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 대통령 또 "월남 패망"…베트남 정통성 무시 논란

불필요한 외교마찰 소지, 70년대 '냉전적 사고방식' 지적

27일 박근혜 대통령이 청와대 수석비서관 회의를 주재하고 있다. (사진=청와대 제공)
박근혜 대통령은 27일 청와대 수석비서관회의를 주재하면서 거듭 '월남 패망'을 거론했다. 이에 따라 베트남과의 외교마찰 소지 등 발언의 부적절성이 지적되고 있다.

박 대통령은 이날 "국가가 위기에 처했을 때 가장 무서운 것은 내부의 분열과 무관심"이라며 "과거 월남이 패망했을 때도 내부의 분열과 무관심이 큰 원인이었다"고 말했다. 북핵·미사일 위협과 관련해 "분열을 꾀하며 북한을 옹호하는 세력들을 막아야 한다"고 언급하는 과정에서 월남 패망을 거론했다.

북한의 4차 핵실험 강행 1주일 뒤였던 지난 1월13일에도 월남 패망이 공식 언급됐다. 박 대통령은 당시 대국민 담화에서 "월남이 패망할 때 지식인들은 귀를 닫고 있었고 국민들은 현실정치에 무관심이었고 정치인들은 나서지 않았다"고 말했다. "모든 정쟁을 내려놓고 힘을 합해야 한다. 국민 여러분이 나서달라"면서 이렇게 발언했다.

월남은 현재의 베트남사회주의공화국을 뜻한다. 다만 '월남 패망' 언급 시에는 1975년 4월까지 26년가량 북위 17도 군사분계선 이남에 존재했던 나라를 의미한다. 북베트남은 내전 끝에 75년 남베트남을 무력 통일했다.

박 대통령의 발언은 정식 수교 24년째로 '전략적 협력 동반자' 관계에 있는 베트남을 배려하지 않는 수사로 인식될 수 있다. 월남 패망을 강조하는 경우, '패망시킨' 쪽을 부정하는 인상이 남기 때문이다. 제4위 교역국이자 제3위 투자대상국, 자유무역협정(FTA) 체결국인 베트남의 중요성을 감안해도 발언의 적절성에 의문이 제기된다.


정작 취임 첫해 베트남 국빈방문을 하고, 월남을 패망시킨 장본인이자 현재 베트남의 '국부'로 추앙받는 정치지도자 호치민의 묘소를 참배한 박 대통령 자신의 행보에 어울리지 않는 면도 있다.

국회 관계자는 "'아' 다르고 '어' 다르다. '베트남이 통일을 이뤘다'가 아니라 '베트남 일부 지역이 패망했다'고 할 때, 듣는 베트남 입장에서는 정통성을 무시당하는 게 될 수도 있다"며 "장제스의 국민당 정부가 대만으로 밀려났다고 해서 '중국이 패망했다'고 하지는 않는다"고 지적했다.

물론 박 대통령의 언급은 단순히 패망한 외국 사례를 '가치중립적'으로 든 것으로 볼 수도 있다. 그렇다면 차라리 우리 역사를 택해, 불필요한 대외 마찰 가능성을 없애는 게 더 낫다. 지배계층 분열 끝에 패망한 '분단국' 고구려·백제 등 사례는 많다.

박 대통령의 발언에는 '70년대식 반공주의 세계관'이 배경으로 작용한다는 지적이다. 남베트남은 박정희 유신독재 시절 패망했고, 당시 대통령 특별담화에는 "정부군(남베트남)이 공산군보다 힘이 우세했는데도 패전했다. 국론 통일, 총화단결이 안됐기 때문"이라고 적시됐다. 모친의 서거에 따라 박 대통령은 이 시기 '퍼스트 레이디'였다.

최창렬 용인대 교수(정치학)는 "발언 취지가 북한의 도발위협에 온 국민이 힘 모아 대응하자는 것임은 분명하다"며 "다만 의도와 달리 불필요한 외교적 마찰 소지를 안고 있다. 과거 냉전적 사고방식의 산물인 '월남 패망'이라는 용어는 현재의 한·베트남 관계를 반영하지 못한다"고 지적했다.

또 "'분열을 꾀하며 북한을 옹호하는 세력'을 거론한 대목도 과거 권위주의 정권처럼 북한 위협을 빌미로 정치적 이익을 노리는 것으로 오해를 살 수 있다. 본의 아니게, 단합이 아니라 분열만 조장하는 게 될 수도 있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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