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종률의 리우 레터]女양궁 3인방, 뜨거운 '눈물의 포옹과 박치기'

'미선아, 이제 웃어' 12일(한국 시각) 리우데자네이루올림픽에서 단체전과 개인전을 석권한 여자 양궁 대표팀 한승훈 코치(왼쪽부터), 최미선, 장혜진, 기보배, 양창훈 감독, 문형철 총 감독이 시상식 뒤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리우=노컷뉴스)
12일(한국 시각) 브라질 삼보드로무 경기장에서는 새로운 '양궁 여제'가 탄생했습니다. '짱콩' 장혜진(29 · LH)이 8일 단체전에 이어 이날 개인전까지 금메달을 목에 걸면서 새로운 스타로 우뚝 섰습니다.


4년 전 런던 대회 여제였던 기보배(28 · 광주시청)는 기꺼이 왕관을 친구에게 넘겨줬습니다. 기보배는 이번 대회 단체전 금메달에 이어 개인전까지 사상 첫 2관왕을 노렸지만 장혜진과 4강전에서 접전 끝에 결승행 티켓을 내줬습니다. 그래도 기보배는 값진 동메달을 목에 걸었습니다.

다만 단체전 금메달을 합작한 막내 최미선(20 · 광주여대)은 아쉽게 개인전 메달이 무산됐습니다. 최미선은 이날 알레한드라 발렌시아(멕시코)와 8강전에서 0-6(23-25 26-29 27-29) 충격의 완패를 안았습니다. 세계 랭킹 1위가 18위에 덜미를 잡힌 이변이었습니다.

이날 최대 초속 5m 안팎까지 불었던 바람의 희생양이 됐습니다. 충격의 패배를 안은 최미선은 경기 후 눈물을 쏟아내며 취재진을 안타깝게 만들었습니다.

최미선은 "단체전 금메달을 땄지만 준비를 많이 했는데 너무 허무하다"며 참았던 눈물을 쏟아냈습니다. 단체전 금메달 뒤 "아직 배가 고프다"던 최미선의 허기는 채워지지 않았던 겁니다.

최미선이 11일(한국 시각) 리우올림픽 여자 양궁 개인전 8강전에서 충격패를 안은 뒤 인터뷰 도중 눈물을 훔치고 있다.(리우=노컷뉴스)
언니들은 그런 막내를 따뜻하게 안아줬습니다. 세계 최고의 실력을 갖췄음에도 날씨 변수에 무너진 동생의 마음을 금메달과 동메달로 어루만졌습니다. 특히 기보배는 3, 4위 전에서 발렌시아를 꺾고 동생의 설욕을 대신해줬습니다.

사실 이번 금메달은 이 3인방 중 누가 따도 이상할 게 없었습니다. 누구든 금메달에 어울릴 실력을 갖고 있었습니다. 기보배는 이날 기자회견에서 개인전 2연패가 무산된 데 대해 "만약 한국 선수들 함께 출전하지 않았다면 가능했을 것"이라면서 "한국 선수들은 그 어렵다는 선발전을 이겨낸 선수들이라 어떻게 보면 우리나라 선수들과 싸움이라고 볼 수 있다"고 말했습니다.

최미선은 다만 운이 없었을 뿐입니다. 경기 후 양창훈 여자 대표팀 감독은 취재진에게 "이 말을 꼭 써달라"고 신신당부했습니다. 양 감독은 "만약 발렌시아와 16강전을 미선이가 아닌 장혜진이나 기보배가 치렀다면 결과는 달랐을 것"이라면서 "미선이가 쏠 때는 정말 운이 없었다"고 강조했습니다.

막내의 희생으로 언니들의 금메달이 가능했다는 겁니다. 양 감독은 "발렌시아가 16강전에서만 10점씩을 쏘고 다음에는 무너졌다"면서 "혜진이나 보배도 잘했지만 미선이가 희생양이 되면서 메달을 딸 수 있었던 것"이라면서 막내의 상처를 보듬었습니다.

언니들도 기자회견에서 막내를 챙겼습니다. 기보배가 먼저 "사실 미선이가 가장 성적과 컨디션이 좋아서 개인적으로 금메달 딸 거라 예상했다"면서 "그런데 날씨가 변수가 됐다"고 아쉬움을 드러냈습니다. 이어 "이런 경험을 통해서 미선이가 도쿄올림픽에 도전해서 좋은 결과 얻으면 좋겠다"고 힘을 실어줬습니다.

장혜진도 마찬가지였습니다. 맏언니는 막내에 대해 "주변에서 기대를 많이 하고 있었기 때문에 어린 나이에 부담이 됐을 것"이라면서 "그러나 사선에서 최선을 다했기 때문에 절대 낙심하지 말고 잘 이겨내서 도쿄에서 좋은 결과를 냈으면 좋겠다"는 격려로 어깨를 두드려줬습니다.

'아이구, 두야' 장혜진과 기보배, 최미선 등 여자 양궁 3인방이 12일(한국 시각) 리우데자네이루올림픽 개인전 금메달과 동메달을 합작한 뒤 훈련장에서 만나 포옹을 하는 모습(왼쪽)과 이후 서로 박치기를 한 뒤 웃으며 머리를 감싸는 모습.(리우=노컷뉴스)
기자회견 뒤 장혜진과 기보배는 가장 먼저 최미선을 찾았습니다. 막내는 회견장 옆 훈련장에서 문형철 총감독, 양 감독, 한승훈 코치 등과 함께 언니들을 기다렸습니다.

3명 자매들은 보자마자 서로를 부둥켜안았습니다.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눈물이 흘렀습니다.

하지만 짠한 순간도 잠시. 3명은 곧이어 까르르 웃음을 터뜨렸습니다. 축하해주고, 위로해주고 싶은 마음이 너무 강해 급하게 껴안다가 서로 머리를 쿵 하고 부딪힌 겁니다. 감동이 어렸던 훈련장은 의외의 박치기에 웃음바다로 변했습니다.

8강전 뒤 눈물을 쏟아냈던 최미선도 비로소 환하게 웃을 수 있었습니다. 최미선은 언니들의 토닥거림과 쓰담쓰담에 눈가에 눈물이 맺혀 있으면서도 미소를 지었습니다. "개인전 메달을 따지 못해 많이 아쉬웠는데 언니들이 대신 따주면서 마음이 많이 풀렸다"는 최미선의 목소리는 8강전 직후보다 힘이 실려 있었습니다.

막내에 대한 정도 애틋했지만 장혜진과 기보배, 친구의 우정도 뜨거웠습니다. 기보배는 친구의 2관왕 등극에 대해 "혜진이는 정말 쾌활한 성격이고 긍정적인 아이라서 잘 해낼 거라 믿었고 평소에도 훈련을 하면서 의지를 많이 했다"면서 "누군가는 꼭 금메달을 따야 한다는 부담감을 3명 모두 갖고 있었는데 그걸 잘 이겨주고 금메달 가져와줘서 너무나 고맙다"고 축하했습니다.

장혜진도 마찬가집니다. 기자회견 뒤 장혜진은 "훈련을 하면서 힘이 들 때마다 보배를 믿고 의지했다"고 화답했습니다. 친구는 선의의 경쟁 속에 서로에 기대며 올림픽 단체전과 개인전 금메달을 합작했던 겁니다.

또 다시 세계 최강임을 입증한 한국 여자 양궁. 신궁(神弓) 코리아의 전설은 3인방의 뜨거운 우정과 팀 워크가 있었기에 가능했던 겁니다. 장혜진과 기보배의 노력과 기량도 빛났지만 막내 최미선의 헌신과 희생도 그만큼 값졌습니다. 다시금 축하드립니다, 또 도쿄에서 또 다시 대한민국 양궁의 위상을 드높여주길 바랍니다.

여자양궁 기보배 장혜진 최미선이 7일 오후(현지시간) 브라질 리우데자네이루 마라카낭 삼보드로무 양궁장에서 열린 2016 리우 올림픽 양궁 여자 단체전 결승전에서 금메달을 확정짓고 전날 금메달을 목에 건 남자 대표팀 구본찬(왼쪽부터), 김우진, 이승윤과 함께 기쁨을 나누고 있다.(리우=올림픽사진공동취재단)
p.s-이번 대회 양궁 대표팀은 사상 첫 전 종목 석권이라는 웅대한 목표를 품고 리우 땅을 밟았습니다. 이미 남녀 단체전에 이어 여자 개인전까지 석권한 대표팀은 13일(한국 시각) 남자 개인전만 남아 있습니다. 구본찬(23 · 현대제철)과 막내 이승윤(21 · 코오롱엑스텐보이즈)이 나섭니다.

장혜진은 "아무래도 전 종목 석권을 목표로 참가해 부담이 크겠지만 다음 경기를 믿고 할 수 있다는 마음가짐으로 하면 잘 될 것이라고 생각한다"고 격려했습니다. 리우의 양궁 여신이 힘을 실어준 만큼 낭보가 이어질 것으로 기대합니다.

특히 남자 대표팀은 세계 랭킹 1위 김우진(24 · 청주시청)이 32강전에서 역시 충격패를 당한 상황. 여자 대표팀은 막내를 언니들이 위로했지만 구본찬과 이승윤이 형의 아픔을 금빛 화살로 시원하게 날려주길 바랍니다. 남자 대표팀의 브로맨스에 대한 레터도 준비가 돼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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