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인 물은 썩는다…아카데미에 드리운 대종상 데자뷰

한국 대종상 영화제와 미국 아카데미 시상식 포스터. (사진=각 홈페이지 캡처)
고인 물은 결국 썩는다. 미국 아카데미 시상식(이하 아카데미)이 개혁에 시동을 걸었다. 후보들을 두고 인종 다양성 결여 논란이 발생했기 때문이다.

2년 동안 주요 부문 후보들이 백인 배우들로만 채워지면서 비판이 잇따랐다. 아카데미가 공정성을 잃고 인종 차별적인 후보 선정을 일삼았다는 것이다.

배우 윌 스미스, 그의 아내인 배우 제이다 핀켓 스미스, '똑바로 살아라'의 스파이크 리 감독 등 흑인 영화인들은 보이콧을 선언했다. 지난해부터 올해까지 영화에서 인상적인 연기를 펼친 흑인 배우들은 후보에서 제외되는 경우가 빈번히 발생해왔다.

백인 배우들도 예외는 아니었다. 배우 조지 클루니와 마크 러팔로는 공개적으로 백인과 남성에 치우쳐 있는 아카데미의 왜곡된 시스템을 지적했다.

결국 아카데미는 자체적인 개혁에 나섰다.


셰릴 분 아이작 위원장은 2020년까지 여성과 소수 인종 비율을 현재의 2배로 증가하고, 모든 회원의 투표권은 10년으로 제한, 재평가를 통해 갱신 여부를 결정한다고 약속했다. 만약 세 차례 재평가를 통과하게 되면 평생 회원이 될 자격이 주어진다.

뿐만 아니라 일정 나이에 이르거나 활동이 적은 회원은 교체하는 방안도 내놓았다.

구체적인 다양성 확보 방안은 지난 19일 열린 운영이사회에서 논의됐다.

아카데미 측은 시상식 투표권자는 물론, 수상 후보의 인종별 스펙트럼을 넓힐 새 투표 방식을 도입하기로 의견을 모았다. 주요 부문 후보 수를 확대하는 방법 역시 고려하고 있다.

인종과 성별 외에도 아카데미가 넘어야 할 산은 또 있다. 고령화 문제가 그것이다. 개혁을 위해 열린 이번 운영이사회에서는 고령화된 회원층을 쇄신하고, 젊은 인재들을 회원으로 초청하자는 주장이 제기됐다.

로스앤젤레스 타임스가 2012년 분석한 AMPAS 회원 현황에 따르면 회원의 94%가 백인, 77%가 남성, 54%가 60세 이상이다. 아카데미가 선정한 후보들에 다양성과 공정성을 담보하기 힘든 명백한 이유가 있는 셈이다.

아카데미 사태를 보며 문득 떠오르는 시상식이 있다. 바로 한국의 대종상 영화제(이하 대종상)다.

두 시상식은 모두 각 국가 영화계의 역사와 전통을 대표한다는 공통점을 갖고 있다. 뿐만 아니라 곪아 오던 문제가 터진 것도 닮았다. 아카데미처럼 대종상 또한 고령화되고 한 쪽에 편향된 결정권자들이 시상식의 다양성과 공정성을 상실하게 만들었고, 배우들의 불참으로 이어졌다.

할리우드 배우들처럼 공개적으로 불만을 표출하지는 않았더라도, '참가하지 않으면 상을 주지 않겠다'는 대종상의 불공정한 방침은 불참의 불씨가 되기 충분했다. 현장에서 '참가상'이 될 수 있는 상을 선뜻 받기가 힘들었던 탓이다.

결국 대종상 당일, 주요 부문마저 대리 수상을 하는 촌극이 벌어졌다. 영화 '국제시장'에 10관왕 타이틀을 안겼지만 이조차 다양성 논란을 불러 일으키면서 악화일로를 걸었다.

그러나 아카데미의 미래는 대종상과 달라질 수 있다. 시상식이 열리기 전부터 문제를 인식하고 일단 분명한 개혁 의지를 표명했기 때문이다. 아직 보완은 필요하지만 무엇보다 정상화될 여지가 남아 있는 것이다. 시상식이 가진 본질적인 의미를 다시 되찾기 위해 노력한다면 이전의 명성을 충분히 지켜낼 수 있다.

오는 2월 28일 열리는 아카데미 시상식이 과연 어떤 모습으로 펼쳐질지는 최초의 흑인 여성 위원장인 셰릴 분 아이작 그리고 6124명의 회원들에게 달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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