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순실의 꿈…스포츠 제국의 건설과 세습

'한국 체육을 들어먹으려던 듀오' 박근혜 대통령의 위세를 빌어 한국 체육 전체를 집어삼키려고 했던 최순실 씨(왼쪽)와 김종 전 문체육관광부 장관.(사진=자료사진)
대한민국 민주주의의 뿌리를 통째로 뒤흔든 '최순실 게이트'. 대통령의 위세를 빌어 국정을 농단하고 자신들의 잇속을 챙긴 한 민간인 일가의 대국민 사기극에 온 나라는 분노와 허탈함을 감추지 못하고 있다.

특히 '최순실 게이트'는 한국 스포츠에 심대한 피해를 안겼다. 단순히 최순실의 딸 정유라의 입신과 양명을 위한 불온한 의도로 스포츠에 접근해서만이 아니다. 자식의 노후를 넘어 대대손손 일가의 풍족한 미래를 보장하기 위해 대한민국의 체육 전체를 송두리째 집어삼키려고 했다는 데 문제의 심각성이 있다.

이를 위해 최순실과 그 일당은 한국 스포츠를 우선 비리의 온상으로 매도해놓고 '비정상의 정상화'라는 기치 아래 체육계의 권력을 장악했다. 불순하게 쥔 칼로 일단 최순실의 딸 정유라를 명문대에 입학시키고 국가대표로 만드는 데 방해되는 인물들의 직위를 날려버렸다.

더 큰 그림은 한국 스포츠 전체를 아우르는 단체를 만들어 최 씨 일가가 차지하려는 데 있었다. 동·하계는 물론 엘리트와 생활체육 등 대한민국 스포츠를 모두 자신들의 그늘 아래 두어 재물과 권력을 빨아먹으려는 계획이었다. 이미 각종 비리가 판치는 아수라장으로 과장돼 매도당한 한국 스포츠는 이들 일가의 욕심에 더욱 망가질 것이 뻔했다. CBS노컷뉴스는 작당해서 한국 스포츠를 들어먹으려던 최순실 일가와 일당의 검은 야욕을 파헤쳐본다.

◇ 최순실과 김종의 야합은 어떻게 시작됐나

이 모든 사태의 발단은 어긋난 모정 때문이다. 그래도 엄마라고 불초한 딸을 명문대에 입학시키고 사회 명사로 만들어주기 위한 치맛바람이 온 나라를 뒤흔든 태풍으로 이어졌다.

딸을 위한 최순실의 선택은 승마였다. 귀족 스포츠라 경쟁이 상대적으로 떨어지는 데다 기수의 능력보다 말의 품종이 성적에 절대적인 영향을 미치는 종목이었다. 미욱한 딸이라도 돈과 권력으로 성적을 낼 수 있는 최적의 스포츠였다.

심판에 영향을 미치면서까지 진행되던 '정유라 국가대표 프로젝트'는 예상치 못한 변수를 맞았다. 2013년 4월 경북 상주에서 열린 춘계승마대회에서 정유라가 우승하지 못하자 이례적으로 상주경찰서가 심판들을 조사하는 사건이 벌어졌다. 청와대의 개입 의혹이 짙어진 가운데 문화체육관광부가 대한승마협회에 대한 감사에 들어갔다 .

'어긋난 모정' 최순실 씨는 딸 정유라 씨(왼쪽)의 입신양명을 위해 입시비리와 승부조작, 조직사유화 등 체육계 4대악을 철저하게 실천했다.(사진=자료사진)
이 감사를 맡은 문체부 노태강 체육국장과 진재수 체육정책과장이 첫 걸림돌이었다. 이들은 협회는 물론 정유라의 아버지 정윤회 씨 측에도 문제가 있었다는 보고를 올렸다.

이에 노 국장과 진 과장은 2013년 9월 전격 대기 발령 조치됐다. 체육계 개혁이 미진했다는 게 표면적인 이유였지만 비선실세 최순실 쪽을 문제삼은 데 대한 박근혜 대통령의 역린을 건드렸다는 게 진짜 원인으로 꼽힌다. 박 대통령은 둘을 "나쁜 사람"이라고 콕 찍어 언급하며 분노를 표현했다.

같은 달 김종 한양대 스포츠산업학과 교수가 문체부 제 2차관으로 취임했다. 이에 대해 체육계 사정에 정통한 한 인사는 "최순실이 딸과 관련한 민원이 통하지 않자 아예 문체부 가장 높은 자리에 자기 사람을 앉힌 것"이라고 촌평했다. 체육계에서는 최순실이 '문고리 3인방' 이재만 전 대통령비서실 총무비서관을 통해 한양대 라인인 김종 교수를 낙점한 것으로 보고 있다.

권력이 필요했던 김 교수도 이 제안을 받아들였다. 한국 체육을 접수하려던 최순실과 검은 야합이 시작된 것이다. 김 차관은 그동안 주장해온 스포츠 마케팅 이론을 실천할 발판을 마련했고, 최순실은 한국 스포츠에서 딸이 주도적 인물로 성장해나갈 수 있는 든든한 뒷배를 얻었다. 대한민국 스포츠에 한바탕 피바람이 불어닥친 하나의 서곡이었다.


◇ '이대 입학은 빙산의 일각' 韓 체육 전체를 먹을 야욕

김 차관은 취임과 동시에 스포츠 4대악 척결을 주창했다. 승부조작과 폭력, 입시비리, 조직사유화 등을 뿌리뽑겠다는 것이었다. 그 취지에는 반대할 명분이 없었지만 진짜 목적은 따로 있었다. 정유라의 국가대표 선발과 국제대회 성적, 명문대 입학이었다.

4대악 척결에 따라 서슬푸른 문체부의 감사가 이뤄졌다. 이 깃발 아래 승마협회는 최순실과 손을 잡은 박원오 전 전무 중심으로 개편됐다. 박 전무는 이미 각종 비리로 협회에서 밀려난 인물. 다시 권력을 쥐기 위해 최순실을 이용한 것이다.

반대파들이 숙청된 협회는 정유라를 인천아시안게임 국가대표로 전격 발탁했다. 특혜 의혹이 제기됐지만 김 차관은 긴급 기자회견을 열고 이에 대해 "근거가 없다"며 강력 반발하기도 했다. 결국 정유라는 아시안게임 마장마술 단체전 금메달을 안고 이화여대에 입학했다.

대학 입학 과정도 특혜 의혹 투성이었지만 이는 빙산의 일각에 불과했다. 최순실과 김 차관의 목표는 더욱 원대했다. 이들에게 한국 스포츠는 단지 정유라의 입학을 위한 수단이 아니라 목적, 그 자체였다. 한국 체육을 발판으로 최순실 일가와 김 차관을 위한 거대한 제국을 만들려고 했던 것이다.

2013년 9월 취임과 함께 체육계 4대악 척결을 주장했던 김종 전 문체부 차관.(사진=자료사진)
일단 생활체육을 장악하기 위한 작업이 먼저 진행됐다. 기존에 운영 중인 종합형스포츠클럽을 늘리는 한편 이를 총괄 통제하는 K스포츠클럽 컨트롤 타워 구축 계획을 세웠다. 선진국처럼 학원이 아닌 클럽 스포츠를 육성해 체육 저변을 넓히자는 취지 자체는 시대적 흐름에 부합한다.

하지만 그 주도적 역할을 김 차관과 최순실 일가가 맡는다는 게 문제였다. 전국 총 43개로 예정된 종합스포츠클럽에 대한 지원금(3년간 3억원) 약 120억원의 운영과 집행을 최순실이 실소유주인 K스포츠 재단이 맡는다는 것이다. 이 과정에서 나오는 이익과 생활체육에 대한 영향력을 차지하게 되는 것이다.

더 큰 계획은 엘리트 스포츠 장악이다. K스포츠클럽으로는 엘리트 체육까지 양성하기에는 한계가 있는 것이 사실. 이에 따라 '5대 거점 체육인재 육성사업'이 추진된 것이다. 총 600억원에 육박하는 사업이다. 이 대형사업을 K스포츠재단과 더블루K, 여기에 해외업체인 누슬리까지 들러붙어 따먹는다는 계획이었다.

이렇게 되면 최순실 일가와 김 차관은 엘리트와 생활 체육을 모두 장악하게 된다. 이는 대부분 하계 스포츠와 관련된 종목. 동계 스포츠의 경우는 최순실의 조카 장시호가 사무총장으로 있는 한국동계스포츠영재센터가 접수하는 시나리오다. 명실상부하게 대한민국의 동, 하계 및 엘리트, 생활체육을 들어먹는 것이다.

김 차관은 문체부가 엘리트와 생활 체육을 통합시키는 과정에서 '체육 대통령'이라는 별명이 붙을 만큼 막강한 권력을 손에 쥐었다. 체육 예산과 집행을 온전히 문체부가 맡았고, 불만이 있던 엘리트 체육계는 각종 비리로 감사를 진행하면서 길들였다. 정부 주도의 대한체육회 통합은 비정상적일 수밖에 없었다. 체육회의 한 관계자는 "김 차관이 한국 체육을 개판으로 만들어놓고 나갔다"며 분통을 터뜨렸다.

◇ K스포츠재단 키워 딸에게 넘기려던 최순실

가장 덩어리가 큰 K스포츠재단의 '5대 거점 체육인재 육성사업'을 뜯어보면 최순실 일가의 야심이 그대로 드러난다. 사업 목적은 거창하다. "2018년 아시안게임과 2020년 올림픽을 목표로 각 종목 우수 인재를 발굴, 훈련하여 국위선양과 국가 체육발전에 이바지한다"는 것이다.

하지만 이권은 최 씨 일가의 몫이다. 사업 계획서를 보면 서울/경기와 인천, 부산, 경북, 대전 등 전국 5개 거점에 지어질 체육 시설은 누슬리가 맡게 돼 있다. 최순실이 소유주인 더블루케이사의 해외 협력업체라는데 실체가 불분명한 회사로 알려져 있다. 시설비 300억 원(1개소 60억 원)에서 상당 부분은 이들 회사를 통해 빼돌려질 가능성이 농후한 대목이다.

여기에 스포츠 장비 및 기구 설비(25억 원), 시설 운영 인력과 지도자 등 운영지원비(약 60억 원), 선수단 훈련비(약 85억 원) 등도 재단이나 더블루케이 등이 집행할 가능성이 높다. 수백억 원대의 이익이 날 수 있는 황금어장인 셈이다.

한국 엘리트 체육을 통해 이권을 챙기려 했던 최순실 씨 소유의 K스포츠재단의 5대 거점 체육인재 육성사업.(사진=자료사진)
이 사업에 대한 재원에는 혈세도 들어간다. 사업 기획안에는 5개 거점 1개소마다 약 9억원씩 총 45억원이 문체부 예산 지원요청안으로 잡혀 있다. 추가 예비지억 3개소 8억원씩까지 합하면 총 70억 원에 이른다. 기업 후원은 1개소마다 80억원으로 잡혀 있다. K스포츠재단이 SK와 부영 등 대기업마다 요구한 후원액이 똑같이 80억 원씩인 이유다.

이 사업은 시행 과정에서의 이익도 막대하지만 거의 영구적인 수입원이 될 수 있다는 점도 주목할 만하다. K스포츠재단이 사업을 맡는 한 운영비와 훈련비 등 빼먹을 수 있는 부분이 수두룩하다. 이미 한국동계스포츠영재센터에서 진행된 해외 전지 훈련비의 상당 부분이 장시호 사무총장에 의해 착복된 정황이 드러났다.

더욱 무서운 것은 한국 체육에 대한 K스포츠재단의 장악이다. 비단 예산만 관리하는 게 아니라 엘리트 인재를 관리, 육성하는 만큼 각 종목 국가대표 선발에 막대한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기 때문이다. 여기에 K스포츠클럽을 통한 은퇴 선수들의 지도자 수급도 관리하는 만큼 엘리트 체육 인사들을 주무를 수 있는 것이다.

K스포츠재단 이사장은 그야말로 한국 체육의 대통령으로 군림할 수 있는 것이다. 한 체육계 인사는 "일단 김종 차관이 이사장을 맡는 그림이겠지만 언젠가는 정유라가 그 자리에 앉게 될 것이었다"면서 "수십년 동안 빙상계를 주물러왔던 이규혁 일가를 넘어 한국 체육 전체를 장악하려 한 최순실 일가의 거대한 음모"라고 꼬집었다.

이미 인천아시안게임 금메달을 따낸 정유라는 2020년 도쿄올림픽 출전까지 노리고 있었다. 정유라의 아시안게임과 올림픽 출전은 체육계 고위직에 걸맞는 경력이었다. 승마 선수 출신으로 동계체육인재육성재단 사무총장을 맡은 장시호 씨와는 차원이 다른 배경이다. K스포츠재단 이사장을 위한 초석이었던 셈이다.

김 차관은 지난달 30일 사퇴 의사를 밝힌 뒤 외부와 연락을 차단하고 있다. 한국 체육을 통째로 들어먹으려던 최순실과 김종 차관의 '검은 야합'이 검찰 조사를 통해 밝혀질지 지켜볼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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