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친노패권주의와 김종인의 말바꾸기

김종인 더불어민주당 선거대책위원장 (사진=윤창원 기자/자료사진)
'언심성야 서심화야(言心聲也 書心畵也)'. '말은 마음의 소리요, 글씨는 마음의 그림이다'라는 뜻으로 중국 한나라 시대 학자였던 양웅(揚雄, BC53년~AD18년)이 엮은 양자법언(揚子法言)에 나오는 글귀다.

말과 글은 마음을 떠나 있을 수 없고, 따라서 정직하지 못한 마음에서 나오는 말과 글이라면 신뢰할 수 없음이리라.

그렇다면 더불어민주당 김종인(76) 선거대책위원장의 '말(言)'은 어떨까. 뒤섞여 갈피를 잡을 수 없는 혼돈을 불러오고 있다.

야인에서 정치인으로 또다시 변신한 지난 열흘 사이에 그의 말도 바뀌었다. 이른바 '박근혜의 킹메이커'에서 '문재인의 구원투수'로 옷을 갈아입은 이후 이어진 기자회견과 기자간담회, 인터뷰에서 확인할 수 있는 '앞뒤가 다른' 그의 말이다.

그는 지난 14일 더불어민주당에 발을 들여놓으면서 취임 일성으로 '정직'을 얘기했다. "정치는 정직해야 한다는 것이 저의 신념이며, 말의 기억을 지우고 신뢰를 저버리는 것은 잘못된 정치"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지금의 야당 분열을 초래한 친노패권주의의 청산을 다짐했다. 그는 17일 연합뉴스와의 인터뷰에서 "친노패권주의가 당에 얼마만큼 깊이 뿌리박고 있는지를 보겠고, 이것을 수습할 능력이 없다고 생각했으면 여기에 오지도 않았다"고 강조했다.

더욱이 그는 "(앞으로 출범할) 선대위에 친노는 한 사람도 없다"고도 했다.

그런데 닷새 만에 그의 말은 180도 바뀌었다. 친노, 친문 인사가 다수 포진된 더불어민주당의 선대위가 출범한 22일 기자간담회에서 그는 "솔직히 (나는) 누가 친노이고 친노가 아닌지 개념이 없는 사람"이라고 슬며시 한 발을 뺐다.


그러면서 "어떻게 짜야 화합하는 데 도움이 되느냐가 커다란 기준이었다"는 말로 친노패권주의 청산 목표가 당내화합으로 바뀌었음을 인정했다.

그는 "당의 결속이 가장 중요하다"면서 "당내 복잡한 갈등구조에 섞였던 사람들을 봉합하는 측면에서 인선이 이뤄졌다"고 덧붙였다.

김종인 위원장의 이런 말바꾸기에 어렵사리 당잔류를 선언한 박영선 의원이 어떤 입장을 취할 지도 관심이다. 지난해 세월호 특별법 당시 비대위원장직을 내려 놓으며 친노패권주의의 '희생양'이 됐던 박 의원은 이번에 더불어민주당과 국민의당 사이에서 고민할 때 친노패권주의가 바뀔 것인지 여부가 거취 결정의 기준이라고 강조했었다.

더욱이 '김종인 위원장과의 30년 인연'까지 소개하며 결국 선대위에 참여한 박영선 의원 입장에서 '김종인 선대위'가 사실상 '文의, 文에 의한, 文을 위한 선대위'라는 비판이 곤혹스러울 수 있다.

그런가 하면 전두환 군사정권의 모태가 된 국보위(국가보위비상대책위원회) 참여 전력에 대한 김종인 위원장의 해명성 발언도 지적하지 않을 수 없다.

그는 자신의 전력을 비판하는 것을 '舊정치 행태'로 규정하면서 "왜 그것이 문제가 되는지 잘 모르겠고, 국보위 뿐 아니라 지금까지 어떤 결정을 해 참여한 일에 스스로 후회한 적이 없다" 고 정당화했다.

덧붙여 국보위의 '부가가치세 폐지'를 막기 위해 참여하게 됐다고 말했다.

그러나 그의 말은 민주주의를 외치다 폭압정권에 목숨을 잃은 수 많은 광주영령들의 한(恨)을 달래기에는 턱없이 부족하고 또 부적절한 것이다.

김 위원장의 말과 인식을 지적하는 것은 오로지 광주정신의 '신성화' 때문만은 아니다.

한국정치의 모순이 여전히 '지역'에 있다고 말하는 김욱 교수는 <아주 낯선 상식>에서 "광주정신이 신성화될수록 광주의 세속적 욕망은 현실에서 점점 멀어졌다"고 분석한다.

하지만 이른바 광주정신의 신성이데올로기 때문에 호남의 세속적 욕망이 거세당했다 하더라도 광주를 피로 물들게 한 슬픈 역사는 그대로이지 않은가.

솔직히 특정 정당의 당내 문제에 큰 관심은 없다. 다만 김종인 위원장이 제1 야당의 선대위원장이라고 한다니 그 자리와 위치에 걸맞는 책임있는 말과 행동을 주문하는 것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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