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구해설가 하일성의 유훈 "홈런 같은 일 예고 없이 찾아온다"

고 하일성(사진=자료사진/노컷뉴스)
"어머니가 LA에 사시던 때의, 좀 오래전 이야기다. 한밤중에 어머니와 통화를 하다 울음을 터트렸다. 내가 아무리 낙천주의자라도 늙어가는 어머니 생각에 울컥했던 모양이다. 눈물이 뚝뚝 떨어지는 것이 주체를 못할 지경이었다. 아내가 낌새를 눈치 채고 깔깔거리며 놀려대는데도 울음이 멈추지 않았다. 어린 두 딸이 밖의 소란에 잠이 깨서 나왔다. 나를 보더니 동시에 달려와 내 품에 안기는 것이다. 따뜻한 사랑은 이런 것이다. 두 딸 덕분에 감정이 더 격앙돼 아주 대놓고 울었다." - 고 하일성 에세이집 '철학자 하일성의 야구 몰라요 인생 몰라요' 중에서

야구해설가 하일성(68)이 8일 오전 서울 송파구에 있는 사무실에서 숨진 채 발견됐다. 그는 프로야구단 입단 청탁 혐의로 재판을 받고 있었다. 하일성은 "청탁은 없었다"며 혐의를 부인해 온 것으로 알려졌다.


하일성은 1949년 2월 18일 서울에서 태어나 고교 시절 잠시 야구선수 생활을 했고 경희대학교 체육학과를 졸업했다. 고교 체육교사로 사회에 첫발을 내딛었던 그는 1979년 TV 야구해설가로 입문해 특유의 입담을 뽐냈다. 이후 2006년 5월부터 2009년 3월까지 제11대 한국야구위원회(KBO) 사무총장을 역임했다.

KBO 사무총장으로 있을 당시 2008 베이징올림픽 금메달, 제2회 월드베이스볼클래식(WBC) 준우승을 경험한 그는 "나중에 세상을 떠나면 묘비에 '2008 베이징올림픽 금메달 야구대표팀 단장'이라고 새겨달라"는 말을 남기기도 했다.

하일성이 생전에 펴낸 에세이집 '철학자 하일성의 야구 몰라요 인생 몰라요'(펴낸곳 동아시아·2013)에 따르면, 반항으로 점철된 10대 시절을 보내며 방황하던 그는 베트남전에 참전해 죽음을 직접 눈으로 보고 삶의 자세를 바꿨다고 한다.

"번뇌도 백팔번뇌고 야구공의 실밥 매듭도 백팔매듭이란 것이다. 예전부터 상식으로 알고 있던 것이지만 뭔지 모르게 호흡 깊숙이 들어오는 그런 느낌은 처음이었다. 번뇌도 백일곱이나 백아홉일 수도 있고 야구공도 매듭 사이즈를 줄이거나 키우면 능히 그럴 수 있는데 왜 딱 백팔일까. 또 그것이 나의 야구인생과는 대체 무슨 인연으로 이어져 있는 것일까."

"야구 모르는 거예요"라는 말을 자주 하던 하일성은 자주 야구를 인생에 빗대곤 했다. 이 책을 통해 그는 다음과 같이 전하고 있다.

"절망적인 상황은 항상 예고 없이 찾아온다. 끝 모를 절망 앞에서 넋을 잃고 극단적인 생각에 빠지곤 한다. 보통 이럴 때 예고 없이 홈런 같은 일이 찾아온다. 홈런은 로또가 아니다. 복권처럼 운에 기대면 절대 나올 수 없다. (중략) 홈런은 대박이 아니다. 열심히 사는 사람들이 만들어내는 결과물이다. 어느 날 하늘에서 뚝 떨어지는 것이 아니다. 준비된 사람한테만 주어지는 것이다. 공들여야 탐스럽게 열리는 열매 같은 것이다. 감히 복권에 비교할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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