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비비 3천억 틀어쥔 정부…누리과정 파행은 '아 몰랑'

유치원 원장들, 교사 월급 어떡하나?…발만 '동동'

(자료사진)
보육대란 사태가 파국으로 치닫고 있는데도 정부는 목적예비비 3천억을 시도교육청 압박용으로 틀어쥐고 있어 비난 여론이 일고 있다.

당장 교사들 월급날을 코앞에 둔 유치원 원장들은 발등에 불이 떨어졌다. 서울 양천구 목동의 A유치원 원장 서모씨(37)는 "당장 25일에 선생님 월급을 줘야 하는데, 못 줄 것 같다"며 "아이들 급식비, 간식비도 집을 담보로 대출해서 해줘야 할 판"이라고 하소연했다.

또 "원아 1인당 22만 원씩 130명이면 2800여만 원인데, 하루아침에 지원이 안 된다는 게 말이 되느냐"며 "대통령의 약속인데 이행해야 할 것 아닌가"라고 불만을 쏟아냈다.

신길1동의 C유치원 원감 정모(37)씨는 "학부모들 가운데 '하루아침에 몇십만 원씩 어떻게 더 내느냐'며 유치원을 그만둔 분들이 계신다"며 "아이를 둘, 셋씩 둔 가정은 더 말할 것도 없다"고 안타까움을 호소했다.

당장 월급을 받지 못하게 될 보육교사들도 속이 타들어 가긴 마찬가지다. 신길동의 D유치원 교사 채모(42)씨는 "해가 갈수록 급여가 오르기는커녕 거꾸로 내려가니 답답할 뿐"이라며 "이미 최저임금 수준으로 처우도 좋지 않은데 수당까지 줄어드니 실직자나 다름없는 생활"이라고 말했다.


◇ 이준식 사회부총리, 빈손으로 가서 교육감들 압박

이준식 사회부총리 겸 교육부 장관(오른쪽)이 18일 오후 종로구 세종로 정부서울청사에서 열린 전국시도교육감협의회 임원진과 누리과정 예산 해법을 위한 간담회에서 모두발언을 하고 있다. (사진= 박종민 기자)
이준식 사회부총리 겸 교육부 장관은 유치원을 중심으로 한 보육대란 해법을 마련하기 위해 취임 닷새만인 지난 18일 장휘국 회장 등 시도교육감협의회 회장단과 첫 간담회를 가졌다.

이 자리에는 부회장인 조희연 서울교육감, 김복만 울산교육감, 감사인 설동호 대전교육감도 참석했다.

하지만 합의점을 도출하지 못한 채 양측의 입장차만 확인했다. 교육부가 진전된 협상안을 가져오기는커녕 기존 주장만 되풀이했기 때문이다.

이 부총리는 시한도 제시하지 않은 채 교육청이 먼저 누리 예산을 편성하면 추후에 목적예비비 3천억 원을 지급하겠다는 말만 되뇌인 것으로 알려졌다.

당장 급한 불을 끌 생각은 하지 않고 목적예비비를 틀어쥔 채 교육청들을 압박한 것이다.

정부·여당은 그동안에도 감사원 감사청구와 검찰 고발, 대법원제소 카드를 포함한 법적, 행정적, 재정적 수단 등 모든 방법을 총동원해 강력 대처해 나갈 것이라며 시도교육청을 옥좨왔다.

하지만 교육감들은 이날 회동에서 편성 여력이 없을 뿐더러, 과거 사례에 비춰 이같은 제안을 수용할 수 없다는 입장을 전달했다.

지난해에도 목적예비비 5064억 원을 제때 받지 못한 아픈 경험이 있기 때문이다.

황우여 전 교육부 장관은 지난해 2월 국회 답변에서 목적예비비 5064억 원을 2월 내에 교부하겠다고 했지만, 최경환 전 기획재정부 장관이 얼마 지나지 않아 이를 뒤집으면서 5월에서야 교부받는 우여곡절을 겪었다.

◇ 교육감들, 미봉책 아닌 근본대책 마련촉구

이준식 사회부총리 겸 교육부 장관(오른쪽)이 18일 오후 종로구 세종로 정부서울청사에서 전국시도교육감협의회 임원진과 누리과정 예산 해법을 위한 간담회를 위해 함께 이동하고 있다. 오른쪽부터 이 부총리, 조희연 서울시교육감, 장위국 광주교육감, 설동호 대전교육감, 김복만 울산교육감. (사진= 박종민 기자)
시도교육감들은 그러면서 정부 예산으로 누리과정 예산을 편성할 것과 근본적인 해법 마련을 다시 한 번 촉구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 부총리는 21일 부산에서 열리는 시도교육감 협의회 정기총회에 참석하고 싶다는 의사를 전달했지만 진전된 안을 제시하지 않는 한 참석 자체가 무의미하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우선, 급한 대로 보육대란을 막기 위해 이미 편성된 목적예비비 3천억 원을 즉각 집행한 뒤 근본적인 해결책 마련에도 적극 나서야 한다는 목소리가 거세지고 있다.

3천억 원은 어린이집 누리과정 예산 2조1323억 원의 14%에 해당하는 금액으로 대략 어린이집 예산 2개월분을 편성할 수 있는 금액이다.

◇ 서울·경기·광주·전남 유치원 원아 33만5천명 피해

교육부가 미온적으로 나오면서 당장 누리 예산이 편성되지 않은 서울과 경기, 광주, 전남 지역의 유치원들은 큰 혼란이 우려된다. 이들 지역의 원아 수는 전체 70만 명의 48%인 33만5천 명에 달한다.

유치원의 경우 매달 20일 이후 교육청에서 누리과정 지원비를 받아 교사 인건비 등으로 지급해 오고 있다.

다만 세종·울산·경남·경북·전북·제주·충남은 유치원 예산을 12개월 전액 편성했으며, 다른 지역들은 6~8개월씩 편성해 당장 문제가 생기지는 않는다.

어린이집의 경우도 학부모들이 매달 15일쯤 비용을 신용카드로 결제하면 그 다음 달 20일 이후 해당 카드사에 정산되는 방식이어서 다소 시간적인 여유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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