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히요미의 가을 발암' LG는 4번타자 히메네스가 그립다

'4시간 46분 혈투의 최고 수훈?' LG 루이스 헤메네스(사진)는 올해 구단 사상 최초로 한 시즌 100타점-100득점을 기록하는 맹활약으로 2년 만의 가을야구를 이끌었다. 그러나 정작 포스트시즌에서는 승부처 상황에 맞지 않는 타격으로 실망감을 안기고 있다.(자료사진=LG)
LG 팬들이 주포 루이스 히메네스(28) 때문에 애간장이 타들어간다. 정규리그에서 맹타를 휘두르며 가을야구를 이끈 주역이지만 정작 포스트시즌(PS)에서는 승부처 침묵으로 속을 미어지게 만들고 있다.

LG는 24일 잠실에서 열린 NC와 '2016 타이어뱅크 KBO 리그' 플레이오프(PO) 3차전에서 연장 11회말 2-1로 이겼다. 끝내기 승리의 짜릿함도 컸지만 불필요했던 4시간 46분의 기나긴 승부에 대한 체력 소모는 씁쓸함으로 남았다.

무엇보다 LG는 이날 무려 16개의 4사구를 얻어냈음에도 2득점에 머물렀다. 안타 6개까지 무려 22명의 주자가 나갔음에도 2명만 홈을 밟았다. 잔루만 19개, 역대 PS 한 경기 최다 신기록이다. NC도 14개였지만 LG는 더 심했다.

사실 이날 경기는 난타전이 예상됐다. NC 선발이 21살 신예 장현식이었던 까닭이다. PS 데뷔전이 2만5000명 만원 관중이 몰린 잠실 경기. 부담감에 대량 실점을 할 가능성이 적잖았다. 때문에 김경문 NC 감독은 2차전 뒤 "3차전은 난타전을 예상한다"고 말했다.

실제로 장현식은 1회부터 흔들렸다. 2명 타자를 모두 볼넷으로 내보내는 등 제구가 흔들렸다. 박용택의 깊숙한 뜬공으로 LG는 1사 2, 3루 득점권을 맞았다. 적시타나 희생타만 나와도 LG는 기분좋은 선취점으로 장현식을 더욱 압박할 수 있었다.


▲세 번의 황금 찬스를 놓치다

하지만 1회 LG는 1점만 내는 데 그쳤다. 믿었던 4번 타자 히메네스가 1루수 파울 뜬공으로 맥없이 물러났다. 큰 산을 넘은 장현식은 이후 볼넷 2개로 밀어내기 1점을 내줬으나 그것으로 이닝을 마무리했다.

이게 연장 11회 전까지 LG의 마지막 득점이 될 줄은 아무도 예상하지 못했다. 이후에도 NC 마운드는 사사구를 남발, 숱한 위기를 맞았기 때문이다. 그러나 LG 타선은 심각한 득점권 변비로 희대의 PS 경기를 펼쳐야 했다.

주범은 히메네스였다. 2회도 히메네스는 만루 기회를 맞았다. NC는 장현식에 이어 바뀐 투수 최금강마저 연속 볼넷을 내줬다. LG가 단숨에 승기를 잡을 호기였다. 그러나 히메네스는 제구가 흔들리는 최금강의 떨어지는 변화구의 유혹을 이기지 못하고 삼진으로 돌아섰다. 인내심을 조금만 더 발휘했다면 최금강이 스스로 무너질 수 있던 상황이었다.

이후 히메네스는 뒤늦게 안타를 때려냈다. 4회 2사 1루, 1-1 동점이 된 6회 2사 1루에서 좌선상 2루타를 날렸다. 이것도 물론 반가웠지만 후속 타자 채은성의 범타로 득점으로 연결되지 못했다.

'어쩌면 안타보다 중요한 게 외야 뜬공일 수 있다' LG 히메네스는 올해 희생타 6개로 채은성(8개), 박용택(7개) 등에 이어 팀내 3번째였지만 정작 PS에서 중요할 때는 나오지 않았다.(자료사진=LG)
8회가 가장 아쉬웠다. LG는 1-1로 팽팽히 맞선 가운데 무사 만루 기회가 히메네스에게 왔다. 상대 바뀐 투수 이민호가 연속 몸에 맞는 볼로 흔들리던 상황. 한방이면 경기 종반 승부를 끝낼 수 있었다. 더군다나 히메네스는 앞선 두 타석에서 안타를 날린 상황.

하지만 히메네스가 이민호의 2구째를 기세좋게 때린 타구는 3루수 박석민의 정면으로 향했다. 3루 선상에 붙어 있던 박석민은 베이스를 밟아 2루 주자를 아웃시킨 뒤 홈으로 송구, 1루 주자를 협살로 잡았다. 문선재가 재치있게 NC 포수 김태군의 태그를 피했지만 비디오 판독 결과 아웃이 됐다.

병살타. LG로선 땅을 칠 장면이었다. 하필이면 황금 기회가 히메네스에게만 왔다. 안타가 아니라 외야 뜬공 하나면 될 일이었다. 이날 양 팀 합계 25개, 숱하게 쏟아졌던 볼넷과 사구가 만루 때의 히메네스는 기가 막히게 피해갔다. 결국 LG는 8회도 이어진 2사 마루에서 채은성의 범타로 득점에 실패했다.

이날 경기가 기묘하게 흘러간 가장 큰 이유였다. 세 번의 기회에서 안타 1개, 혹은 희생타, 아니면 볼넷만 나왔어도 LG는 이날 쉽게 9회 안에 경기를 끝낼 수 있었다. 다만 히메네스는 연장 11회말 선두 타자로 나와 그렇게 기회 때 절실했던 볼넷을 골라냈다. 이후 오지환의 안타, 채은성의 희생번트로 3루를 밟은 뒤 양석환의 투수 강습 안타 때 끝내기 득점을 기록했다.

▲"이제 한방 터질 때가 됐는데…"

5타수 2안타 1득점, 기록 상으로는 나쁘지 않았다. 그러나 안타가 나오지 않은 그 세 번의 타석은 이날 경기가 연장까지 간 가장 큰 이유였다. 경기 후 양상문 LG 감독이 중계 인터뷰에서 "히메네스가 오늘 가장 아쉬웠다"면서 "세 번의 기회에서 좋은 타구가 나오지 않은 게 아쉬웠다"고 입맛을 다신 까닭이기도 하다.

출혈은 적지 않다. LG는 당초 4차전 선발로 예상됐던 헨리 소사를 이날 불펜으로 소모해야 했다. 마무리 임정우도 2⅓이닝 이상, 33개의 투구를 하면서 4차전 등판을 장담하기 어렵다. 이기긴 했지만 내상이 크다. LG는 NC와 달리 넥센과 준PO 4경기를 치러 피로도가 상대적으로 높다.

히메네스는 올해 LG 타선의 핵심이었다. 타율 3할8리에 팀 최다 홈런(26개), 타점(102개), 득점(101개)을 기록했다. LG 구단 사상 최초로 한 시즌 100타점-100득점을 동시에 달성했다.

지난해 대체 선수로 와서 올해 주포를 맡은 복덩이였다. 또 특유의 친화력과 낙천적인 성격으로 장난을 좋아해 LG 팬들 사이에서는 '히요미'로 통했다. 히메네스가 없었다면 LG의 가을야구도 없었을 터였다.

하지만 정작 PS에서는 속을 까맣게 태우고 있다. 히메네스는 PS에서 전혀 주포다운 역할을 하지 못하고 있다. KIA와 와일드카드 결정 1, 2차전에서는 8타수 1안타에 그쳤고, 넥센과 준PO에서는 4경기 타율 2할5푼(16타수 4안타) 1타점에 머물렀다.

LG 히메네스가 NC와 플레이오프 1차전에서 7회 선제 솔로 홈런을 날린 뒤 그라운드를 도는 모습.(자료사진=LG)
NC와 PO 1차전에서는 그나마 선제 1점 홈런을 날렸다. 그러나 팀의 2-3 끝내기 패배로 빛을 잃었다. 0-2로 완패한 2차전에서도 4타수 1안타로 주포 역할을 하진 못했다. 그러더니 3차전에서는 잇딴 승부처 침묵으로 속을 끓였다.

양 감독은 히메네스에 대해 PS 기간 줄곧 "이제 한방이 터질 때가 됐다"며 변함없는 신뢰를 보였다. 그러나 3차전 뒤에는 주포에 대한 아쉬움을 드러냈다. 팬들 사이에서 '암 유발자'라는 말이 나오는 이유다.

히메네스의 다른 플레이들은 준수하다. 득점권이 아닌 상황에서는 제대로 된 스윙이 나오고 특히 수비에서 안정된 모습을 보인다. 그러나 기회마다 힘이 들어간 스윙으로 팀 분위기를 가라앉히고 있다. 주포로서 상황에 맞는 냉정한 판단이 서지 않고 있다.

올해 히메네스의 득점권 타율은 3할4리(148타수 45안타)로 나쁘지 않다. 만루에서도 3할5푼(20타수 7안타)였다. 그러나 PS에서 이런 기록들은 무의미한 상황이다. 히메네스가 중심을 잡아주지 못하면서 LG는 박용택의 부진까지 PO 득점권에서 19타수 1안타에 머물러 있다.

'히요미'와 '암 유발자' 두 얼굴의 짙은 음영이 드리워진 히메네스. 과연 남은 경기에서 자신의 애칭을 되찾을 수 있을지 지켜볼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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