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hy뉴스] "김시곤은 왜 이정현 전화를 녹음했을까?"

뉴스의 속사정이 궁금하다. 뉴스의 행간을 속 시원히 짚어 줍니다. [Why뉴스]는 CBS 라디오 <김현정의 뉴스쇼>를 통해 들을 수 있습니다. [편집자 주]

■ 방송 : 권영철의 Why뉴스
■ 채널 : 표준 FM 98.1 (07:30~09:00)
■ 진행 : 김현정 앵커
■ 대담 : 권영철 CBS 선임기자

이정현 전 청와대 홍보수석과 김시곤 전 KBS 보도국장의 통화 내용이 공개되면서 청와대의 언론톤제 의혹이 사실로 드러났다. 시민단체와 언론단체에서는 5공정권에서의 '보도지침'에 빗대 '신 보도지침'이라며 청와대의 방송장악을 끝내야 한다고 주장한다.

정치권 일각에서는 청와대의 방송장악 의혹보다는 김시곤 전 보도국장의 전화 녹음에 문제를 제기하기도 하지만 이런 주장은 '본말전도' 라는 비판을 받고 있다.

그래서 오늘 [Why뉴스]에서는 "김시곤 전 KBS 보도국장은 왜 이정현 전 홍보수석의 전화를 녹음했을까?"라는 주제로 그 속사정을 알아보고자 한다.

이정현 전 청와대 홍보수석과 김시곤 전 KBS 보도국장. (사진=자료사진)
▶ 김시곤 국장과 이정현 홍보수석과의 전화 통화가 자주 있었나?

= 자주라고 표현하는 게 적절할 지는 모르겠지만 여러차례 전화 통화를 한 건 맞다. 이정현 의원은 "당시 김시곤 국장과는 평소에도 편하게 이야기 하는 친한 사이"라고 밝힌바 있다. 그 얘기는 전화 통화를 자주했다는 얘기와 다름없을 것이다.

다만 김시곤 국장이 쓴 비망록(보도국장 업무일지)과 공개된 녹취록을 근거로하면 네차례 통화한 게 확인된다.

김 국장은 통화가 가능하냐는 문자메시지에 "기자회견을 했다는 이유로 정직4개월을 받은 입장이어서 (통화가 곤란하다)"는 메시지만 보내왔다. 그러면서 '자주 통화했다고 해도 되느냐?'는 질문에 "공개된 4번이 전부 다"라고 밝혔다.

그렇지만 당시 이정현 홍보수석과 김시곤 보도국장의 통화 녹음을 들어보면 네 차례만 통화할 정도의 관계는 아닌 것으로 보인다.

김 국장의 녹음파일 공개를 설득한 것으로 알려진 김주언 한국기자협회 고문(전 KBS이사)은 "본인이 밝히지 않아서 잘 모르지만 공개된 것 이외에도 통화한 게 더 있지 않겠나?"라고 말했다.

▶ 통화한 걸 모두 녹음한거냐?

= 공개된 네 차례의 통화 중 통화내역이 녹음된 건 세월호 참사 직후인 2014년 4월 21일과 4월 30일 두 차례다. KBS 내부에 확인해봐도 "두 차례 녹음 밖에 없는 없는 걸로 안다"는 답변이었다.

김주언 고문은 "공개되지 않은 녹취록은 없는 걸로 안다"고 말했다. 이미 공개된 4월 21일 통화와 4월 30일 통화 내역 밖에 없다는 얘기다.

이정현 의원이 정무수석이던 2013년 5월 13일 통화와 홍보수석이던 2013년 10월 27일 통화는 녹음파일이 없다는 얘기다.

2013년 5월 13일 김시곤 전 KBS 보도국장의 비망록 (컴퓨터에 기호와 메모로 기록했던 것을 풀어서 다시 작성한 자료)
▶ 세월호 참사 이전에는 통화내용을 녹음하지 않았고 그 이후 녹음을 했다는 거냐?

= 지금까지 드러난 걸로는 그렇다.

김 국장의 비망록을 보면 5월 13일에는 <사장이 "내일부터는 '윤창중 사건 속보'를 1번째로 다루지 말라"고 지시하고 이정현 정무수석도 전화를 걸어와 '대통령 방미성과를 잘 다뤄달라고 주문> 이렇게 기록돼 있다.

2013년 10월 27일 김시곤 전 KBS 보도국장의 비망록
10월 27일에는 <그런데 저녁 무렵 이정현 홍보수석이 전화를 걸어와 '청와대 안뜰서 아리랑 공연'을 맨 마지막에 편집한 것은 문제 있는 것 아니냐고 불만을 토로하길래 내가 맨 뒤에 편집하는 것은 이른바 빽톱으로 오히려 시청자들의 주목도가 높아서 홀대하는 것이 아니라고 설명함. 이 얘기를 정치부장에게 전하자 정치부장은 이정현 수석에게 전화해 "앞으로 사장이나 보도국장에게 직접 전화하지 말고 정치부장에게 얘기하라"고 항의했다며 내게 전함.>이라고 기록돼 있다.

녹취록에 나오는 내용처럼 의견 차이가 있는 게 아니어서 그런지 녹음을 하지는 않았던 것으로 알려졌다.

김시곤 전 KBS 보도국장 (사진=윤창원 기자/자료사진)
▶ 그런데 왜 세월호 참사 이후의 통화는 녹음 한 거냐?

= 김시곤 국장에게 그 이유를 물었지만 답하지 않았다. 그래서 김주언 고문과 KBS 내부관계자들에게 확인을 했다.

먼저 김주언 고문은 "녹음을 들어보면 처음부터 녹음을 한 게 아니라 대화중간부터 녹음했다. 얘기를 듣다가 너무 심하다 싶어서 녹음한 것으로 안다"고 말했다. 김 고문은 "이정현 수석의 말이 너무 심하니까 세월호 참사와 관련해서 정부의 책임을 자꾸 감출려고 하고, 해경 비판보도 하지 말라고 하고, 또 욕설이나 육두문자도 막 나오고 그렇게 되니까 휴대전화 녹음버튼을 누른 것으로 안다"면서 "(녹취된)두 건에 대해서만 했고 그 전의 통화는 업무일지만 기록했다"고 설명했다.

김주언 고문은 "김시곤 국장이 다른 정치적인 이슈는 (어떻게 했는지)몰라도 세월호 참사에 대해서는 정부책임이 상당히 강하다는 나름대로의 신념을 갖고 있다. 그 사람이 진보적이지는 않지만 기자로서의 기본적인 양식을 갖고 있다"고 덧붙였다. 보도국장으로서 외압도 싫어했고 노조나 기협의 간섭이나 관여도 무지 싫어했다는 것이다.

KBS 내부에서는 조금 다르게 얘기한다. KBS의 전현직 고위간부들에게 확인한 바로는 김시곤 국장이 간부들 여러명과 같이 있을때 이정현 수석이 전화를 걸어서 큰소리로 통화를 하는 걸 듣고(이정현 의원과 통화를 하면 목소리가 크고 일방적으로 계속 얘기하는 스타일이어서 주변에서 목소리가 다 들릴 정도임) 녹음을 하게 됐다는 것이다. 이미 공개된 통화내용을 들어보면 지나치기 때문이다. 이정현 의원도 언론인터뷰에서 "당시에는 절박한 심정에서 그랬는데 부족했고 또 불찰이 있었다'면서 "(김 국장과 친한사이여서 그랬는데) 다소 과했다. 호소하는 방법이 부덕했다"고 말했다.

지난 2014년 김시곤 전 KBS 보도국장의 발언으로 KBS 앞에서 면담을 요구하며 경찰과 대치하고 있는 세월호 참사 유가족들 (사진=황진환 기자/자료사진)
▶ 녹음은 왜 공개하게 된건가?

= 김시곤 국장은 녹음을 공개하는 걸 매우 꺼렸던 것으로 알려졌다. 그렇지만 5공정권의 보도지침을 공개한 김주언 기자협회 고문의 끈질긴 설득에 따라 공개를 결심한 것으로 전해졌다.

김주언 고문은 "KBS 이사로 재직할 당시 김시곤 국장과 알게됐다"면서 "김 국장은 아직 KBS 직원이어서 불이익이 있을 수도 있고, 녹취록이 공개될 경우 폭로하려는 취지를 왜곡 할 수도 있다는 이유 때문에 고민이 깊었다"고 전했다.

김 고문은 "재판부와 세월호 특조위에 자료를 제출했기 때문에 어떻게든 내용이 알려질 텐데 특조위 종료일에 맞춰 언론통제를 밝히자고 설득했다"면서 "개인적인 핍박이나 어려움이 있겠지만 공영방송 독립과 언론 발전을 위해 기록을 남긴다는 생각을 하라고 설득했다"고 밝혔다.


김시곤 전 KBS 보도국장 (사진=윤창원 기자/자료사진)
▶ 김시곤 국장이 정치에 관심이 있거나 그런건 아니라는 거냐?

= 그렇다. 김시곤 국장이 보도국장 재직시절 성향이 보수적이고 친재벌적이었던 것으로 KBS 선후배들이 증언한다.

그렇지만 정치와는 무관하다고 동료 선후배들이 한결같이 얘기한다. 김 국장의 상사였던 전직 KBS 고위관계자는 "정치에는 전혀 관심이 없는 후배"라면서 "김 국장의 성향이 보수적이고 고집에 세다. 그리고 외부에서 이러쿵 저러쿵 간섭하는 걸 싫어하는 스타일"이라고 말했다.

김주언 고문도 "김 전 국장은 이념적으로 보수 쪽이고, 밑에서 들고일어나면 참지 못하는 권위적인 사람일 수 있다"면서 그렇지만 "보도 문제에 있어선 외부 개입을 매우 싫어하고 길환영 사장의 구체적인 개입에 대해서도 여러차례 부딪힌 것으로 안다"고 말했다.

김시곤 국장의 성격이나 업무스타일은 업무일지에 기재된 <나의 보도국장직 수행 지침> 을 보면 이해가 쉽다.

나의 보도국장직 수행 지침
- 정치권과의 전쟁, 사장과의 전쟁, 본부장과의 전쟁, 부하들과의 전쟁, 노조와의 전쟁이다. 정신 똑바로 차리지 않으면 바로 죽음이다.
- 전쟁에서의 최선은 싸우지 않는 것이고 차선은 싸워서 이기는 것이다.
- KBS가 신뢰를 잃는 것은 순간이요 신뢰를 회복하는 것은 긴긴 시간이다.
- 사장이나 정치권과는 불가근 불가원이다.
- 당장 이 순간만을 보지 말고 길게 멀리 봐라.
- 사장의 개입이 도저히 감당이 안 되면 시스템을 만들고 외부에 고발하라.
- 되도록이면 이른바 정무적 판단을 배제하라.
- KBS뉴스는 대통령을 위한 뉴스, 사장을 위한 뉴스가 아니라 시청자를 위한 뉴스여야 한다.
- 사장과 본부장은 비정규직이지만 나는 정규직이며 기자들의 대표인 보도국장이다.
- 여기(보도국장직)까지 온 것도 과분한 복이라 생각하고 더 이상 욕심 부리지 말라.


다만 KBS 내부적으로는 김 국장의 녹취록 공개에 대해 엇갈린 반응도 있다. KBS 출신으로 독립언론 뉴스타파의 대표를 맡고 있는 김용진 기자는 "김시곤 국장의 그동안의 행보와 관계없이 녹취록과 비망록을 공개한 것은 '언론사에 길이 남을 일"이라면서 "권력에 부역하고도 이렇게 공개하지 않는 사람들이 더욱 많은데 개인적인 불이익을 감내하면서 공개를 결심한 건 평가해야 한다"고 말했다.

KBS 현직 중견간부는 "김 국장의 청와대 압박을 입증하는 녹취록과 외압의 실체를 밝혀 줄 비망록 공개는 평가받을 일이지만 그동안 자신이 해왔던 잘못에 대해서도 사과하고 반성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김 국장이 보수적인 성향이었고 친재벌적이었었으며 세월호 참사를 교통사고에 비유하는 등 보도국장으로 재직하면서 행했던 잘못들이 셀 수 없을 정도"라고 질타하기도 했다.

김 전 국장은 2014년 세월호 참사 국면에서 청와대와 길환영 전 사장이 청와대 관련 KBS 보도와 인사에 개입했다는 의혹을 폭로했다가 정직 4개월 징계를 받았다. 지난 4월 징계의 부당성을 다투는 재판에서 패소했지만 1심 재판부는 길 전 사장의 보도 개입을 인정했다.

새누리당 이정현 의원 (사진=윤창원 기자/자료사진)
▶ 그런데 김시곤 국장의 녹취록 공개를 두고 청와대의 외압 보다 녹취록 공개를 비판하는 사람들이 있다는데? 본말이 전도 되는 것 아닌가?

= 그런 전화를 몇 통 받았다. 제가 만난 사람 중에도 KBS 보도국장이나 되면서 통화를 녹음하고 그러냐? 라고 문제를 제기하는 사람도 있었다.

그렇지만 이번 사태의 본질은 청와대가 KBS의 보도에 얼마나 깊이 개입하는지 드러났다는 것이다.

이정현 의원과 김시곤 국장의 통화 중 이정현 전 홍보수석의 말 가운데 유의해서 볼 부분이 있다. "지금 그런 식으로 9시 뉴스에 다른데도 아니고 말이야...."라거나 " 이상한 방송들이 하고 있는 것과 똑같이 그렇게 지금 몰아가고 있는 것 같아요. 그렇지 않고는 어떻게 공영방송이 이런 위기 상황에서 아니 지금 누구 잘못으로 이 일이 벌어져 가지고 있는데..."라는 발언 등인데 공영방송은 비판을 해서는 안 된다는 취지로 들린다.

그리고 4월 30일 통화에서 "그래 한번만 도와줘 진짜 요거 하필이면 또 세상에 (대통령님이) KBS를 오늘 봤네 아이고 한번만 도와주시오 자~ 국장님 나 한번만 도와줘 진짜로" 라면서 "국장님 요거 한번만 도와주시오 국장님 요거 한번만 도와주고 만약 되게되면 나한테 전화 한번 좀 해줘~ 응?"이라고 한다.

솔직히 청와대가 CBS나 신문사에 전화해서 김시곤 국장에 대해서 한 말과 비슷하게 했다면 그건 압력이기 보다는 읍소에 가까울 수 있다. 그렇지만 인사권을 청와대가 쥐고 있는 KBS나 MBC에 이렇게 전화하면 그건 명백한 압력이다. 비망록을 보면 얼마나 자주 간섭하는지를 알 수 있다.

그리고 이번 일은 청와대의 방송장악이 핵심이다. 본말이 전도 되어서는 안 된다. 과거 1992년 대통령 선거과정에서 '초원복집 사건'이라는 게 있었다.

'기춘대원군'으로 불리는 당시 김기춘 법무장관이 부산지역 기관장들 부산시장, 부산지검장, 부산경찰청장, 부산교육감, 안기부 부산지부장, 부산지구 기무부대장, 부산상공회의소장 등을 모아놓고 지역감정을 퍼뜨려서 선거에 이용하자고 노골적으로 선거에 개입해야 한다고 불법 선거운동을 모의했다. 그런데 김기춘 전 장관의 선거법 위반은 무죄가 선고됐다. '우리가 남이가'라는 최악의 지역감정을 부추긴 선거였지만 선거법위반에 무죄를 선고한 것이다.

오히려 당시 주류 언론들이 '불법도청'에 초점을 맞추면서 도청설비를 설치해 ‘주거 침입죄’가 적용된 통일국민당 관계자와 도청에 관여한 안기부 직원은 유죄가(벌금 90만 원) 확정됐고 정몽준 당시 통일국민당 정책위원회 의장은 초원 복집 사건 관련자에게 도피 자금을 제공한 혐의로 불구속 기소돼 징역6월의 선고유예가 선고됐다.

청와대에서는 (이정현 김시곤의)그 통화를 두고 "(대통령 지시가 아닌) 이정현 전 홍보수석의 독자적 판단이었다"고 발뺌을 하고 있다. 그렇지만 지금 청와대에서 누가 대통령의 이름을 도용해서 방송국에 압력을 행사할 수 있을까? 박 대통령의 복심으로 불렸던 이정현 의원이 대통령의 이름을 사칭한다? 있을 수 없는 일이다. 주어가 없다고 얘기하지만 그 통화내용을 보면 대통령이라는 걸 초등학생도 알 수 있을 것이다.

이번 녹취록의 본질은 청와대가 외압을 행사해서 방송 보도를 마음대로 주물러겠다는 것이다. 왜 청와대는 세월호 참사의 진실을 밝히는 걸 두려워 하는지? 왜 언론보도에 그렇게 민감하게 반응하는지 그 본질을 잊지 말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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