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아 있는가 죽어 있는가, 그것이 문제로다"

[노컷 리뷰] 연극 '함익' … 10월 16일까지, 세종문화회관 M시어터

서울시극단 창작극 '함익' 중. (사진=세종문화회관 제공)
"사느냐 죽느냐, 그것이 문제로다"라는 <햄릿>의 유명한 대사는 "살아 있는가, 죽어 있는가"로 바뀐다. 대사가 바뀌면서, 그저 멀게만 느껴지던 옛날 희극이 순간 개인의 실존 문제로 다가온다.

서울시극단(단장 김광보)의 '함익'은 셰익스피어의 <햄릿>을 모티브로 김은성 작가가 현대에 맞게 재창작한 작품이다.

연극인들에게 하나의 작품을 넘어 성역과도 같은 '햄릿'을 마구 주물러댔다는 것 자체가 도발적이고 방자한 행위일 수도 있지만, 다른 작품이라고 보면 그리 불편하지도 않다.

이런 식의 시도 자체가 요즘 트렌드이기도 하지만, 괜히 건드렸다가 본전도 뽑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다행히도 김은성 작가의 '함익'은 질문을 '살아 있는가, 죽어 있는가'로 바꾸면서, 현대에 걸맞에 햄릿의 고뇌를 성공적으로 다시 살려냈다.

극에서 주인공 '함익'은 재벌 그룹 회장의 외동딸이다. 영국에서 유학을 하고 돌아와 그룹 소유 대학 연극학과 교수로 재직 중이다. 남부러울 것 없어 보이지만, 사실 내면이 상처로 가득 곪아 있는 인물이다. 엄마의 자살이 아버지와 계모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그는 오랫동안 복수를 꿈꿨지만 실천하지는 못했다.

서울시극단 창작극 '함익' 중. 지도교수 함익과 학생 연우. (사진=세종문화회관 제공)
그는 학생들의 연극 '햄릿'을 지도하던 중 학생 연우의 해석에 영향을 받는다.


"햄릿에게 살고 죽고는 고민거리가 아니었어요. 사느냐, 죽느냐가 아니라 어떻게 살 것인가. 어떻게 사는 것이 진짜 사는 것인가. 살아 있는 것으로 살 것인가? 죽어 있는 것으로 살 것인가? 그게 진짜 햄릿의 고민이었어요." - 연우의 대사 중

두꺼운 가면을 쓴 채로 살아간다면, 지금의 부와 권력을 유지할 수 있는 재벌 2세로 살 수 있다. '함익'은 이러한 생각으로 분노를 누른 채 살아왔다. 아니 견뎌왔다. 그러나 그것이 산 것이 아니라 죽어 있는 삶이었음을 연우를 통해 깨닫는다.

'함익'뿐만이 아니다. 우리 모두가 그렇게 살고 있다. '직업'이라는 말은 직(職)과 업(業)의 합성어이다. 직은 직장에서 맡은 담당 업무를, 업은 평생을 두고 자신이 매진하는 주제이다. 늘 내가 하는 일이 적성에 맞지 않아 다른 일을 꿈꾸지만, 현실은 늘 그곳에서 벗어나지 못한다. 돈 때문이기도 하고, 용기가 없어서기도 하다. 직과 업이 분리된 삶으로, 죽어 있는 삶을 그렇게 연명해 간다.

함익은 '햄릿' 공연을 통해 복수를 실천하려 하지만, 끝내 실패한다. 그 모습이 괜한 좌절감을 주지만, 성공했다면, 그 자체가 판타지일 것이다. 대신 '함익'은 '햄릿'이라는 이름의 아버지의 애완동물을 살해한다.

서울시극단 창작극 '함익' 중. 함익이 원숭이 햄릿을 죽이는 장면. (사진=세종문화회관 제공)
'햄릿'은 모든 가족들에게는 사랑스럽고도 귀여운 행동을 하지만 '함익'에게 만큼은 무시와 조롱을 일삼는다. 이유는 모르겠다. 아무튼 아버지에게 (복수든 그 반대 의미든) 다가서려 하면 '햄릿'이 나타나 '함익'을 가로막는다. 그런 '햄릿'을 '함익'이 죽이면서 극은 끝난다.

그것이 어떤 의미인지는 알 수 없다. 함익의 최후 발악인지, 복수의 시작인지, 자살의 복선인지. 하지만 분명한 것은 자신을 가로막던 장벽을 함익이 드디어 무너뜨렸다는 점이다.

'함익'이 '햄릿'을 죽이는 행위는 용기이다. 김은성 작가가 겂도 없이 '햄릿'을 주물러 새로운 대본을 만든 것도 용기이다. "살아 있는가, 죽어 있는가"라는 고뇌는, 죽어 있는 채로 살아가는 당신에게 "용기가 있는가"라는 질문의 다른 표현이다. 살아 있는 사람에게 이 질문이 무슨 의미가 있겠는가. 연극은 모든 이들에게 묻는다. 용기가 있느냐고. 그리고 이 질문에 무어라 답하든 '용기'를 내지 않는 한 질문은 계속 반복될 것이라고 이야기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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