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1:오늘 뭐했지?]'노비문서 파문' 강호동, 설날 대회 불참

강호동. (자료화면 캡처)
[90년대 문화가 다시 떠오르고 있습니다. '응답하라' 시리즈는 높은 시청률을 기록했고, '토토가'는 길거리에 다시 90년대 음악이 흐르게 만들었습니다. 사실 90년대는 스포츠의 중흥기였습니다. 하이틴 잡지에 가수, 배우, 개그맨 등과 함께 스포츠 스타의 인기 순위가 실릴 정도였으니까요. 그렇다면 90년대 스포츠에는 어떤 일이 있었을까요. 병신년(丙申年)인 지금으로부터 25년 전. 1991년 오늘로 돌아가보려 합니다.]

설과 추석 등 명절 때마다 팬들을 찾아가는 스포츠가 있습니다. 바로 민속 스포츠인 씨름인데요.

사실 씨름 인기가 예전만 못합니다. 하지만 1990년대에는 씨름도 꽤나 인기 있는 스포츠였습니다. 씨름 선수들이 버는 돈도 프로야구, 프로축구 선수들 못지 않았던 때도 있었죠. 특히 명절 때면 가족들이 TV 앞에 모여 천하장사 씨름대회를 보던 기억이 생생합니다. 장사들의 이름을 줄줄 꿰고 다니던 시절도 있었습니다. 그만큼 스타 장사들이 많았다는 의미겠죠.

25년 전 오늘. 그러니까 1991년 2월12일에는 당시 최고의 장사였던 강호동이 15일 열릴 예정이었던 통일천하장사씨름대회 불참을 확정한 날입니다.

표면적인 이유는 연봉 협상이었습니다.

강호동은 1990년 연봉 3000만원을 받았습니다. 여기에 1990년 세 차례 천하장사대회를 독식하는 등 상금으로 3980만원을 벌었습니다. 모래판이 이만기의 시대에서 강호동의 시대로 넘어간 해이기도 합니다.


강호동은 117% 인상된 6500만원을 요구했는데요. 이만기의 1990년 연봉이 6000만원이었으니 일양약품이 받아들일리 없었습니다. 강호동은 협상을 끝내지 못하고 마산집으로 내려갔습니다. 뒤늦게 제주훈련장에 합류는 했지만, 연봉 협상은 지지부진했습니다. 강호동은 6500만원에 자유로운 CF 출연을 요구했고, 일양약품은 5000만원으로 맞섰습니다.

당시 강호동은 "프로야구 선동열 선수도 1억500만원을 받는 데 왜 최고 씨름 선수가 6500만원도 못 받느냐"고 토로했지만, 일양약품은 강호동을 달래기보다 강호동 기 꺾기에 나섰습니다.

사실 강호동이 연봉 협상에서 반기를 든 이유는 또 있었습니다.

바로 노비문서나 다름 없었던 당시 씨름단과 장사들의 계약서 때문인데요. 당시 계약서 제16조에는 '씨름단이 계약 갱신권리를 포기할 의사를 표명하지 않는 한 씨름단은 계약을 갱신할 권리를 계속 보유한다'는 내용이 있었습니다. 이적을 위해서는 계약금의 두 배를 물어야하고, 이 마저도 씨름단 동의가 없으면 불가한 상황이었습니다.

강호동은 "씨름판 잘못을 고치는 것이 천하장사의 사명"이라면서 설에 열리는 통일천하장사씨름대회 출전을 포기했습니다.

물론 이런 악습을 바꾸는 것 자체가 쉽지 않은 일이었습니다. 자칫하면 씨름 선수로서의 생명이 끝날 수도 있기 때문이었죠. 강호동은 결국 일양약품으로 복귀했고, 민속씨름협회로부터 벌금 600만원 징계를 받았습니다. 하지만 민속씨름협회에서 계약서 변경을 위해 움직이기 시작하는 등 강호동 효과는 분명히 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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