좀비 말고 인간…'부산행'의 진짜 욕망

영화 '부산행' 스틸컷.
'좀비물'하면 생각나는 몇 가지 단어들이 있다. 고어하거나 B급이거나. 그런 의미에서 영화 '부산행'은 고어하지도 않고, B급 느낌은 더더욱 아니다.

'부산행'은 그간 애니메이션을 만들어왔던 연상호 감독의 첫 실사 영화 데뷔작이다.

작품마다 날카로운 사회 비판적 시각을 담아 온 그답게 '부산행' 역시 그런 색채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았다.

사건 초기, '전염병'을 '폭동'으로 왜곡시키며 거짓된 정보로 국민들을 안심시키는 정부의 모습은 '세월호 참사'를 연상시키고, 생존을 위해 '각자도생'하는 인간 군상들이 끊임없이 등장한다.

주인공 석우(공유 분)와 끊임없이 대척점에 서는 용석은 이를 대표하는 인물이다. 배우 김의성이 연기하는 고속버스 회사 임원 용석은 인간성과 도덕성을 상실해 결국 좀비보다 잔인한 성정의 인간관을 보여준다.


사실 '부산행'은 단순 '좀비물'이라고 보기에는 어려운 지점이 있다. '좀비물'보다는 '좀비 바이러스'를 소재로 한 '재난물'이 더욱 어울릴 것이다.

'좀비' 대 '인간'의 대결 구도가 아닌, '좀비화'라는 예기치 않은 재난 속에서 각 인간들이 어떤 방식으로 생존하는지에 초점을 맞췄다. 다른 사연을 가진 인간들이 무고하게 '좀비'가 되는 과정은 안타깝기까지 하다. 그래서 '부산행'의 좀비는 주도적으로 공포를 자아내는 역할이 아니라, 주인공들의 생존 드라마나 메시지를 더욱 견고하게 만드는 도구처럼 쓰인다. 그 '좀비'마저도 인간들의 끝없는 이기심이 만들어 낸 결과물이지만.

영화 '부산행' 스틸컷.
모두가 처한 상황은 동일하다. 그러나 결국 주인공들 각자의 결말은 그들의 선택이 좌우한다. 누군가는 좀비가 되기 전에 죽음을 택하고, 누군가는 기꺼이 좀비가 되길 원하고, 또 누군가는 누군가를 지키기 위해 제물을 자처하고. 상황이 얼마나 비참하든 이들의 다른 가치관은 첨예하게 부딪친다. '좀비' 대 '인간'의 생존 갈등 물밑에는 서로를 의심하고 배척하는 '인간' 대 '인간'의 대립 혹은 그 가운데에도 존재하는 연대가 짙게 흐른다.

주인공들이 역에서, 기차 안에서 쉴 틈 없이 좀비를 피해 달아나기 때문에 손에 땀을 쥐게 하는 긴장감은 상당하다. 조금이라도 방심하면 좀비가 나타나고, 또 나타나 도망을 가야 하는 일이 반복된다. 심지어 안전한 곳을 확보하기 위해 좀비 무리를 뚫고 맞서 싸우기도 한다. 무더운 여름에 간담을 서늘하게 만드는 액션씬과 부자연스럽지 않은 CG는 영화에 몰입감을 더한다.

비록 유료 시사회로 인한 '변칙 개봉' 논란은 있었지만, 현재 '부산행'은 100만 단위로 관객 수를 갱신할 때마다 역대 최단 기간 신기록을 세우고 있다. 일반적인 '좀비물'은 아닐지라도 일단 한국 영화에서 시도하지 않았던 소재로 대중들의 마음을 강력하게 사로잡은 점은 높게 평가할 만하다.

한 가지 아쉬운 점은 재난 영화가 가진 클리셰를 그대로 답습한 듯한 드라마 전개다. '좀비' 소재, 사회 비판적인 뉘앙스 등 일부 특징적인 요소를 제외하면 '부산행'은 재난 속에서도 빛나는 인간애와 감동을 강조하는 재난 영화 특유의 신파성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생사를 가르는 영화 속 사건들이 감동 자아내기를 향해 질주하고 있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는 이유가 그것이다. '좀비 바이러스'를 선택한 것처럼 드라마 측면에서도 좀 더 실험적인 정신을 발휘했다면 좋았다는 생각이 드는 부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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