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복 71주년…朴대통령의 '애국'에 따라붙는 물음표

"21세기 애국심의 핵심은 대한민국 헌법에 충실하겠다는 것이 돼야 마땅"

광복절을 앞두고 지난 12일 열린 청와대 독립유공자 초청 오찬에서 박근혜 대통령이 김영관 전 광복군동지회장의 모두발언을 경청하고 있다. (사진=청와대 제공)
71번째 광복절을 앞둔 지난 12일 청와대 독립유공자 초청 오찬 자리에서 박근혜 대통령과 같은 테이블에 앉아 있던 김영관(92) 전 광복군동지회장의 일갈이 세간의 이목을 집중시켰습니다.

"1948년 8월 15일을 대한민국의 건국절로 하자는 일부의 주장은 헌법에 위배되고, 실증적 사실과도 부합되지 않고, 역사 왜곡이고, 역사의 단절을 초래할 뿐이라고 생각합니다."

뉴라이트 등 우익진영 일각에서 주장하는, 대한민국 정부 수립일인 1948년 8월 15일을 건국절로 제정하자는 주장을 정면으로 반박한 것이죠. 1940년대 학병으로 일본군에 징집당했다 탈출한 뒤 광복군에 합류, 중국 장시성 전선에서 활약했던 김 전 회장은 상하이 임시정부 출범일이 대한민국 건국일이라는 점을 강조하고자 다음과 같이 설명했습니다.

"대한민국은 1919년 4월 중국 상하이에서 탄생했다는 것이 역사적으로도 엄연한 사실입니다. 왜 우리 스스로 역사를 왜곡하면서까지 독립투쟁을 과소평가하고, 국란 시 나라를 되찾고자 투쟁한 임시정부의 역사적 의의를 외면하는지 이해할 수 없습니다. 역사를 잊은 민족은 미래가 없다고 그랬습니다. 우리의 쓰라리고 아팠던 지난 역사에서 교훈을 얻어 오늘과 내일에 대비하고자 하는 마음으로 감히 말씀 드렸습니다."

김 전 회장의 설명은 오롯이 대한민국 헌법에 바탕을 두고 있습니다. 알다시피 헌법 전문은 '유구한 역사와 전통에 빛나는 우리 대한국민은 3·1운동으로 건립된 대한민국임시정부의 법통과 불의에 항거한 4·19민주이념을 계승'한다고 규정하고 있으니까요.

결국 1919년 상하이 임시정부가 아니라 1948년에 대한민국이 건국됐다는 뉴라이트 등의 논리는 헌법을 정면으로 부정하는 주장이 되는 것입니다.

정부 수립일을 건국절로 제정하자는 이러한 반헌법적인 주장 뒤에는 일제에 부역했던 친일파를 단죄하지 못한 우리네 과거사 문제가 똬리를 틀고 있습니다. 해방 뒤에도 여전히 한국 사회의 요직을 차지한 채 현재에까지 이르고 있는 친일파와 그 후손들로서는, 헌법에서 상해 임시정부의 정통성을 인정하고 있는 한 '민족 반역자'라는 틀에서 벗어날 수 없을 테니까요.

그런데 광복 70주년을 맞았던 지난해 8월 15일, 박근혜 대통령은 광복절 기념사에서 "오늘은 광복 70주년이자 건국 67주년을 맞는 역사적인 날"이라고 언급해 큰 논란을 낳았습니다. 상하이 임시정부가 들어선 해를 감안했을 때 건국 96주년임에도 불구하고, 대통령이 굳이 67주년이라 한 데는 헌법에 반하는 뉴라이트 등의 주장을 받아들였기 때문이라는 지적이 끊이지 않았습니다. '헌법의 수호자'로서 대통령의 올바른 자세가 아니라는 비판이이었죠.

앞서 소개한, 김영관 전 광복군동지회장의 일갈이 있던 청와대 독립유공자 초청 오찬 자리에서도 박 대통령은 건국절 관련 언급은 하지 않은 것으로 전해졌습니다. 대신 박 대통령은 김 전 회장의 발언 뒤 이어진 모두발언을 통해 "나라를 위해 목숨을 바치신 선열들을 생각하면 어떤 일이 있어도 국민의 생명과 국가의 안전을 지키는 일에 타협하거나 양보하는 일은 결코 없을 것"이라며 '사드'(THAAD·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 논란에 대한 정면돌파를 선언했습니다.


◇ "21세기 열린 애국심이란 것은 결국 헌법에 대한 충성이다"

박 대통령은 취임 이후 국정 운영에서 애국, 애국심을 유독 강조해 왔습니다. 이는 대중의 호응을 얻는 문화 콘텐츠를 예로 든 언급에서도 어렵지 않게 확인할 수 있습니다.

박 대통령은 지난 3월 21일 청와대 수석비서관회의에서 당시 인기리에 방영되던 TV 드라마 '태양의 후예'에 대해 "젊은이들에게 애국심을 고취하고 국가관을 확립하는 데에도 교육적인 효과가 있다"고 강조했었죠. 앞서 지난 2014년 영화 '국제시장' 개봉 당시에도 "최근에 돌풍을 일으키는 영화에도 보니까 부부싸움을 하다가도 애국가가 퍼지니까 국가배례를 하더라"며 "그렇게 해야 나라라는 소중한 공동체가 건전하게 어떤 역경 속에서도 발전해 나갈 수 있는 것이 아니겠느냐"고 전했습니다.

그렇다면 진정한 애국, 애국심은 무엇일까요. 지난 11일 방송된 EBS '민주주의 특강'의 24강 '급진 자유주의, 민주공화국을 옹호하다'에서 윤평중 한신대 철학과 교수는 한법 제1조 1항 '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이다'를 언급하며 "공화정은 모든 민중이 평등한 자유를 누리면서 그 나라의 주인이 되는 것"이라며 "이런 공화정의 이념에 비춰 보면 한국 사회는 반공화정적인 요소로 충만해 있다고 말할 수 있다. 공공선에 대한 존중심이 취약하고, 특히 사회 지도층이라는 상류층의 문제가 심각하다"고 꼬집었습니다.

특히 윤 교수는 "공화정의 본질은 자유 시민의 합의와 동의에 의한 통치"라며 "이러한 공화정에서 굉장히 중요한 것은 애국심"이라고 강조했습니다.

그는 "애국심이 특정 인종이나 지역에 대한 수구적이고 배타적인 방식으로 발현될 경우 굉장히 위험하고, 시대에 뒤떨어진 반동적인 효과를 낳을 수 있다"며 "21세기의 열린 애국심이라는 것은 결국 헌법에 대한 충성이다. 대한민국 헌법은 우리가 모두 동의한 것으로, 우리의 삶을 보장하는 법규범 체계가 아닌가"라고 반문했습니다.

"대한민국 헌법에 충실하겠다는 것이 21세기적 애국심의 핵심이 돼야 마땅하다"는 것이 윤 교수의 지론입니다.

헌법 제1조 2항에서 '대한민국의 주권은 국민에게 있고, 모든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나온다'라고 못박고 있습니다. 결국 헌법의 수호자로서 대통령의 주된 책무는 민주공화국인 대한민국의 주권을 지닌, 모든 권력의 근원인 국민의 뜻을 받드는 데 있습니다. 그것이 헌법의 뜻에 따르는, 즉 애국을 행하는 길일 테니까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역사교과서 국정화, 한일 '위안부' 합의, 사드 배치 문제에 있어서 다수 국민의 뜻을 외면한 채 정부가 강행하고 있는 데는 헌법에 반하는, 다시 말해 비애국적인 측면이 다분합니다. 8월 15일을 건국절로 제정하자는 주장도 이와 같은 맥락에 있는 셈이죠.

광복 71주년인 2016년 8월 15일을 맞아 윤평중 교수가 강연에서 강조했던 '성숙한 공화정은 대한민국의 꿈이다' '우리 모두는 민주공화국의 당당한 시민이다'라는 표현을 되짚어 봅니다. 상하이 임시정부 수립 100주년이 되는 2019년에는 더욱 성장해 있을, 윤 교수의 말을 빌리면 "자율적이고 독립적인 민주공화국의 주체인 당당한 시민으로서 타인에 대한 연대감을 갖고 사회 문제에 동참해 성숙한 공동체를 만들어갈 우리"의 모습을 믿어 의심치 않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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