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장의 여고 후배들 '직언'에 박 대통령 응답할까

성심여고생들 "박근혜 선배님께 부치는 편지"…10대, '백만 촛불' 역사에 큰 몫

12일 밤 서울 광화문광장에서 열린 박근혜 대통령 퇴진 촉구 촛불문화제에서 시민들이 촛불을 들고 있다. (사진=박종민 기자)
들불처럼 번진 100만 촛불의 엄정한 외침이 광장에서 꽃피우는 민주주의의 새 역사를 썼다.

12일 서울 광화문·시청 광장 일대에서는 100만여 시민들이 운집한 가운데, 비선 실세 최순실 등의 국정 농단을 부른 대통령 박근혜의 퇴진을 촉구하는 사상 최대 규모의 촛불집회가 열렸다.

이날 집회에서 어느 세대·단체보다 뜨겁게 "박근혜 하야" 목소리를 높인 이들이 10대 중고교생들이었다. 학생들은 이른 낮부터 종로 탑골공원 등지에 자리를 잡고, 10대 특유의 유쾌한 해학과 풍자를 버무린 콩트를 선보이며 광장으로 모여드는 시민들의 눈길을 끌었다.

클라이맥스는 광화문광장에서 본격적으로 시작된 촛불 문화제 무대에 오른, 박 대통령의 출신 고교인 성심여고 재학생들이 '박근혜 선배님께' 부치는 편지 낭독이었다. 박 대통령은 성심여고 8회 졸업생이다.

학생들은 "오늘 저희는, 대자보를 썼음에도 불구하고 박근혜 선배님께 대답을 듣지 못해 이 자리에 섰습니다"라며 "저희는 어제 오후 이 자리에 오를 수 있다는 소식을 들었고, 선배님께 저희의 의견을 전달할 기회라 생각해 시간을 내어 이 발언을 준비했습니다"라고 운을 뗐다.

앞서 4일 SNS에서는 성심여고 재학생들이 학교 안에 붙인 '선배님, 성심의 교훈을 기억하십니까?'라는 제목의대자보가 화제를 모았다. 대자보에는 "성심의 자랑스러운 교훈 '진실' '정의' '사랑', (박근혜) 선배님께서는 이들을 잊고 계시다. 뉴스마다 성심의 졸업생이신 박근혜 대통령의 이름이 보인다. 그 뉴스들은 후배로서 부끄러움을 느낄 수밖에 없는 뉴스였다"라며 박 대통령을 강하게 비판하는 내용이 담겼다.

이날 무대에 선 학생들은 "선배님과는 다른 후배가 되고 싶어 누군가의 지시, 혹은 대필 없이 저희의 생각만을 담았습니다"라고 운을 뗐다.

"저희는 택시 기사 아저씨께 '성심여고로 가 주세요'라고 말씀드리면 '아, 박근혜 대통령 나온 학교?'라는 말을 자주 듣습니다. 그럴 때마다 '네, 맞아요'라고 떳떳이 말할 수 없습니다. 후배들에게 부끄러운 존재가 된 박근혜 선배님께서 11월 4일 저희가 공개적으로 보낸 편지를 보지 못하셨을까 하여 다시 한번 목소리를 내보려 합니다."

학생들은 "박근혜 선배님, 저희는 현재 성심여고에서 '진실' '정의' '사랑' 이 교훈들에 따른 교육을 받고 있습니다"라며 "같은 교훈 아래에서 자란 선배님과 저희의 의견은 너무나도 다릅니다. 성심의 교훈 세 가지는 지금 선배님의 행동 어느 곳에서도 찾아볼 수 없습니다"라고 꼬집었다.


"진실이란 사전적 정의로 '거짓이 없는 사실'이라는 뜻입니다. 박근혜 선배님께서는 지금까지 국민에게 진실이 아닌 거짓을 이야기하고 계십니다. 하루 속히 진실을 밝히고 그에 따른 책임을 지셔야 합니다. 우리는 '순실의 의견'이 아닌 진실을 듣고 싶습니다."

◇ "우린 당신을 대한민국의 대표로 삼으며 살아갈 자신이 없습니다"

"2012년 10월 22일 말씀하신 '정의는 결코 패배하지 않는다.' 이 말이 현재의 상황에 옳은 말인가요?"라고 학생들은 반문했다.

"저희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습니다. 지금 선배님께서는 정의를 패배시키려 하고 계십니다. 선배님께서 지금까지 행사해 온 행동들은 절대로 정의가 아닙니다. 선배님께서는 정말로 국민을 아끼는 마음으로 대통령직에 앉아 계신 것이 맞습니까? 대통령은 국가를 대표하여 국민을 위해 정치하는 사람이지, 국민에게서 귀 막고 회피하는 사람이 아닙니다. 국민을 사랑으로 안을 자신이 없으시다면 그 자리는 결코, 절대로, 어떤 이유에서도 선배님의 자리가 아닙니다."

이들은 "우리 학생들은 아침마다 지각하지 않으려고 교실로 뛰어옵니다"라며 "하지만 온갖 특혜를 받은 정유리 언니는 고등학교 3학년 재학 당시 단 28일을 출석하고도 졸업장을 받았습니다"라며 비판의 수위를 높여갔다.

"얼마 전 저희는 마사회가 정유라 언니의 훈련 예산으로 1000억 원을 편성했다는 기사를 보았습니다. 이 기사에 나온 마사회는 저희에게 낯선 공기업이 아닙니다. 왜냐하면 마사회가 학교 앞 215m에 화상 경마 도박장을 지었기 때문입니다. 법적으로는 학교에서 200m 내에는 개인이 운영하는 작은 오락실도 들어올 수 없지만, 마사회는 215m라는 이유로 수천 명이 들어올 수 있는 화상 경마 도박장을 지었습니다."

"이들을 막기 위해 저희는 청와대에 편지를 전달하고, 국회에서 기자회견을 하기도, 입법청원을 하기도 했습니다. 또 학부모님들과 선생님들은 4년 동안 반대 운동을 하며 오늘 날짜로 1026일째 천막 농성을 하고 계십니다"라는 것이 학생들의 설명이다.

"마사회는 정유라 언니 한 명을 위해 엄청난 지원을 했지만, 성심여중과 성심여고가 있고, 많은 청소년들이 지나다니는 곳에 화상 경마 도박장을 세워 교육 환경을 훼손했습니다. 이 상반되는 대우가 정말로 정유라 언니의 말처럼 '능력 없고 돈 없는 부모를 둔 저희의 잘못인가요?' 오늘 이곳에 왜 이렇게 많은 국민들이 나왔을까요? 바로 우리의 의사를 알리고 지금 대한민국을 망치고 있는 그들이 틀렸다는 것을 보여주기 위해서입니다."

학생들은 "우리가 하나 되어 올바른 목소리를 낸다면 우리는 이 위기를 이겨낼 수 있습니다"라며 다음과 같은 강력한 메시지로 편지를 끝맺었다.

"박근혜 선배님, 지금 저희의 목소리가 들리신다면 제발 그 자리에서 내려오십시오. 우리는 당신을 대한민국의 대표로 삼으며 살아갈 자신이 없습니다. 지금까지 후배들이 박근혜 선배님께 보내는 목소리를 들어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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