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뒤끝작렬] 침몰하는 부산영화제…책임지지 않는 부산시

노컷뉴스의 '뒤끝작렬'은 CBS 기자들의 취재 뒷얘기를 가감 없이 풀어내는 공간입니다. 전방위적 사회감시와 성역 없는 취재보도라는 '노컷뉴스'의 이름에 걸맞은 기사입니다. 때로는 방송에서는 다 담아내지 못한 따스한 감동이 '작렬'하는 기사가 되기도 할 것입니다. [편집자 주]

지난해 10월 부산 해운대구 영화의 전당에서 ‘제20회 부산국제영화제(BIFF)' 개막식이 진행되고 있다. (사진=황진환 기자/자료사진)
긴 침묵 끝에는 어떤 해결책이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그것은 명백한 오판이었다. 20년 만에 위기를 맞은 부산국제영화제(이하 부산영화제)로 인해 열린 부산시의 기자간담회 이야기다.

지난 20일 서울 세종문화회관의 한 식당, 부산시 관계자들은 서울에 소재한 각 매체 기자들과 마주했다.

2014년 영화 '다이빙벨' 상영 논란 이후 부산시 측에서 서울까지 올라와 기자간담회를 가지는 것은 상당히 이례적인 일이었다. 마침 영화인들이 영화제 '보이콧' 결정을 했으니 부산시로서도 발등에 불이 떨어진 상황이었다.

화두는 부산영화제를 둘러싼 각종 외압 논란과 부산시 대 영화제의 갈등 문제였다. 기자간담회는 내내 청문회 같은 분위기였다. 부산시 관계자들은 난색을 표하며 기자들의 공격적인 질문에 간신히 답을 이어나갔다.

처음 입장을 밝히면서부터 이야기가 엉뚱한 방향으로 흘러간 탓이었다. 부산시 측은 갈등 봉합책을 내놓기 보다는 그간 보도된 비판적 내용을 해명하기 바빴다. 위기 의식을 느낀 부산시가 구체적인 해결 방안을 내놓을 것이라는 예상이 완전히 깨지는 순간이었다.

해명마저 앞뒤가 맞지 않았다. "조직위원장은 하는 일이 없다"고 하면서도 "조직위원장 자리에는 부산시를 대표하는 사람을 앉히고 싶다"고 밝혔다. 신규 자문위원들에 대한 효력정지 가처분신청 이유에 대해서는 자문위원의 의결권 여부를 몰랐는데 임시 총회를 요구하니 영화제를 좌지우지하려는 것 같았다고 설명했다. 20년 동안 부산시에서 영화제가 열린 것이 맞는지를 의심하게 하는 내용이었다.

해결책은 그저 '뜬구름' 잡기에 불과할 뿐, 의지나 진정성을 찾아볼 수 없었다. 부산시 측은 "서병수 부산시장이 조직위원장에서 사퇴하는 것은 부산영화제의 자율성과 독립성을 보장하려는 의지"라며 "차기 조직위원장도 충분히 영화계와 논의해 선정하겠다"고 장담했다.

문제는 이것이 모두 '말'로만 이뤄진 약속이었다는 점이다.


이미 정부 권력을 비판하는 영화 '다이빙벨'에 대해 상영 중지 시도가 있었다. '제2의 다이빙벨'이 없으리라는 보장이 없으니 영화인들 입장에서는 부산시가 '말'로만 건네는 약속은 믿기 힘들 수밖에 없다. 이 때문에 서병수 부산시장 사퇴와 관계 없이 확실한 '정관 개정'을 통해 영화제의 기본적 조건을 보장받으려 하는 것이다.

부산시가 주최한 기자간담회의 압권은 "이 사안이 '보이콧'까지 갈 만한 일인지 모르겠다"는 김규옥 경제부시장의 발언이었다. 부산시는 왜 영화인들이 영화제 '불참'이라는 배수진까지 치면서 보이콧을 결단했는지 파악조차 못하고 있었다.

공무원 혹은 정치인과 예술인의 가치관은 다를 수밖에 없다. 다만 부산영화제가 부산시의 소중한 문화사업이라면 영화인들에게 역시 소중한 문화자산이라는 점은 분명하다.

어떤 영화인도 부산시가 이야기한 것처럼 '제3자이기 때문에' 영화제를 흔들려고 하지는 않는다는 이야기다. '보이콧'은 이들 나름대로 영화제의 본질을 지키고자 하는 마지막 방법이었다.

이날 부산시는 부산영화제에 대한 행정적 투명성과 지원금을 강조하면서 경제적 잣대를 서슴없이 들이댔다. 이는 문제의 본질을 흐리게 하는 처사나 다름없다. 영화계에서는 작품 선정의 투명성을 보장해 달라는 것일 뿐, 행정까지 감시하지 말라고 요구한 바가 없기 때문이다.

60억 원이라는 거액을 영화제에 지원하는 부산시 입장에서는 영화 하나 틀지 말라고 한 것이 뭐가 그렇게 큰일인지 의문일 수도 있다. "내가 이만큼 돈을 주니, 우리 말을 들으라"는 지극히 경제 논리에 입각한 사고방식이다. 그러나 많은 영화제들이 여기에 매몰돼 망가졌고, 다시는 원래대로 돌아오지 못했다. 그만큼 예술적 자율성과 독립성 보장은 영화제에 있어 필수적인 요소다.

한 가지 의문은 부산시가 '보이콧' 카드를 꺼내든 영화계나, 정관 개정을 요구하는 집행위원회 측에 어떤 '위기감'을 느끼고 있었다는 점이다. 상위기관은 아니더라도 거액을 지원하는 부산시가 '갑'일 수밖에 없다는 논리에 바탕을 둔 위기감이었다.

어디까지나 영화계와 문제의 초점 자체가 달라 가능한 일이었다. 영화계가 '표현의 자유 보장'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면, 부산시는 영화제의 '주도권'에 신경이 쏠려 있었다. 신규 자문위원단 효력정지 가처분신청에서 알 수 있듯이 정관 개정이나 차기 조직위원장 선출 등이 영화계의 뜻대로 흘러갈 경우, '주도권'을 빼앗긴다고 인식한 것으로 보인다.

1시간이 조금 넘는 기자회견이 끝나자 모두의 얼굴에는 피로한 기색이 역력했다. 유일하게 거둔 수확은 이것이 얼마나 의미 없는 소모전이었는지를 재확인했다는 것이었다. 겉으로는 분명히 '소통'을 했는데 그 안은 '불통'으로 가득했다.

부산시 관계자들 중 어느 누구도 이렇게 흘러 온 사태에 책임지고자 하는 생각이 보이지 않았다. 20년을 함께했지만 영화인들을 이해하려는 노력조차도 없었다. 그들은 "우리도 이럴 줄 몰랐다", "억울하다", "몰랐다" 등의 이야기만 앵무새처럼 반복했다. 이를 봤을 때 어쩌면 부산영화제의 침몰은 아주 오래 전부터 예고된 것이었는지도 모른다.

실시간 랭킹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