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기→사과→인권…'쯔위 사태' 사건일지

(사진=유튜브 영상 캡처)
10대 소녀가 흔든 국기의 파장은 엄청났다.

양안(중국·대만) 사이 반세기 넘게 존재해왔던 '독립 문제'는 다시 뜨거운 감자가 됐고, 국내에서는 아이돌 그룹 내 해외 국적 멤버들의 '인권 문제'가 수면 위로 떠올랐다. 그 중심에는 가수를 꿈꾸며 한국에 온 대만 소녀 저우쯔위가 있었다.

쯔위는 지난해 JYP엔터테인먼트(이하 JYP)가 내놓은 신인 그룹 트와이스로 데뷔하며 그 꿈을 이뤘다. 이제 막 가요계에 적응 중인 이 소녀에게 데뷔 3개월 만에 위기가 찾아왔다. 그리고 동시에 국제 정치·사회 문제를 대변하는 상징적 인물로 거듭났다. 본인의 의지와는 무관한 일이었다.

한국 나이로 18세, 만 나이로는 16세인 소녀가 특정한 정치적 입장을 주장하는 것은 어려운 일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쯔위는 방송 콘셉트 차원에서 국기를 흔든 것만으로도 그렇게 오해 받았고, 결국 한 쪽 입장을 선택할 수밖에 없었다.

중국 활동 중단부터 국가인권위원회 제소까지, '쯔위 사태'는 당분간 계속될 전망이다. 가요계에서 불거진 논란이 어떻게 국제 정치·인권 문제로 확산됐는지 10일 째를 맞은 오늘(22일) 정리해봤다.

◇ 1월 13일 : JYP, 쯔위의 중국 활동 중단 선언

JYP 차이나는 이날 공식 홈페이지에 "쯔위는 어떤 정치적 입장을 가지기 힘든 16세의 나이다. 오해가 풀릴 때까지 예정된 쯔위의 활동을 중단한다"는 내용의 1차 입장문을 띄웠다.

중국에서 활동 중인 대만 출신 연예인 황안이 쯔위가 지난해 11월 '마이 리틀 텔레비전'의 사전 인터넷 방송에서 대만 국기(청천백일기)를 흔든 것을 두고 문제 제기를 하고 나섰기 때문이다.

황안은 쯔위를 '대만 독립 지지자'라고 비난하면서 그에게 "대만 독립 주의자가 아님을 증명하라"고 주장했다.

중국 내 여론은 지속적으로 악화됐고, 사전 녹화를 마친 중국 방송의 트와이스 출연분까지 편집 위기에 놓였다.

◇ 1월 14일 : '하나의 중국 원칙' 담긴 JYP 두 번째 입장문

쯔위를 향한 중국 내 비난 여론은 가라 앉을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이날 중국 유력 포털 사이트나 SNS에는 '쯔위', 'JYP 보이콧' 등이 실시간 검색어를 차지했다.

JYP 차이나는 14일 다시 홈페이지에 두 번째 입장문을 올렸다. 뿔난 중국 대중을 달래고자 하는 의지가 확고하게 드러나는 글이었다.

JYP 차이나 측은 "쯔위 본인은 하나의 중국이란 원칙을 이해하고 존중한다. 쯔위는 어떠한 대만독립적인 발언도 한 적이 없고, 온라인 상에서 퍼진 쯔위가 대만 독립을 지지한다는 여론도 사실이 아니다"라고 처음으로 쯔위의 입장을 명확히 했다.

이어 "하나의 중국이라는 원칙을 이해 및 존중하고, 회사 내부에 한중 간의 우호관계를 해롭게 하는 상황이나 개인이 존재하는 것을 본사 역시 수용할 수 없음을 말씀드린다"고 회사 역시 해당 원칙에 동의한다는 뜻을 강조했다.

사과는 쯔위가 아닌 회사 차원에서 이루어졌다.

JYP 차이나는 "회사가 아티스트의 관리가 부족함이 있었다면 죄송스럽다고 생각한다"면서 "앞으로는 저희가 엄격히 상황을 지켜보며 이와 같은 일들이 발생하지 않도록 미연에 방지하겠고 다시 한번 이번 사건에 대해 미안함을 표한다"고 글을 마무리했다.

JYP가 공식 유튜브 계정에 올린 사과 동영상의 쯔위. (사진=유튜브 영상 캡처)
◇ 1월 15일 : 막다른 길 다다른 JYP, '사과 동영상' 초강수

중국 내 여론은 기업까지 움직였다. LG유플러스는 단독 출시폰 '화웨이 Y6' 전속모델이었던 쯔위의 모델 교체를 선언했다. 발탁된 지 약 일주일 만이었다.

LG유플러스는 중국 대중들의 거센 항의와 화웨이 측의 요청에 따라 이 같은 결정을 내린 것으로 알려졌다. 쯔위에 대한 비판 여론이 LG 계열사들, 특히 중국 사업 중인 LG 전자까지 확산되기 전에 차단한 것으로 해석된다.

설상가상, 이날 같은 JYP 소속 그룹인 투피엠으로부터 좋지 않은 소식이 들려왔다. 중국에서 예정됐던 투피엠의 행사가 '쯔위 사태' 여파로 취소된 것이다.

결국 JYP는 마지막 카드를 내밀었다. 박진영 프로듀서와 당사자인 쯔위는 중국을 향해 직접적인 사과와 함께 고개를 숙였다.

쯔위는 JYP 유튜브 공식 계정에 올라온 사과 동영상에서 "중국과 대만은 하나의 국가이고 저는 전부터 중국인으로서 자부심을 느꼈다"며 "제 과실 때문에 JYP뿐만 아니라, 두 나라 감정까지 상해를 입힌 점에 대해 죄송하다. 중국 활동을 모두 중지하고, 반성의 시간을 갖기로 했다"고 밝혔다.

박 프로듀서는 공식 홈페이지에 글을 올려 "쯔위는 지난 며칠 동안 많은 걸 느끼고 깨닫고 반성했다. 그녀는 13살이란 어린 나이에 집을 떠나 한국에 왔는데, 쯔위의 부모님을 대신하여 잘 가르치지 못한 저와 저희 회사의 잘못도 크다고 생각한다"고 사과했다.

◇ 1월 16일~17일 : 대만, '쯔위 공개 사과'에 들끓다

총통 선거 당일인 16일, 대만은 선거와 '쯔위 사과'로 달아올랐다. 일반 국민들은 물론이고, 정치인들까지 예외는 아니었다.

쯔위가 상징적 인물로 떠오르자 정치권은 일제히 지지 선언을 하고 나섰다. 맞대결을 펼친 민진당과 국민당도 '쯔위 사태'에는 하나의 목소리를 냈다.

선거에서 당선된 민진당 차이잉원 주석은 "(쯔위의 일로) 많은 국민이 마음 아파하고 분노하고 있다. 쯔위는 마음과 다르게 강압적으로 사과를 했을 것"이라면서 "'중화민국' 국민이 국기를 흔드는 것은 국가와의 일체감을 표시하는 정당한 행위다. 이를 억눌러서는 안 된다는 점을 국제사회에 밝힌다"고 쯔위를 옹호했다.

차이잉원 주석은 '하나의 중국 정책'에 양안이 합의한 '92공식'을 인정하지 않는 정치인이다.


이와 반대로 친중 정책을 펼치는 국민당의 주리룬 후보 역시 "매우 가슴 아픈 일이다. 대만의 민주 자유를 자부심으로 삼아 국기를 흐드는 친구들과 영원히 같은 편에 서겠다"고 이야기했다.

대만 외교부는 "자국 국기를 내보인 쯔위의 행동에는 아무 잘못이 없다. 대만 국민들도 쯔위를 지지한다"면서 "쯔위가 사과한 것은 소속사가 사업상의 이익을 고려해 내린 판단이라고 생각한다"고 사과 동영상을 올린 JYP를 비판했다.

또한 한국 주재 대만 대표부를 통해 쯔위 및 소속사와 접촉하도록 지시, 정부 차원에서 줄 수 있는 도움이 있는지 알아보겠다는 방침을 밝혔다.

여기에서 끝이 아니었다. 17일 밤, JYP 홈페이지가 디도스 공격을 받아 다운됐다. 일각에서는 국제 해킹그룹 '어나니머스' 소속 대만 해커들이 쯔위 사과에 반감을 품고 이 같은 일을 벌였다는 주장도 제기됐다.

JYP엔터테인먼트 박진영 프로듀서와 소속 그룹 트와이스 멤버 쯔위. (사진=자료사진, JYP엔터테인먼트 제공)
◇ 1월 18일 : 대만의 분노 그리고 JYP의 해명

주말이 지나도 대만의 분노는 가라앉지 않았다.

일부 노래반들은 쯔위 사건을 촉발한 가수 황안의 노래를 제공하지 않겠다고 선언했고, 황안을 규탄하고 쯔위를 지지하는 시위에 참가하겠다는 네티즌이 1만 명을 넘어섰다. 해당 시위는 24일 대만 수도인 타이베이에서 열린다.

그런가하면 대만 타이베이타임스는 대만의 온라인 패션잡지사인 '저스키'가 쯔위에 대한 매니지먼트 권리를 JYP로부터 최대 1억 대만달러(약 36억원)에 인수하겠다는 제안을 했다고 보도했다.

JYP는 또 한 번 입장문을 내고 '사과 동영상'을 해명했다. 36억 원 제안 보도가 사실이 아니라고 부인하기도 했다.

JYP는 "쯔위의 입장 발표는 쯔위가 미성년자이기 때문에 처음부터 부모님과 함께 상의했다. 쯔위 부모님이 한국에 들어와, 쯔위와 상의하고 최종 결정을 내렸다"면서 한 개인의 신념은 회사가 강요할 수도, 해서도 안되는 일이며 이 같은 일은 전혀 없었다"고 밝혔다.

그러나 사단법인 한국다문화센터의 입장은 달랐다. 한국다문화센터는 이날 쯔위의 사과를 '인권 침해'와 '인종 차별'이라고 비판하면서 국가인권위원회에 진정하겠다는 성명서를 발표했다.

◇ 1월 19일 : 대만 변호사는 JYP 고발, 대만 매체는 쯔위 잠입 취재

쯔위는 국내에서는 정상적으로 스케줄을 소화했다. 지난 18일 열린 MBC '2016 설특집 아이돌스타 육상·씨름·풋살·양궁·선수권대회'(이하 '아육대') 촬영에도 트와이스 멤버들과 함께 참석했다.

이번 '아육대' 촬영현장은 국내와 해외를 불문하고 언론 매체에 공개되지 않았다. 그런데 대만 한 매체에서 화제가 된 쯔위의 근황을 전하기 위해 잠입 취재를 감행한 것이다. 이 사실이 대만 현지에서 방송된 후, 뒤늦게 알려져 빈축을 샀다.

MBC와 JYP는 모두 해당 매체로부터 어떤 취재 협조 요청도 없었다고 밝혔다.

같은 날, 대만의 왕커푸 인권변호사는 타이베이 지방법원 검찰서에 JYP와 황안을 고발했다. 강제로 사과를 하도록 핍박했다는 '강제죄' 혐의였다.

◇ 1월 22일 : 한국다문화센터 국가인권위원회에 진정서 제출

예고했던대로 한국다문화센터는 이날 '쯔위 사과'와 관련해 국가인권위원회에 진정서를 냈다.

한국다문화센터는 "쯔위 양의 사과 동영상이 강요에 의한 것이라는 의혹이 있다. 이에 대해 국가기관에서 엄정하게 조사하여 밝혀달라"며 "쯔위 양의 사과 동영상으로 대만인 등으로부터 '인권을 무시하며 상업적 이익만 밝힌다'는 한국의 이미지가 형성되어 국가의 이미지가 훼손되었기에 국가기관이 나서서 해명해야 할 것"이라고 촉구했다.

박진영 프로듀서가 '부모를 대신해 잘 가르치지 못했다'고 사과하고, 동영상까지 올린 것은 엄연한 인종차별이라는 주장이다. 쯔위 외에 일본 국기를 흔든 멤버도 있었지만 오직 대만 출신인 쯔위에게만 이 같은 발언을 했기 때문이다.

그러면서 연예 기획사들에게 "다국적 걸그룹과 아이돌 그룹을 만들면서 돈과 사업성만 생각할 것이 아니라, 다문화적 이해와 국제관계, 인권에 대한 경각심을 갖기 위한 소양교육 등을 진행해야 할 것"이라고 꼬집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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