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IA 선발 양현종은 2사 1루 LG 박용택과의 승부에서 1루주자 문선재를 향해 연거푸 견제구를 뿌렸다. 처음에는 "앞으로 던져라"는 LG 팬들의 목소리가 더 컸다. 견제구가 계속되자 KIA 팬들도 질 수 없었다. 견제가 나올 때마다 오히려 양현종에게 기립박수를 건넸다. 오히려 양현종을 격려하는 목소리가 더 크게 들릴 정도였다. 팽팽한 분위기 속에서 양현종은 박용택 타석에서 무려 8개의 견제구를 뿌렸다.
선수들은 신중했고 팬들은 경기에 몰입하며 마음껏 즐겼다. 와일드카드 결정전은 어느 때보다 뜨거운 열기를 분출하며 가을야구의 화려한 시작을 알렸다.
그동안 프로야구에서는 찾아보기 어려웠던 단판승부의 짜릿한 묘미가 가미됐기 때문일 것이다.
KBO 리그는 10개 구단 체제가 출범하면서 와일드카드 제도를 도입했다. 10개 팀 가운데 절반인 5위까지 포스트시즌 진출 기회를 주기로 했다. 그러나 가을야구 진출 팀이 너무 많으면 포스트시즌의 수준이 떨어질 수도 있다는 우려가 있었다.
그래서 4-5위가 맞붙는 와일드카드 결정전에서 4위에게 엄청난 어드밴티지가 따른다. 시리즈는 2선승제. 4위에게 1승을 주고 시작한다. 2경기 모두 4위 팀의 홈에서 열린다. 5위는 2경기를 다 잡아야만 준플레이오프에 갈 수 있다. 특히 5위에게는 매경기가 단판승부나 다름없다.
불리한 단판승부를 연거푸 이겨내고 위로 도약하려는 KIA 타이거즈와 이를 막으려는 LG 트윈스의 대결은 마치 매경기가 포스트시즌 시리즈의 최종전을 보는 것 같은 긴장감을 선사했다.
경기력이 깔끔하다고는 보기 어려웠다. 지난 10일 서울 잠실구장에서 열린 1차전은 4회초 LG 유격수 오지환의 결정적인 실책 때문에 승부가 갈렸다. 이후 KIA와 LG는 서로 실수를 주고받았다.
2차전에서도 실수 연발이었다. LG의 번트 작전은 빗나갔고 KIA도 마찬가지였다. 또 KIA는 내야진이 두차례 실책을 범하며 체면을 구겼다.
정규리그를 지배한 두산 베어스와 NC 다이노스, 넥센 히어로즈 등 상위 3개팀의 안정된 경기력과는 다소 비교가 됐지만 매경기가 단판승부나 다름없는 분위기 속에서 작은 실수마저도 오히려 긴장감을 키우는 요소가 됐다.
단기전은 투수 놀음. 무엇보다 양팀 모두 확실한 에이스급 투수들을 보유해 시리즈의 긴장감을 극대화시켰다.
1차전의 MVP는 KIA 선발 헥터였다. 7이닝 2실점(1자책점) 호투를 펼쳤다. LG 허프도 용호상박이었다. 수비 도움이 따르지 않았지만 7이닝 4실점(2자책점)으로 잘 던졌다.
벼랑 끝에 선 2차전, 선발 대결은 더욱 볼만했다.
2011년 포스트시즌에서 선발 로테이션에 들었다가 제외되는 아픔을 기억하고 있는 KIA 양현종은 5년동안 기다린 가을무대에서 혼신의 힘을 다해 공을 뿌렸다.
LG의 캡틴이자 실실적인 후반기 에이스였던 류제국은 6회초 1사 브렛 필에게 안타를 맞기 전까지 노히트노런 행진을 달리며 무실점 행진을 함께 한 양현종과 더불어 잠실야구장에 팽팽한 긴장감을 선사했다.
이처럼 팀의 운명을 짊어진 선발투수들의 호투는 동료들의 실수마저 지워가며 피말리는 승부를 연출했다. 불펜 역시 마찬가지. 압도적인 마운드가 좀처럼 터지지 않은 타자들의 침묵을 이해 가능하도록 만들었다.
실수를 한 선수들마저 나중에는 박수를 받았다.
1차전에서 패배의 빌미를 제공한 오지환은 2차전에서 놀라운 수비로 팬들을 매료시켰다. 6회초 1사 2루에서 나지완의 날카로운 바운드 타구를 몸을 날려 잡아 타자주자를 잡았다.
베테랑 박용택은 2차전 8회말 포스트시즌 경험이 처음인 KIA 우익수 노수광을 머쓱하게 만들었다. 우전안타를 때린 뒤 노수광이 느긋하게 타구를 처리하는 사이 2루까지 밟은 것이다. 그러나 노수광은 득점권 위기에서 양석환의 안타성 타구를 환상적인 다이빙 캐치로 막아내 활짝 웃을 수 있었다.
때로는 실수도 있었지만 이기겠다는 강한 의지가 실수마저도 긴장감을 극대화시키는 요소로 만들었다. 결국 LG가 2차전에서 1-0으로 승리, 승패의 희비가 엇갈렸지만 승부를 2차전까지 끌고 온 KIA도 잘 싸웠다. 오랫동안 회자될만한 명승부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