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혐'의 시대에서 '아가씨'를 보다

[노컷 리뷰] 남성 중심적 세계를 전복시키는 유쾌한 해학과 풍자

(사진=영화 '아가씨' 스틸컷)
박찬욱 감독이 달라졌다. 복수극은 복수극인데, 시종일관 즐겁고 심지어 달콤하기까지 하다.

대다수 관객들이 알고 있는 사실이지만 영화 '아가씨'는 영국 작가 사라 워터스의 소설 '핑거스미스'를 원작으로 한다.


빅토리아 시대를 배경으로 한 이 소설은 반전에 반전을 거듭하는 스릴러와 함께 여성과 여성 사이에 흐르는 사랑의 감정을 섬세하게 그려 나간다.

굳이 분류한다면 지난 2005년 영국 공영방송 BBC에서 방송된 동명의 드라마는 서정적인 로맨틱 스릴러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박찬욱 감독은 그 공간을 1930년대 일제강점기 조선으로 옮겨왔고, '각색' 수준이라는 원작자의 말처럼 정체성은 완전히 달라졌다.

영화는 소매치기 숙희와 아가씨, 두 사람의 시점으로 나뉜다. 백작과 거래해 아가씨의 집에 하녀로 오게 된 숙희는 서서히 아가씨에게 매료되기 시작하고, 그 감정은 곧 혼란스러운 사랑으로 변화한다.

흥미로운 점 하나는 숙희가 아가씨와 결혼해 재산 상속을 노리는 동업자 백작과 대등한 관계를 이루고 있다는 사실이다. 어린 소녀이자 위장 하녀인 숙희는 무시 당할 모든 조건을 갖추고 있지만 결코 만만한 대상이 아니다.

백작에게 당당한 자세로 아가씨에게 잘해주라는 충고를 하기도 하고, 자신을 끌고 와 희롱하는 백작에게 통쾌한 일침을 날리기도 한다. 원작 소설과 드라마의 하녀보다는 훨씬 더 능동적이고, 생동감이 넘친다. 특히 사랑 앞에서는 순수한 마음 그대로를 드러내고 겁먹지 않는다.

아가씨는 어떨까. 경직된 인형과도 같은 아가씨는 숙희의 시선에서는 돌봐주고 지켜야 할 한 없이 나약한 존재다. 조금만 실체를 들여다보면 아가씨는 오히려 숙희만큼 강인한 인물이다. 그는 억압된 세계 속에서 과감하게 미래를 꿈꾸고, 그것을 실행에 옮긴다.

'거듭되는 반전'에 묘미를 둔 '핑거스미스'와 달리 박찬욱 감독은 두 번의 반전만을 준비했다. 그 반전 또한 놀랍도록 충격적인 것은 아니다. '반전'보다는 풍자와 해학에 초점을 맞췄다고 해야 좋을 것이다.

(사진=영화 '아가씨' 스틸컷)
무엇보다 눈길이 가는 것은 여성을 소유하거나 멋대로 휘두르려는 남성들에 대한 감독의 시선이다. 아가씨는 후견인인 이모부로부터 모든 것을 통제당하며 철저히 그의 의도대로 길러진다. 백작은 영화 내내 아가씨와 숙희 사이에서 두 사람을 교묘하게 이용하고 조종한다.

그러나 결국 아가씨와 숙희는 남성들이 강요하거나 강제하는 것에 순종하지 않는다. 아가씨는 자신을 관음하던 남성들을 보기 좋게 골탕 먹이고, 오히려 자신들이 갇혀 있던 세계를 전복시켜 그들을 절망 속에 빠뜨린다. 다소 기괴하게 표현되지만 가부장제 권력이나 남성 중심적인 가치관은 '아가씨'에서 그 힘을 잃고 철저하게 풍자 대상이 된다.

'아가씨'를 두고 왜색이 짙은 영화로 볼 수도 있을 것이다. 실제로 영화 속에는 웅장하면서도 아름다운 일본식 가옥과 정원, 의상, 소품 등 미장센들이 관객들을 매혹시킨다. 분명한 것은 그것이 단지 미학으로 끝나지 않고, 일본 특유의 은폐된 성문화와 상류층의 이중성을 폭로하는 방식으로 이용된다는 사실이다.

비록 제69회 칸국제영화제에서는 경쟁 부문 수상이 불발됐지만, 기발한 풍자와 해학으로 아쉬움을 달랠 수 있다. 오는 6월 1일 개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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