 조건이 있다. 여당 텃밭인 부산이 아닌 서울, 그것도 야당이 지역구 현역의원인 곳에 출마하라는 것.

안대희 전 대법관 (사진=박종민 기자)
처음 험지출마 요구가 나왔을때만 해도 버티기에 들어갔던 안 전 대법관은 당내에서 "꽃가마를 타려 한다"는 비판이 거세지자 결국 두 손을 들고 말았다.

이 과정에서 새누리당 지도부와 안 전 대법관 사이에 신경전까지 실시간으로 보도되면서 지켜보는 국민들에게 좋지 않은 이미지를 남기기도 했다.

현재 더불어민주당 전병헌 의원의 지역구인 동작갑, 국민의당(가칭) 김한길 의원의 지역구인 광진갑, 더불어민주당 추미애 의원의 지역구인 광진을 등이 안 전 대법관의 출마 후보지로 거론되고 있다.

안 전 대법관 입장에서는 모두 험지 중에 험지로 지역 기반이 탄탄한 야당 중진 의원들을 꺽어야만 금뱃지를 가슴에 달 수 있다.

그런데 험지에서 당선되는 것은 그가 도전하는 정치인생에서 1차 관문 통과에 불과하다. 대한민국 최고 엘리트 집단인 검찰의 꽃으로 불렸던 대검 중수부장, 그리고 사법부를 대표하는 대법관이라는 타이틀을 보유한 안 전 대법관이지만 1차 관문 통과로 얻을 수 있는 건 '초선' 국회의원이라는 타이틀 뿐이다.

한때 국민적 영웅으로 떠올랐던 안 전 대법관이 단순히 금뱃지 한번 다는 것을 최종 목표로 할 것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은 단언컨대 아무도 없다. 그렇다면 안 전 대법관이 가슴속에 품고 있는 최종 목표로 다가서기 위해서는 2차, 3차 관문을 통과해야 한다.

새누리당은 전통적으로 소속 의원들의 서열을 매길 때 선수를 중요하게 고려한다. 따라서 아무리 험지에서 당선된 전직 대법관이라 할지라도 당내 기반이 거의 없는 초선 의원에게 주요 당직을 맡기는 등의 특별대우를 배풀어줄 것 같지는 않다.

게다가 안 전 대법관은 재야에 묻혀 있다 새누리당의 구애에 의해 선거판에 뛰어든 '영입' 케이스가 아니라 제발로 새누리당의 문을 두드린 케이스라는 점도 특별대우를 바라기 힘든 이유 가운데 하나다.

다시 말해 초선 의원으로서 자신의 특기를 살려 법제사법위원회에 배속돼 후배 검사나 법관들에게 호통을 치는 일이나 야당 의원들과 입씨름 하는 일 외에 국회의원으로서 할 수 있는 일이 별로 없다는 뜻이다.

합법과 불법의 경계가 모호한 각종 지역 민원부터 선심성 예산을 따내는 일에 발벗고 나서는 것이 '강골' 검사로 유명한 안 전 대법관의 취향(?)과 맞을지도 미지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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