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대통령의 한숨과 서명 정치

국회 설득 포기한 부적절한 행보 논란 불거져

박근혜 대통령이 13일 오전 춘추관에서 대국민담화 및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사진=청와대 제공)
국가를 지탱하는 두 축은 안보와 경제다. 그러나 새해 벽두부터 이 두 축이 동시 위기상황에 맞닥뜨려 있다.

경제활성화법을 비롯한 쟁점법안의 국회 처리가 여야간 힘겨루기 속에 지연이 거듭되고, 북한의 4차 핵실험에 따른 한반도의 안보리스크도 높아지고 있다.

박근혜 대통령은 지난 13일 신년 대국민담화와 기자회견에서 각종 현안의 해결 방안을 묻는 기자의 질문에 "에휴!…"라고 긴 한숨을 내쉬었다.

TV로 전국에 생중계된 대통령의 한숨은 '정말로 힘들다'는 모습을 보여주는 것으로, 국민의 동정심과 이해를 끌어내기 위한 정치적 제스처다. 동시에 대통령의 한숨은 쟁점법안 처리에 미온적인 국회, 구체적으로 야당을 겨냥한 것이다.

한 발 더 나아가 박 대통령은 국민들에게 '나서달라'고 호소했다.


"에휴!…지금 같은 국회에서 어느 세월에 되겠어요. 만들기도 겁납니다". "이런 위기는 정부나 대통령 힘만으로는 이겨낼 수 없고, 돌파구를 찾는 유일한 대안은 바로 국민 여러분들입니다".(13일/대국민담화, 신년 기자회견)

박근혜 대통령이 18일 오후 경기도 성남시 판교역 광장에서 열린 민생구하기 입법 촉구 천만 서명운동 행사장을 찾아 서명하고 있다. (사진=청와대 제공)
급기야 박 대통령은 18일에는 경제 관련 단체들이 주도한 '경제활성화 입법촉구 1000만 서명운동'에 참여하는 이례적인 모습까지 선보였다.

박 대통령은 이날 7개 부처 정부합동 업무보고를 받는 자리에서 서명운동과 관련해 "어려움에 처한 우리 경제와 테러 위험을 극복하고자 경제시민단체를 중심으로 입법 서명 시민운동이 시작됐는데 오죽하면 국민들이 그렇게 나섰겠나. 이것은 국회가 역할을 제대로 못하니까 국민들이 나서서 바로잡으려는 것이 아닌가 생각한다"고 말했다.

대한상공회의소를 비롯한 38개 경제단체와 업종별 협회가 전국적으로 벌이는 서명운동에 대통령이 직접 나서자 곧이어 황교안 국무총리는 온라인을 통해 서명에 동참했다. 의무사항은 아니라지만 국무위원들의 '줄줄이 서명'이 이어질 전망이다.

그러나 행정부 수반인 대통령이 국회 설득을 사실상 포기하고 국민에게 직접 호소하는 모습을 고집하는 것은 부적절한 행보라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야당은 "대통령으로서 지위와 본분을 망각한 잘못된 판단이자 명백한 국회압박"이라고 비판의 목소리를 높였다. 청와대는 "국민과 뜻을 같이한다는 의미로 이해해달라"는 입장을 밝혔지만 왠지 궁색해 보인다.

따지고 보면 쟁점법안의 국회처리가 지연되는 원인도 거슬러 올라가면 국회의장 직권 상정과 다수당의 날치기를 통한 법안 처리를 금지한 이른바 '국회선진화법'이지만, 이 법안은 박 대통령이 새누리당 비상대책위원장 시절에 "반드시 통과시켜야 한다"고 강조한 데 따른 결과다.

그런데도 대통령이 한숨을 내쉬고 서명운동에 까지 동참하자 새누리당은 이에 화답하듯 국회선진화법을 개정하려고 나섰다.

국회 운영위원회를 단독 소집해 국회선진화법 개정안을 통상적인 상정 절차를 거치지 않고 직접 본회의에 부의하기로 하면서 '날치기' 비난도 일었다.

다행히 정의화 국회의장이 19일 직권상정을 거부하면서 여당의 정치적 꼼수는 일일천하로 끝났다.

대통령은 국민의 표로 당선된 만큼 집권 이후에는 국민에게 보여주는 정치를 해야 한다.

국민에게 '도와달라, 나서달라'는 호소는 대통령이 되기 이전에 하는 말이 아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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