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세돌·알파고 대결, 그 너머를 보자"…SF평론가의 조언

[노컷 인터뷰] 박상준 서울SF아카이브 대표 "강한 인공지능 시대 도래"

바둑기사 이세돌 9단이 8일 오전 서울 광화문 포시즌스 호텔에서 열린 '이세돌(33) 9단-구글 알파고(AlphaGo) 세기의 대결' 기자간담회에서 인사말을 하고 있다. (사진=박종민 기자/노컷뉴스)
"알파고는 '약한' 인공지능에서 '강한' 인공지능으로 진화하는 시초 겪입니다. 그러한 인공지능이 스스로 발전하다 보면 어느 순간 '인간은 비합리적이고 비이성적인, 모순 가득한 존재'라는 걸 알아채는 날이 오겠죠. 지금은 기우로 여겨질지도 모르지만, 이에 대한 깊이 있는 고민을 함께 가져가야 할 때라고 봅니다."

바둑천재로 불리는 이세돌 9단과 인공지능(AI) 알파고의 바둑 맞대결에 전 세계의 이목이 쏠린 가운데, 이를 계기로 화제가 인류와 인공지능의 미래에 대한 논의로까지 확장되고 있다.

SF평론가인 박상준 서울SF아카이브 대표는 8일 CBS노컷뉴스에 "무엇보다 알파고가 이세돌 9단과의 대국을 앞두고 학습하는 과정에 관심이 간다"고 말했다. 여기에는 특별한 이유가 있다.

박 대표는 "알파고는 기존 바둑기사들의 기보를 계속 학습해 왔는데, 이를 확대해서 보면 인간들의 행동과 사고방식, 추리 패턴을 그대로 학습해 모방한다고 봐야 한다"며 "인공지능이 스스로 지능을 높이는 방법은 인간을 끊임없이 모방하는 길로 갈 수밖에 없는 것"이라고 했다.

"지금은 바둑이라는 아주 제한된 영역에서 알파고의 능력이 업그레이드 된다는 점만 화제에 오르고 있지만, 가까운 미래에 인공지능이 우리 일상에 침투해 들어올 경우 모든 영역에서 인간들이 기존에 어떻게 해 왔는지를 최대한 그대로 보고 학습하면서 비슷하게 맞추는 식으로 갈 겁니다. 그 과정에서 어느 시점이 되면 우리가 흔히 얘기하는 약한 인공지능에서 강한 인공지능으로 넘어가는 때가 오겠죠. 빅데이터를 무한대로 활용할 수 있는 현 시대에는 인공지능의 '딥 러닝'(Deep Learning·사람처럼 스스로 보고 배운 지식을 계속 쌓아가면서 공부하는 컴퓨터 인공지능 학습법)이 가능합니다. '인간 흉내내기'라는 큰 전략 아래 인공지능에 대한 학습이 이뤄지고 있는 셈이죠."

기존 컴퓨터는 1초에 100만 번의 덧셈·곱셈을 하는 식으로, 짧은 시간 안에 얼마나 많은 계산을 하는가라는 연산능력에 따라 그 가치를 평가받았다. 반면 강한 인공지능은 주어진 상황을 능동적으로 판단해 어느 부분을 제외하고 어느 부분을 취할지 선택하는 자아의식을 갖게 된다는 것이 박 대표의 설명이다.

"만약 '닭이 열 마리 반이 있을 때 다리는 전부 몇 개냐'라는 질문을 던지면 컴퓨터는 기계적으로 '21개'라는 답을 낼 겁니다. 반면 사람은 '닭이 어떻게 열 마리 반이 있을 수 있냐'며 의문을 제기하겠죠. 주어진 연산만 빠르게 수행하는 약한 인공지능과 달리, 강한 인공지능은 인간의 이러한 사고를 흉내냅니다. 강한 인공지능의 가장 원초적인 단계가 알파고에서 시작되고 있다고 봐요. 로봇제작업체인 보스턴 다이나믹스가 계속 만들어내는 보행 로봇들은 주어진 환경에서 가장 합리적인 해법을 찾으면서 안정된 자세를 유지합니다. 몇 년째 구글에서 시험하는 무인주행자동차에서도 강한 인공지능의 시대가 떠오르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죠."

◇ "인공지능의 지적능력, 인간으로 치면 10대 후반까지 도달"

박상준 서울SF아카이브 대표
'튜링 테스트'(Turing test)라는 것이 있다. 장막을 사이에 두고 컴퓨터가 인간과 얼마나 비슷하게 대화할 수 있는지를 기준으로 컴퓨터에 지능이 있는지를 판별하기 위한 테스트다. 박 대표는 "튜링 테스트를 완벽하게 통과한 컴퓨터가 아직 없는 상황에서 가까운 미래에 이를 무난히 통과하는 인공지능이 나올 수 있다"고 내다봤다.


"몇 년 전 한 인공지능이 이 테스트를 통과했는데, 인공지능에게 유리한 질문이 몇 개 있었다고 해 논란이 일었죠. 당시 테스트를 받은 인공지능은 10대로 판별 받아 완벽하게 통과하지는 못했어요. 지금의 흐름이라면 튜링 테스트를 통과하는 인공지능도 곧 나올 겁니다. 현재 일본에서는 몇 년째 동경대 입시를 보는 인공지능이 있어요. 이 인공지능은 일본의 중위권 대학에서는 입학허가를 받는 수준까지 올라왔죠. 이를 통해 현재 인공지능이 인간으로 치면 10대 후반의 지적 능력을 갖췄다는 걸 알 수 있죠."

박 대표에 따르면 2002년을 기점으로 전 세계의 정보 가운데 디지털 형식이 절반을 넘어섰고, 불과 5년 뒤인 2007년 전체 정보의 95% 이상이 디지털 형식으로 존재하고 있다. 기존 아날로그 정보들 역시 디지털로 변환 되고 있다. "정보가 디지털 형태로 존재한다는 것은 인공지능이 즉시 취사선택하고 재조합할 수 있는 빅데이터의 형태를 갖췄다는 의미로, 컴퓨터가 스스로 학습하는 딥 러닝 체계를 완벽하게 갖추게 되는 셈"이라는 것이 그의 설명이다.

"구글은 빅데이터를 갖고 있죠. 전 세계적으로 구글의 G메일을 이용하는 사람이 많은데, 익명성을 보장한다고는 하지만 G메일이나 안드로이드를 이용하는 사람들의 위치 정보를 전 세계적으로 수집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잖아요. 구글에서는 조만간 풍경사진 하나만 올리면 그곳이 지구상의 어디인지를 대답해 주는 서비스를 준비하고 있답니다. 그게 가능하려면 기존의 구글이나 안드로이드에 올라온 모든 사진의 빅데이터를 가져야 합니다. 이러한 정보가 전 세계적으로 어마어마하게 쌓여가고 있기에 이 정도 시점이면 비단 풍경사진 하나만 해당 되는 건 아니겠죠. 우리 주변의 모든 일상이 결국 인공지능의 예측 안에 들어가는 겁니다. 생각보다 멀지 않은 단계에 와 있다고 봐요."

그는 이러한 흐름을 주도하는 구글의 임원진에 주목했다. "구글이 무인주행자동차 등으로 영역을 넓혀가는 데는 이들이 컴퓨터와 관련한 인류의 미래 문명에 그만큼 큰 관심을 두고 있다"는 것이다.

"책 '특이점이 온다'로도 유명한 발명가이자 미래학자인 레이 커즈와일이 구글의 임원으로 들어가서 인공지능을 연구하고 있어요. 그는 인공지능이 고도로 발달하게 되면 인간들과 결합해 '포스트 휴먼'이 등장할 거라고 예측하는 인물입니다. 본래 사업인 검색엔진 영역에 충실하기 위해서라도 구글은 컴퓨터 스스로 인간에 필적하거나 인간보다 똑똑한 능력을 가져야 한다고 커즈와일을 비롯한 임원들이 생각하는 겁니다. 이 점에서 이세돌과 알파고의 대결은 인공지능의 발전을 환기시키려는 전략으로도 보여집니다. 이세돌을 통한 인공지능의 학습을 포함해서요."

◇ "인공지능에 '인간의 존엄성' 철칙처럼 심어 주려는 노력 동반돼야"

바둑기사 이세돌(가운데) 9단과 데미스 하사비스(왼쪽) 구글 딥마인드 최고경영자, 에릭 슈미트 구글 회장이 8일 오전 서울 광화문 포시즌스 호텔에서 열린 '이세돌(33) 9단-구글 알파고(AlphaGo) 세기의 대결' 기자간담회에서 선전을 다짐하고 있다. (사진=박종민 기자/노컷뉴스)
박 대표는 치밀한 데이터 분석을 통해 해법을 내놓는 방식의 정반대에 인간의 통찰력이 있다고 봤다. 바둑을 둘 때의 직관과 통찰 역시 여기에 바탕을 두고 있다는 것이다.

"철학의 차원에서 보면 '양이 축적되면 질로 전환한다'는 변증법적 입장, '전체는 개체들간의 합 이상'이라는 게슈탈트 개념을 떠올릴 수 있겠죠. 수많은 시행착오를 겪어 온 인간은 잘 된 통찰의 케이스를 축적해 왔잖아요. 마찬가지로 인공지능도 이런 식으로 빅데이터를 쌓아가면 인간을 넘어서는 통찰을 얻을 수 있겠죠. 경우의 수가 몹시 많은 바둑을 인간 세상, 우주의 축소판으로 볼 수 있을 텐데, 바둑기사들은 그 많은 경우의 수를 연산하지 않고 통찰의 힘으로 이끌어갑니다. 지금은 인간의 직관과 통찰이 컴퓨터를 앞서는 것으로 보입니다. 하지만 컴퓨터가 끊임없이 빅데이터를 능동적으로 처리하다 보면 어느 순간 인간의 직관과 통찰을 넘어서는, 우리로서는 상상할 수 없는 다른 차원의 무엇이 등장할 수도 있다는 상상으로 이어질 수밖에 없죠."

문제는 여기서 시작된다. "인공지능이 어느 시점에 도달해 모순적인 인간의 특징을 알아챌 경우 '기하학적이며 미학적인 완전한 세계를 만들기 위해 인간이라는 요소를 배제시켜야 한다'고 판단할 수도 있다"는 것이다.

"얼마 전 인공지능을 연구하는 학자 한 분을 만났어요. 그분이 '인공지능이 계속 발전하다 보면 인간을 바라보는 태도에 획기적인 변화가 있을 텐데, 지금부터라도 인간이 이 세상에 존재해야 하는 철칙을 심어 주려는 노력이 동반돼야 한다'는 이야기를 하시더군요. 강한 인공지능이 인간을 단순하게 '아름다운 세계에서 무익하고 해로운 존재'로 인식하게 되면 극단적으로 '매트릭스'나 '터미네이터' 같은 영화가 현실이 되는 거죠. 지금은 기우라고 생각할 수도 있겠지만, 알파고의 학습 패턴을 보면 이제 슬슬 이에 대해서도 생각해봐야 할 때가 아닌가라고 여겨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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