밥 딜런 노벨문학상…한국사회에 던지는 고언

밥 딜런(사진=소니뮤직 제공)
미국 대중가수 밥 딜런의 노벨상 수상 소식이 한국의 문화예술계 블랙리스트 사태와 겹쳐지면서, 문화예술을 바라보는 우리나라 권력자들의 비뚤어진 시선을 비판하는 목소리가 강하게 일고 있다.

스웨덴 한림원은 13일(현지시간) 밥 딜런을 올해 노벨문학상 수상자로 발표했다. "위대한 미국 음악의 전통 내에서 새로운 시적 표현을 창조해냈다"는 것이 선정 이유다.

시인이자 문학평론가인 김응교 숙명여대 교수는 14일 "(밥 딜런의 수상은) 문학이 조금 더 넓은 자양분을 얻었다는 점에서, 문학의 자장이 넓어졌다는 면에서 긍정적으로 다가온다"고 밝혔다.

김 교수는 "밥 딜런을 '음유시인'이라 부르는데, 이 점에서 오히려 문학의 원류에게로 노벨문학상이 돌아갔다고 봐야 한다"며 "정식으로 문학 교육을 받은 것이 아니라 젊은 시절부터 기타와 하모니카를 들었던 음유시인 밥 딜런이 수상한 것은 합당한, 오히려 가장 고전적인 문학에 상을 준 것"이라고 강조했다.

이어 "밥 딜런의 수상은 문학이 좁혀진 것이 아니라, 본래의 길을 찾으면서도 넓어졌다고 본다. 그의 수상을 환영하면서 국내에서도 대중가요 장르에 대한 인식 변화가 확산돼야 한다"며 "국문과나 문예창작과에서 가수 한대수, 김민기, 하덕규, 비틀즈 등을 적극적으로 받아들이고 이들의 노래 가사를 활발히 연구할 필요가 있다"고 제안했다.

같은 날, 문화평론가 하재근 씨도 "(밥 딜런의 수상 소식은) 놀라웠는데, 문학상이 가요에 상을 준 것이지 않나"라며 "그러다보니 '기존에 치열하게 문학을 해 온 작가들을 우롱하는 것 아니냐'는 생각도 할 수 있지만, 노벨상에는 당대 정치·사회적 상징성 등이 고려된다는 점에서 '받아들일 수 있는 수준의 파격'으로 다가온다"고 전했다.

그는 "밥 딜런은 서구의 대표적인 저항 뮤지션이고 팝음악에 사회성을 담은 사람으로서 역사적인 의미를 지니고 있다"며 "1960년대 서구의 권위를 무너뜨린 청년운동을 상징하는 인물로서, 이번 수상에 그러한 역사적·사회적 의미를 반영한 것으로 보인다"고 분석했다.

특히 "기존 노벨문학상이 딱딱하고 근엄한 느낌이 있었는데, 세계적으로 순수예술과 대중예술의 경계가 허물어지는 추세에서 이제는 노벨문학상도 대중예술에 손을 내밀었다고 봐야 한다"며 "기존 소설, 시에서 벗어난 다양한 형태의 글을 인정함으로써 문호를 넓히겠다는 의지가 엿보인다"고 강조했다.

◇ "밥 딜런, 한국 오면 블랙리스트 대표주자…진실 아닌 '거짓' 지키려는 권력자들"


공교롭게도 밥 딜런의 파격적인 수상 소식이 전해진 때, 한국 사회는 청와대에서 내려보냈다는 의혹을 받는 9473명 문화예술계 블랙리스트 사태로 들끓고 있다.

하재근 씨는 "밥 딜런의 노래는 1960년대 서구의 청년운동에 커다란 영감을 줬는데, 이는 기존 기득권 체제를 부정하는 것이었다. 히피문화는 아예 체제 이탈을 꿈꿨다"며 "서구의 기존 기득권이 이러한 청년운동의 가치를 인정하고 받아들인 것과 달리, 우리나라에서는 조금만 그런 기미가 나타나면 철퇴를 가하는 경직성이 있다. 문화계 블랙리스트 사태에서도 알 수 있듯이 서구권과 한국의 차이가 극명히 대비된다"고 진단했다.

이어 "방송인 김제동 씨의 경우도 사회·정치적 발언으로 미운 털이 박힌 결과, (기득권이) 군대 발언 등으로 문제를 삼고 있는 여지가 크다"며 "국정감사에서 김제동 씨가 화제가 되던 때, 밥 딜런의 노벨문학상 수상 소식을 접하니 (우리의 현실이) 씁쓸하다"고 지적했다.

밥 딜런의 대표곡으로 꼽히는 '블로잉 인 더 윈드'(Blowin' in the Wind)는 우리나라에서도 번안곡으로 널리 불렸지만, 1990년대 중반까지 금지곡 명단에 있었다. 평화, 반전, 인권, 자유, 평등을 노래한 이 곡의 가사는 다음과 같다.

"얼마나 먼 길을 헤매야 아이들은 어른 되나/ 얼마나 먼 바다 건너야 하얀 새는 쉴 수 있나/ 얼마나 긴 세월 동안 전쟁을 해야 사람들은 영원한 자유 얻나/ 오 내 친구여 묻지 마라, 바람만이 아는 대답을/ (중략)/ 얼마나 여러 번 올려봐야 푸른 하늘을 볼 수 있나/ 얼마나 큰 소리로 외쳐야 사람들의 고통을 들을 수 있나/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죽어야 죽음의 뜻을 아나/ 오 내 친구여 묻지 마라, 바람만이 아는 대답을"

김응교 교수는 "블랙리스트 존재 여부는 사실 이명박정권 때부터 공공연하게 돌지 않았나. 이는 거슬러 올라가면 식민지 시대, 그 이전 박지원의 '열하일기'를 100년 동안 금서로 묶었던 식으로, 인류 역사에서 항상 헤게모니를 가진 권력 주체들은 늘 블랙리스트라는 예외 상태를 만들어 억압해 왔다"며 "이에 대한 저항은 작가로서 특별한 것이 아니라, 조지 오웰의 소설 '1984'에서 주인공 윈스턴이 매일 일기를 쓰는 것처럼 사람들의 일상적이고 당연한 행동"이라고 역설했다.

결국 "밥 딜런을 저항가수가 아닌, 인간이 마땅히 해야만 하는 일들을 행한 사람으로 바라보자"는 것이 김 교수의 당부다.

"제가 우스갯소리로 '밥 딜런은 밥 달라는 투정'이라는 말을 한 적이 있어요. 그가 한 일은 대단한 저항이 아닙니다. 인간이라면 마땅히 요구해야 할 '살려 달라' '밥 달라'라고 외쳤다는 데 가치가 있는 거죠. 노벨문학상이 밥 딜런에게 돌아간 건 그러한 평범성, 일상의 가치가 인정받았다는 의미이기도 합니다."

그는 "소위 문화계 블랙리스트 가운데 세월호와 관련한 명단을 보면 정치와는 거리가 먼 작가들도 많다. 평범한 사람으로서 자기 자식을 생각했다면, 생명의 소중함을 안다면 누구라도 서명했을 것"이라며 "이러한 사람들마저 블랙리스트에 담은 저들은 인간이 아니라고 봐야 한다. 모든 평범한 국민을 적으로 삼은 것이다. 진실이 아닌 '거짓'을 지키려 애쓰는 것으로 밖에는 볼 수 없다"고 질타했다.

김 교수는 "만약 밥 딜런이 우리나라에 오면 블랙리스트 대표주자, 1등급으로서 한푼의 지원금도 받지 못할 것"이라며 "거꾸로 보면 문화계 블랙리스트에 오른 작가들은 노벨문학상 후보가 되는 것이다. 이 나라는 반대로 노벨문학상의 자질을 갖춘, 인간의 보편적인 권리를 중요하게 여기는 작가들을 탄압하고 있는 것"이라고 비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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