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우] '메달색이 중한가?' 이대훈이 빛낸 올림픽 정신

19일(한국시간) 태권도 남자 68kg급 8강에서 패배한 이대훈이 공동취재구역을 외면하지 않고 올림픽뉴스서비스 팀과 인터뷰에 응하고 있다 (사진=노컷뉴스)

이대훈(24·한국가스공사)은 태권도 남자 68kg급의 유력한 우승후보였다. 이대훈은 4년 전 런던올림픽에서 은메달을 땄다. 체급을 끌어올려 2016 리우올림픽에서만큼은 반드시 금메달을 목에 걸겔갔다는 각오였다. 태권도 종주국 출신의 자존심을 걸었다.

이대훈은 8강의 고비를 넘기지 못했다. 19일(한국시간) 브라질 리우데자네이루 올림픽파크 카리오카 제3경기장에서 열린 대회 8강전에서 요르단의 복병 아흐마드 아부가우시에 8-11로 졌다.

이대훈은 올림픽랭킹 2위, 아부가우시는 40위였다. 이대훈이 아무리 대회 전부터 아부가우시를 다크호스로 꼽았다고 해도 패배에 속상하지 않을리 없었다. 목표였던 금메달의 꿈이 무산됐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대훈은 경기에서 지고 다소 의외의 행동을 했다. 고개를 떨구고 잠시 아쉬워하더니 이내 고개를 들고 매트에 앉아 기쁨을 만끽하고 있는 아부가우시를 바라봤다. 표정이 밝았다. 마치 "잘하네"라고 말하는듯한 표정이었다.

이어 이대훈은 그에게 다가가 직접 손을 들어주며 패배를 인정하고 상대를 존중하는 동작을 했다.

졌지만 당당한 이대훈의 모습에 팬들은 아낌없는 박수를 건넸다.


이대훈은 왜 자신을 꺾은 상대 선수에게 존경심을 표했을까.

이대훈은 아부가우시가 승부를 즐기는 모습을 좋게 봤다. "모든 면에서 다 즐기는 선수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대회 전부터) 견제를 많이 했다. 상황마다 즐기면서 대처하는 모습에 나도 많이 배웠다. 내가 즐기는 것보다 조금 더 마음 편안히 하는 선수가 아니었나 생각한다. 내가 배웠다"고 말했다.

이어 이대훈은 "어릴 때는 경기에 지면 내가 슬퍼하기에 바빴다. 지난 올림픽 때도 지고나서 너무 안타까운 마음에 상대가 기뻐하는 모습을 보지 못했다. 같은 동료에게 져도 무슨 세리머니를 했는지 몰랐다"며 "속으로는 아쉽고 헤드기어를 던지고 싶은 생각도 들지만 상대를 존중해주는 입장이 되고 싶었고 그런 사람이 되고 싶었다"고 말했다.

이대훈은 올림픽을 통해 자신의 실력을 증명하고 싶었다. 그런데 또 하나의 목표가 있었던 것이다. 그는 올림픽과 같은 지구촌 축제를 경험하면서 지금보다 더 나은 사람이 되고 싶었다.

이대훈은 "여기서 끝난다고 해도 인생이 끝난다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시간이 지나면 잊혀질 것이다. 올림픽 메달리스트라는 타이틀을 평생 갖고 살 것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인생을 살면서 더 나은 사람이 되기 위해서 또 하나의 경험을 했다고 생각한다. 졌다고 기죽어 있고 싶지는 않다"며 웃었다.

이대훈은 8강전 패배 직후에도 공동취재구역에서 인터뷰를 거부하지 않았다. 올림픽을 취재하면서 예상보다 빠른 패배를 당한 충격에 공동취재구역을 그냥 지나가는 선수를 수도 없이 봤다. 취재진도 이해하는 대목이다. 그런데 이대훈은 달랐다.

18일 오전(현지시간) 브라질 리우데자네이루 바하 올림픽파크 카리오카 경기장에서 열린 2016리우올림픽 태권도 남자 -68kg급 8강전에서 승리한 요르단 아흐마드 아부가우시가 이대훈의 손을 들어주고 있다 (올림픽사진공동취재단)


이대훈의 진심어린 축하를 받았기 때문일까? 아부가우시는 4강에서 런던올림픽 58kg급 금메달리스트, 이대훈을 꺾고 우승을 했던 호엘 곤잘레스 보니야(스페인)를 7-4로 완파하고 결승에 올랐다. 대회 규정에 따라 아부가우시에게 졌던 이대훈에게 패자부활전 기회가 주어졌다.

이대훈은 소중한 기회를 놓치지 않았다. 패자부활전에서 아흐메드 고프란을 잡은데 이어 동메달결정전에서 올림픽랭킹 1위 자우드 아찹(벨기에)마저 꺾으면서 값진 동메달을 거머쥐었다. 경기 막판 왼쪽 다리를 다쳤지만 막판 22초를 버티는 근성도 발휘했다.

이대훈은 최선을 다해 더이상 미련이 없다는듯한 표정으로 경기장을 떠났다. 모두가 마지막 승자가 될 수는 없는 무대가 바로 올림픽이다. 승부를 즐기고 승패를 받아들이며 상대를 존중하는 모습, 그것이 바로 올림픽 정신이다.
이대훈은 4년 전 런던 대회에서 58kg 은메달에 이어 리우 대회에서는 68kg 동메달을 챙겨 한국 남자 태권도 선수 최초로 2회 연속 올림픽 메달을 목에 걸었다.(올림픽사진공동취재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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