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린 지금 'MBC' 숨기고 카메라를 든다"

MBC기자협회장, 자사 보도 비판 '반성문'

언론노조 MBC본부가 1일 오전, 서울 마포구 MBC사옥 1층에서 '청와대 방송 중단하라'는 피케팅을 하고 있다. (사진=언론노조 MBC본부)
MBC기자협회장이 '박근혜·최순실 게이트'를 제대로 보도하지 못하는 현재 MBC에 대한 반성문을 내놨다.

MBC기자협회 김희웅 협회장이 2일 사내게시판에 올린 글은 "우리는 공범"이라는 말로 시작된다. 김 협회장은 "우리는 지금 MBC를 숨기고 카메라를 든다. MBC를 숨기고 마이크를 잡는다. 비아냥을 당하고 쫓겨난다"며 "MBC뉴스가 공공의 전파를 사용해야 할 이유가 없다"고 자조했다.


박근혜·최순실 게이트의 배후와 배경과 의혹을 눈감고, 거짓말을 따져 묻지 않았던 이유에 대해서는 "뉴스에 私(사)가 끼어서 그랬다. 사가 끼어 지금 이렇게 대한민국이 욕을 보고 있듯 사가 MBC뉴스를 망쳤다"고 말했다.

MBC는 타 언론사보다 무거운 공적 책임을 부여받는 공영방송임에도 '박근혜·최순실 게이트'를 축소하거나 정치권 공방으로 보도해 도마에 올랐다. 대통령의 하야·탄핵 요구가 나온 지난달 29일 대규모 집회에서는 MBC 취재진이 시민들의 항의로 쫓겨난 것은, 현재 MBC를 바라보는 민심이 어떤지를 확인할 수 있는 장면이다.

김 협회장은 "박근혜 대통령을 '최순실 일가의 꼭두각시'라고 명명하지 못해 나라가 이 꼴이 났다. 그래서 우리는 명명해야 한다"며 "김장겸 보도본부장을 'MBC뉴스를 이용해 사를 취하려는 자'라고 분명하게 명명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김 협회장은 기자들에게도 "모멸을 체화해서는 안 된다"고 전했다. 그는 "본부장, 국장, 부장이 당신의 오명을 책임지지 않는다"며 "자신이 어떤 리포트에 얼굴과 음성을 담고 있는지 훗날 이 시절의 기록으로 남을 것을 잊지 말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회사를 보지 말고 시민을 보십시오. 물으십시오. 팩트를 건져 촘촘히 모아 의견을 제시하십시오. 기사를 들이대십시오. MBC뉴스를 다시 살릴 수 있는 길"이라고 당부했다.

한편 김희웅 협회장은 MBC 뉴스데스크에 나간 인터뷰에 대해 조작 의혹을 제기했다가 지난달 11일 갑작스레 보도본부 NPS추진센터에서 심의국으로 전보된 바 있다. 그해 2월 보도전략부에서 NPS추진센터로 자리를 옮긴 지 8개월 만이었다. 언론노조 MBC본부는 "보도국의 최소한의 윤리, 최소한의 자정 능력은 버리지 말자는 호소에 대해 (보도본부 수뇌부가) 최소한의 소통 구조마저 걷어차버렸다"며 '보복인사'임을 분명히 했다.

김희웅 협회장이 올린 글 전문
이른 아침 출근길. 지하철. 사람들은 움츠려있습니다. 고개를 숙이고 전화기 화면을 응시합니다. 화면엔 얼굴을 꽁꽁 싸맨 여인이 있습니다. 사람들의 표정이 일그러집니다. 무겁게 지하철을 내립니다. 초겨울 추위가 닥친 아침, 고단한 밥벌이의 시작을 참담함으로 맞이합니다. 시민들의 절망에 대해서.

우리는 共犯(공범)입니다.
성명서를 쓸 수가 없습니다.
自省(자성)을 할 자격을 갖지 못합니다.
무엇을 촉구할 수가 없습니다.
만회할 수가 없습니다.

사람들은 MBC뉴스에 기대하는 것이 없습니다.
지우고자 합니다.
닥쳐라.
닥치고 가만있어라 말합니다.
성명서를 쓸 수가 없습니다.
더 이상 MBC뉴스를 한탄하며 규탄할 수 없습니다.
사람들은 더 이상의 자괴와 변명을 들어주지 않습니다.

우리는 지금
MBC를 숨기고 카메라를 듭니다.
MBC를 숨기고 마이크를 잡습니다.
비아냥을 당하고 쫓겨납니다.
머리를 처박고 기사를 씁니다.
MBC뉴스가 공공의 전파를 사용해야 할 이유가 없습니다.

사람들은 말합니다.
이게 나라냐?
사람들은 묻습니다.
니네가 언론이냐?

배후와 배경과 의혹에 대해서 눈감았습니다.
거짓말에 대해서 따져 묻지 않았습니다.
충실히 받들었고, 심기를 고려했습니다.

그건.
뉴스에 私(사)가 끼어서 그랬습니다.
사가 끼어 지금 이렇게 대한민국이 욕을 보고 있듯
사가 MBC뉴스를 망쳤습니다.
MBC뉴스를 망치면 잘되는 사람들이 있어서 그랬습니다.

命名(명명)해야 합니다.
명명하지 않아서 나라가 이 꼴이 났습니다.
박근혜 대통령을 “최순실 一家(일가)의 꼭두각시” 라고 명명하지 못해서 이렇게 됐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명명해야합니다.
김장겸 보도본부장을
‘MBC뉴스를 이용해 私(사)를 취하려는 자’ 라고 분명하게 명명해야합니다.

KBS보도본부장은 ‘보도 참사 책임을 지고 사퇴할 뜻이 있느냐’는 질문에 ‘있다’고 답했습니다.
김장겸 보도본부장은 그렇게 하지 못할 것입니다.
그건
사가 끼어서 그렇습니다.
MBC뉴스를 자신의 입신을 위해 더 이용해야 할 것이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MBC뉴스에 끌끌... 혀를 차는 사람들을 보아도
MBC뉴스에 퉷퉷... 침을 뱉는 사람들을 보아도
후배들이 MBC마이크를 들어 욕을 먹고. 조롱을 당하며.
쫓겨나는 수모를 겪는 것을 모르지 않으면서도
자신의 私(사)를 위해. 입신을 위해. 자리보존에 열심일 것을
우리가 모르지 않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私(사)를 취하는데 빠져
등 뒤에서 당하는 손가락질을 모르려 하기 때문임을
우리는 알기에 그렇습니다.

MBC기자들은
모멸을 체화해서는 안 됩니다.
자신이 어떤 리포트에 얼굴과 음성을 담고 있는지
훗날
이 시절의 기록으로 남을 것을 잊지 말아야합니다.

본부장이
국장이
편집회의에 숨어 고개를 내리고 연필을 돌리며
자조와 한숨으로 부끄러움을 덜려 하는
부장이
당신의 汚名(오명)을 책임지지 않습니다.

고개를 떨구려 하지 마십시오.
기자로서 당신의 이름을 지키는 것을 포기하지 마십시오.
무엇을 밝혀야 할지 어디에 집중해야 할지 방향을 잃지 마십시오.
회사를 보지 말고 시민들을 보십시오
물으십시오.
팩트를 건져 촘촘히 모아 의견을 제시하십시오.
기사를 들이대십시오.
MBC뉴스를 다시 살릴 수 있는 길입니다.

최소한입니다.
MBC뉴스는 그것부터 시작해야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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