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상] 촛불집회 초대장 뭉클…"주먹을 쥐고서 고개를 들면서"

"세상을 바꾸는 광장에 당신을 초대합니다. 2016.11.12"

지난 5일 밤 8시가 가까워 올 무렵, 서울 종로통을 돌며 "박근혜는 퇴진하라" "박근혜는 하야하라"를 외친 뒤 해방구가 된 광화문광장에 다시 모인 20만 시민들의 시선은 앞쪽 대형 스크린에 고정돼 있었다. 스크린을 바라보는 시민들의 눈시울은 차츰 붉어졌다.

화면에는 잔잔한 피아노 선율을 배경으로 한 노동자의 아침 출근길부터 일터를 오가는 풍경이 담겨 있었다. 그는 삼성전자 서비스센터 노동자 정찬희 씨다.

중간중간, 단원고 고 남지현 학생의 언니 서현 씨와 민주노총 한상균 위원장의 부인 장영희 씨, 고 백남기 농민의 큰딸 도라지 씨가 시인 제페토의 '집을 나서며'를 낭독하는 장면이 그려진다.

'나는 염세주의자인데/ 지독하게/ 겁도 많은데/ 광장행 버스를 타겠다'

시의 첫 구절 위로 바다에 가라앉고 있는 세월호, 현재 수감 중인 한상균 민주노총 위원장의 투쟁 모습, 백남기 농민이 경찰의 물대포에 맞아 쓰러지는 장면 등이 겹친다.

차량에 장비를 싣고 도시를 누비는 노동자 찬희 씨는 다음과 같이 토로한다.

"하여튼 그냥 계속 일해요. 가정이 있고 가정을 꾸려야 되는 가장으로서 일한다는 느낌…. 재밌게 일하는 게 제일 좋긴 한데, 사실 요즘 같은 경우에는 별로 재미가 없어요."

시는 또 다시 흐른다.


'방석 대신/ 소설이 빼곡한 신문지를/ 아스팔트 위에 깔고 앉아서/ 세상 바닥이야 으레 차가웠으니/ 그러려니 하겠다'

이어 소비자의 집에 도착해 제품을 설치하는 찬희 씨의 모습을 배경으로 그의 목소리가 흐른다.

"다음달쯤 되면 아마 삼성에서 매년 성과급 잔치한다고, 성과급을 몇 % 준다 뭐 이런 (얘기가 돌겠죠.) 소비자들에게 가면 얘기하시죠. '성과급 많이 받아 좋겠다', 뭐 이런 얘기 하시는데 지금도 그냥 웃어 넘기든지, 아니면 아무 말도 안해요."

설치를 마친 찬희 씨가 차량 안에서 스마트폰을 보고 있다. 화면에는 박근혜 대통령과 함께 국정을 농단한 비선 실세 최순실 씨가 검찰에 출석하는 뉴스가 떠 있다. 이어 길을 걷는 그의 뒷모습은 버거운 삶의 무게 탓인지 쓸쓸해 보인다. 그는 말한다.

"통장에 들어오는 돈은 160만 원 정도? 협력업체 사장이 중간에 착취를 하는 거죠. 생활할 수 있을 만큼만 딱 주는 거예요. 그런 문제에 대해 문제제기를 해도 사실 바뀌지가 않습니다. '세상을 바꿀 수 있는 방법이 뭐냐'라고 했을 때, 그 생각을 하면 또 답답해지죠."

"세상을 바꿀 수 있는 방법이 뭐냐"라는 노동자 찬희 씨의 물음에 대한 답처럼, 제페토의 시가 이어진다.

'요구하겠다. 듣든 말든/ 미치도록 하고 싶던 말을// 물론, 소리치기에 앞서/ 살아만 있던 입은 오늘부로 죽이고/ 성층권에서만 배회하던 머리도/ 뚝, 떼어 버리고'

멈춰진 차량에 탄 채 카메라를 직시하고 있는 노동자 찬희 씨와, 광장에서 '박근혜 퇴진' 손펫말과 촛불을 든 채 역시 카메라를 똑바로 바라보는 한 학생의 모습을 배경으로 시의 마지막 구절이 흐른다.

'주먹을 쥐고서/ 고개를 들면서'

그리고 스크린에는 밤거리 도심을 행진하며 "박근혜는 퇴진하라"를 외치는 수많은 시민들의 모습이 담긴 채 아래와 같은 자막이 흐른다.

(사진=12일 열리는 촛불집회 초대영상 화면 갈무리)
'세상을 바꾸는 광장에 당신을 초대합니다. 2016.11.12'

오는 12일(토) 전국 각지에서는 박근혜 대통령 퇴진을 촉구하는 촛불집회가 열린다. 이날 오후 4시 서울광장에서 열리는 '백남기·한상균과 함께 민중의 대반격을! 박근혜 정권 퇴진! 2016 민중총궐기' 집회에는 최소 50만 명(주최 측 예상)의 시민들이 운집할 것으로 보인다. 지난 2008년 광우병 촛불집회 당시 최다 인원(주최 측 추산 70만 명)을 웃도는 인파가 모일 것이라는 전망이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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