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자는 꽃"…그게 바로 '여혐'입니다

만연한 '여성혐오(misogyny)', 드라마∙예능∙광고∙언론에도 그대로 녹아들어

사진은 기사와 관련 없음. (사진=스마트이미지 제공)
'여성 혐오를 혐오한다'의 저자인 우에노 치즈코는 자신의 책에서 "여성을 남성과 동등한 주체로 인정하지 않는 여성의 객체화, 타자화-더 직설적으로 말하면 여성멸시-가 곧 여성혐오"라고 했다.

한국사회에 만연한 여성혐오는 일상생활에서뿐만 아니라 드라마와 예능, 광고, 언론 등 미디어에서도 그대로 드러난다.

◇ 여자는 꽃?

보통 회사에서나 집단에서 여성은 본인이 가진 능력으로 평가받기보다는 아름다운 외모, 성적인 매력으로 판단되거나 거론될 때가 많다. 그것을 노골적으로 드러내는 것이 바로 "여자는 꽃"이라는 표현이다. 가부장제, 남성중심인 한국사회는 여성을 남성과 동등한 인격체로 바라보지 않고 '여자'라는 성별로만 받아들여 성적 객체로 만들어버린다.

그리고 자기들 입맛대로 평가하고 재단해 (예쁘고 어린 여자는) 숭배하고 (못생기고 늙은 여자는) 희롱한다. 우리 사회에서 여자는 너무나도 쉽게 그리고 당연하게 성적 대상화되고, 타자화되고, '꽃'으로 표현된다.

tvN 드라마 '또! 오해영'은 여자를 '꽃'으로 한정시켜 성적 매력만을 부각시키는 대사를 극중 인물로 하여금 아무렇지 않게 내뱉게 한다. (사진=tvN 드라마 '또! 오해영' 화면 캡처)
최근 인기리에 막을 내린 tvN 드라마 '또! 오해영'은 여자를 '꽃'으로 한정시켜 성적 매력만을 부각시키는 대사를 극중 인물로 하여금 아무렇지 않게 내뱉게 한다. 나이 많은 직장 상사(남자)는 새로 부임한 능력 있는 부하 직원(전혜빈)에게 "오, 여기는 완전히 꽃밭이네. 그런데 이 많은 꽃 중에서 이 꽃이 가장 싱싱한 것 같다"는 대사를 날린다.

'여성은 꽃'이라는 표현을 통해 성적 대상화하고, '싱싱하다'는 표현을 통해 비하한다. 남자의 말에 여자 상사(예지원)가 "성희롱이다"며 그 언행이 잘못됐음을 일갈하지만, 작가는 성희롱을 당한 당사자로 하여금 "기분 나쁘지 않다. 감사하죠, 예쁘다는데"라는 대사를 하게 해 성희롱 문제를 축소시킨다.

KBS 예능 프로그램 '1박2일'의 '이화여자대학교 편'이 문제가 된 것도 비슷한 이유 때문이다. 남자 연예인들은 학교에 들어가기 전 입구에서부터 '여대'에 왔다며 기대감과 흥분을 감추지 못한 채 호들갑을 떨었고, 가수 데프콘은 "꽃이 말을 한다"며 학생들을 '꽃'으로 지칭했다.

'1박 2일'은 남자 출연자들에게 '파우더룸에서 머리 묶어주기', '학생들과 함께 사진 찍기' 등의 미션을 수행하게 했다. 이전에 방영됐던 '서울대학교 편'에서의 미션(수능 만점자 찾기, 학생들과 수학문제 풀기 등)을 비교해보면 한국 미디어가 '여대'를 어떤 시선으로 바라보고 또 어떻게 소비하는지 알 수 있다.


◇ 여자는 예민하고 잘 삐치고 감성적이다?

한국사회는 '여자=감성적'이라는 단순하고도 잘못된 공식을 이용해 '여자는 감성적이어서 예민하고, 잘 삐치고, 논리적이지 못하다'는 프레임을 만들어내고 미디어는 그것을 그대로 차용한다. '예민함, 감성적, 비논리적'이라는 편견의 틀에 갇힌 여성과 그로 인해 생성된 부정적 이미지는 드라마나 예능을 통해 확대 재생산된다.

MBC 예능프로그램 '라디오스타'는 남자 출연자가 대화를 하다 삐치거나 언짢은 기색을 드러내면 여자아이를 표현하는 '양 갈래 머리' CG를 입힌다.

MBC 예능프로그램 '라디오스타'는 남자 출연자가 대화를 하다 토라지거나 언짢은 기색을 보이면 그들의 머리에 '양 갈래 머리'를 컴퓨터그래픽(CG)으로 붙여 넣는다. (사진=해당 방송 화면 캡처)
MBC 예능프로그램 '라디오스타'는 남자 출연자가 대화를 하다 토라지거나 언짢은 기색을 보이면 그들의 머리에 '양 갈래 머리'를 컴퓨터그래픽(CG)으로 붙여 넣는다. 이는 '여자(아이)=잘 삐침'을 의미하며, 삐치거나 토라지는 것은 '여자'만 갖는 특성이라는 왜곡된 인식을 만들어낸다. 이처럼 미디어는 여성에게 부정적 이미지를 덮어씌우고 그것을 재생산함으로써 시청자로 하여금 무의식적으로 '여자는 원래 잘 삐치는 존재'라는 생각을 갖게 한다.

예능·코미디 프로그램은 여성에 대한 왜곡된 이미지를 웃음 유발 장치로 사용하고, 시청자로 하여금 웃고 즐기게 함으로써 여성혐오 코드를 아무 비판 없이 수용하도록 만든다. 한국여성민우회 미디어운동본부 활동가는 "여성혐오 관점이 재미있다거나 농담으로 받아들여지는 문화 자체가 변해야 여성혐오가 만연한 사회 인식이 개선될 수 있다"고 지적했다.

◇ 가르치려 들지 마!(Stop Mansplain!)

리베카 솔닛의 '남자들은 자꾸 나를 가르치려 든다'에서 파생된 '맨스플레인(mansplain)'은 '남자(man)'와 '설명하다(explain)'를 합친 신조어로, 남자가 여자에게 잘난 체하며 아랫사람 대하듯 말하는 것을 뜻한다. 여성을 남성보다 열등하게 생각하고 가르쳐줘야 한다는 존재로 인식하는 것, 즉 성차별‧남성 우월적 인식 역시 여성혐오다.

"여자들은 멍청해서 머리가 남자한테 안 된다"고 말한 개그맨 장동민의 발언이 단적인 예다. '그것도 모르냐', '여자가 이걸 알겠어'라는 편견과 오만에서 출발하는 여성혐오 관점은 미디어에도 그대로 나타난다.

삼성화재, KB 손해보험 등 손해보험업계는 최근 20대 여자연예인을 모델로 채용해 '맨스플레인' 인식이 들어간 광고를 내보냈다. 여자를 가르침을 받는 대상으로, 남자는 여자에게 가르침을 주는 주체로 설정했다는 점에서 그 관점이 드러난다.

삼성화재 애니카 다이렉트보험은 배우 박보영이 "자동차보험 어디 것 들어야 하지?"라며 고민하면 '삼촌팬'들이 단체로 등장해 "삼촌들이 알려줄게!"라고 외치는 장면이 나온다. 이 광고 역시 여자는 보험에 대해서 잘 모르고, 따라서 남자가 가르쳐줘야 한다는 남성 우월적 인식을 여실히 보여준다.

KB 손해보험은 체조선수 손연재를 모델로 내세워 '맨스플레인'을 당하는 대상으로 그려낸다. 손연재(여자)를 초보운전자 후배로, 배우 정웅인(남자)을 운전고수 선배로 설정해 여자를 핸들조차 돌리지 못하는 운전 미숙자로 묘사한다.

광고 속에서 손연재는 핸들을 꽉 잡은 채 어찌해야 할 줄 모르겠다는 표정과 태도로 운전을 하며, 정웅인은 그런 손연재에게 "리본은 겁나 잘 돌리면서 핸들은 왜 못 돌리냐"는 조롱하는 듯한 대사를 내뱉는다. 미디어에서 여성은 항상 '운전 못하는 자', '가르침을 받는 대상'이 되고, 남성은 '가르침을 주는 주체', '운전에 있어서 더 우월한 존재'로 그려진다.

도로교통공단의 자료(2014년)에 따르면 남성의 교통사고 비율(71%)이 여성(29%)보다 월등히 높고, 면허 소지자 대비 사고 발생률을 비교해보더라도 남성은 100명당 1.0건, 여성은 0.34건으로 남성의 사고발생비율이 여성보다 훨씬 높다. 객관적이고 명확한 통계자료가 있음에도 온라인상에서 그리고 일상생활에서 여성은 운전 못하는 사람으로 인식되고, 차량사고 현장마다 '김여사'로 소환돼 아무 근거도 없이 사고의 주범으로 낙인찍히며 조롱당해야 했다.

◇ 한국 언론에 만연한 여혐

한국 기사들의 제목과 내용은 '여혐' 그 자체를 담고 있다. '"바둑의 'ㅂ'자도 모르는 여성도 팬 됐다"', '설리 연인 최자…"설리, 밤에 전화해서 O 해달라고 조른다"', '비혼이 대세?…외국 처녀라야 딱지 떼는 농촌총각엔 '상처'' 등 제목만 봐도 언론들이 여성을 무시하고, 성적 대상화하고, 잠재적 연애 대상만으로 바라보는 인식이 그대로 드러난다.

한국 언론의 여성혐오는 여성이 범죄의 피해자일 때 더욱 명백하게 드러난다. 여성이 피해자임에도 기사제목에 여성의 나이와 성별, 직업을 기재하거나 'OO녀'와 같은 이름을 붙임으로써 그 사건을 여성의 것으로 만든다. 성추행 사건의 피해자를 '대장내시경녀'로, 살인사건의 피해자를 '가방녀'로 호명하며 낙인을 찍는 방식이다.

또 성폭행 피해자에게 '만취녀'라는 이름을 붙여 범죄의 원인을 '술 취한' 여성에게 돌려버린다. 각종 성범죄 기사들은 제목에서부터 가해자를 쏙 빼놓고, 피해자 여성만을 조명해 2차 가해를 한다.

성범죄 방식을 적나라하게 묘사하거나 성폭행 장면을 일러스트로 표현해 일종의 '포르노'로 소비하는 것 또한 2차 가해다.

한국 언론이나 광고, 예능, 드라마 등이 행하는 여성혐오는 각종 성차별, 성희롱, 여성 무시·차별·멸시·숭배 등 다양한 방식으로 나타난다.

송란희 한국여성의전화 사무처장은 "현재 한국 언론은 '여혐'을 안 하는 게 아니라 그것이 여혐인지조차도 몰라서 하는 것이라 생각한다"며 "의도하지 않았는데도 여성혐오적 관점의 기사를 쓰는 게 더 심각하다고 보고, 이것은 언론만의 문제라기보다는 우리사회 전체의 인식 문제"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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