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때 MBC만 보던 때가 있었는데…."
"MBC는 이미 회복 불능 상태 같다."
현재 MBC는 '마봉춘'이라는 과거의 애칭보다는 '엠병X'이라는 노골적인 표현이 따라붙는다. 이명박 대통령과의 친분으로 취임 전부터 내부의 강한 반발을 불러일으켰던 김재철 사장 이후 쭉 계속되는 흐름이다.
노사가 자사 방송의 공정성에 대해 논하는 공정방송협의회는 사측의 일방적인 거부로 제대로 열지도 못했고, 현재는 명맥이 끊긴 상태다. 2012년 노조의 170일 파업 이후 진행된 징계무효소송에서 법원은 "공정방송은 노사 양쪽의 의무"라는 판결을 내렸으나, 회사는 공정방송은 '회사 몫'이라며 외면 중이다. "방송 제대로 하자"는 노조에 '정치세력'이라는 딱지를 붙여 공공연하게 비판하고, 자사 감시와 비판을 하는 노조 민주방송실천위원회(이하 민실위)의 취재를 대놓고 거부한다.
뉴스의 질은 지속적으로 하락했고, 시청자들은 더 이상 MBC '뉴스데스크'에, MBC 기자들에 많은 것을 기대하지 않는다. 뉴스 신뢰도와 영향력 면에서 지속적인 하락세를 보이고 있는 통계 속에, "MBC 보도는 믿고 거른다"는 댓글 속에, 시민들의 항의로 집회 취재를 하지 못하는 장면 속에, 무서운 민심이 숨어 있다.
하지만 내부에 '공정방송'을 염원하는 목소리마저 사라진 것은 아니다. 지난 7일 MBC 보도본부 사회1부 데스크 김주만 기자는 현재 보도본부의 문제점을 짚고 최기화 보도국장의 퇴진을 요구하는 글을 실명으로 올렸다. 이후, "부끄럽다"는 기자들의 고백이 줄줄이 이어지고 있다.
◇ "선배들께 배웠던 기자의 기본, MBC의 모습은 이렇지 않았다"
보도본부 뉴미디어뉴스국 박소희 기자는 8일 사내 게시판에 "염치에 대해 다시 생각해 본다. 지금 현실은 참담하고 부끄럽다. 제가 선배들께 배웠던 기자의 기본, MBC의 모습은 이렇지 않았다. 무엇보다 취재 잘하고 기사 잘 쓰던 유능한 선배들이 다시 기자로 돌아와야 한다"고 썼다.
뉴미디어뉴스국 고현승 기자 역시 MBC뉴스를 향한 시청자들의 냉랭한 댓글을 언급한 후 "왜일까? 무엇 때문일까? 어떻게 해야 할까? 우리 모두는 답을 알고 있다. 답을 알고 있으면 실천에 옮기면 된다"는 뼈 있는 글을 남겼다.
시사제작국 강연섭 기자는 박근혜 대통령이 지난 4일 담화에서 썼던 말을 인용해 "이러려고 기자 된 게 아니다"라고 밝혔다. 강 기자는 "열심히 취재했지만 능력이 부족해서 낙종을 했다면 그나마 위안이라도 삼을 수 있지만, 지금은 아무것도 취재할 수 없는 현실이 더욱 허망하다"며 "이러려고 기자 된 것도 아니지만, 무엇보다 MBC 기자라는 사실이 시대의 죄인이 된 기분"이라고 전했다.
사회2부 박주린 기자는 5년 전 한미 FTA 반대 집회를 취재하던 중 현장에서 쫓겨나는 것을 넘어 얻어맞는 일이 벌어졌다는 카메라 기자의 고백과 최근 집회 현장에서 MBC 취재진이 쫓겨난 상황을 언급하며 "5년 전과 달리 화가 나거나 충격적이지 않았다. 딱히 수치스럽지도 않았다. 무엇이 우리 뉴스를 향한 비난과 조롱, 냉소와 외면을 체화하게 만든 것일까"라고 말했다.
박 기자는 "정부여당에 편향적이고 공정성을 잃었다는 안팎의 지적을, 특정 정치세력의 선동과 근거 없는 비방으로 폄하해 왔기 때문이다. 다른 언론사들이 힘을 줘 보도하는 사안을 누락하거나 축소해 왔다는 의견에 대해 '가치판단의 문제'로 합리화해 왔기 때문"이라고 지적했다. 이어, '너희가 그럴 자격이 있느냐'는 시청자들의 목소리를 두고 "공영방송 MBC를 향해 그래도 남아 있는 기대의 반증이자 얼마 남지 않은 경고라고 느끼는 건 저뿐인가"라고 반문했다.
◇ "분노한 민심을 생중계하지 못하는 뉴스는 전파낭비일 뿐"
문 기자는 "어린 학생들마저 대자보를 쓰는 요즘, 우리의 침묵은 후에 무엇으로 변명할 것인가. 모여서 뭐가 문제인지 얘기라도 해보고, 부당한 지시와 편파적인 기사 작성 사례라도 기록해야하지 않을까. 더 이상 뭘 할 수 있겠냐는 패배 의식과 자괴감에 빠져 있을 게 아니라 무엇이든 시작해보자는 논의의 자리라도 마련되어야 하지 않을까"라며 "다시 모두 힘내서 뉴스를 살려보자"고 제안했다.
스포츠취재부 데스크를 맡고 있는 조승원 기자는 "언제부터인가 '자기 생각'을 말하는 게 어려워졌다. 위에서 내려온 지시를 잘 따르는 게 미덕처럼 돼 버렸다"며 "그러는 동안 보도부문은 머리부터 발끝까지 조직 전체가 비판 정신과 판단 능력을 상실한 게 아닌가 싶다. 다른 것 따지기 전에, 이번 일이야말로 '집단적 판단 마비'의 결과물"이라고 말했다.
조 기자는 "후배들이 울분에 찬 글 올리는 걸 두고서도 '쟤들 또 뭐 준비하나?' 이런 시선으로 보고 있지는 않나. 이건 그런 차원의 문제제기가 아니다. 자기 직업에 대한 최소한의 윤리의식과 성찰의 문제다. 누구 말처럼 우리가 '이런 꼴 보려고 기자한 건 아니지 않나'"라며 "입사 이후 저도 처음 보는 이런 일을 겪고 나서도, 누구 하나 반성하지 않고, 책임지지 않는다면 그런 조직은 존재할 이유가 없다고 생각한다"고 전했다.
사회2부 바이스를 맡고 있는 남상호 기자는 불과 몇 년 전까지만 해도 △까다로운 고용 정책 △광범위한 교육과 트레이닝 △적절한 보상 △권한의 위임 △고용의 안정 등 5가지 특징을 지금보다 꽤 많이 충족하는 곳이었다며 "그 유산으로 어느 정도 버텨 왔지만 최순실 사건을 계기로 인해 이제 그 유산이 향수의 대상이 되고 만 것 같다"고 썼다.
남 기자는 "MBC 보도국의 특징을 복원해야 한다. 이를 위해 가장 필수적인 방법은 경험했던 인력을 복원시키는 것이다. 보도국이 아닌 다른 곳으로 발령 나 있는 기자들을 복귀시켜야 한다"며 "과거의 유산에 대한 향수에 빠져야 하는 조직은 전진하지 못한다. 현재의 자산을 왜 억지로 유산으로 묶어두고 있어야 하나"라고 물었다.
주간뉴스부 이브닝뉴스팀 김정인 기자는 "'언론'이 국정을, 나아가 우리 사회를 농단한 이들의 민 낯을 들춰내고 있다. 많은 이들이 언론의 힘을 다시금 생각하고 있다. 이런 와중에 우리 뉴스는 무엇을 하고 있나. 다른 이들이 MBC에 대한 기대를 저버렸다고 해서 우리마저 저버릴 순 없지 않나"라며 "쫓겨나 있는 MBC 기자들을 제자리로 돌려놓고, 간부들이 이제는 책임지는 모습을 보여주셔야 할 때"라고 밝혔다.
잇따라 '자성의 목소리'가 쏟아져 나오는 것에 대해 MBC의 한 기자는 "이번 사안(박근혜·최순실 게이트)에 대해 세월호 참사 당시만큼 보도를 제대로 못했다는 분위기다. 뉴스의 심각성에 대한 쌓여 있던 분노가 폭발하는 것 같다"며 "너무 늦었다는 지적도 있다. 그러나 MBC에서는 (저런) 글쓰는 것 자체가 자기 자리 내 줄 걸 각오한 일이나 다름없다. 지금이라도 아무것도 하지 않으면, 아무 목소리도 내지 않으면 안 되겠다는 공감대들이 생겨나는 것 같다"고 말했다.
한편, MBC 보도본부에서는 기자들의 반성문에 대해 별다른 언급을 하지 않은 것으로 전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