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근혜 '불통' 밀어붙이기…긴 싸움 염두에 둬야"

[노컷 인터뷰] 작가 심용환 '생활 속 풀뿌리 하야 운동' 제안

지난 17일 오후 서울 종로구 보신각 앞에서 열린 '박근혜 하야 고3 집회' 참가자들이 행진을 하고 있다. (사진=황진환 기자)
최순실을 위시한 비선 조직의 국정 농단 사태를 부른 박근혜 대통령이 국민과의 약속마저 어기면서 검찰 수사에 '성실하게' 응하지 않고, 도리어 국정 운영을 무리하게 밀어붙이겠다는 뜻을 노골적으로 내비치고 있다. 이로 인해 시민들 사이에서는 박근혜 정권과의 긴 싸움을 준비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역사교양서 '단박에 한국사'(위즈덤하우스·2016), '역사전쟁'(생각정원·2015) 등으로 널리 이름을 알린 작가 심용환 역시 긴 싸움을 염두에 두고 이미 '생활 속 풀뿌리 하야 운동'을 벌이고 있다.

심용환은 16일 CBS노컷뉴스에 "(박 대통령 퇴진 운동은) 길게 볼 수밖에는 없다"며 "박근혜 정권이 여태까지 해 온 방식은 소통과 설득, 혹은 양보라는 게 전혀 없는 밀어붙이기식이었지 않나"라고 반문했다.

"역사교과서 국정화나 한일 '위안부' 합의 강행 등의 문제만 봐도 (박근혜 정권은) 일방적이었잖아요. 광장에 100만 명이 모여 '하야' '퇴진'을 외친다고 해서 이 사람(박 대통령)이 하루아침에 물러날 거란 생각은 애초부터 안했습니다."

그는 "사실 4·19혁명, 6월항쟁을 봐도 꽤 오랜 시간을 두고 정권이 무너졌다"며 설명을 이어갔다.

"(이승만과 전두환) 정권 자체가 길게 갔던 것도 있고, 혁명의 과정 역시 몇 달에 걸쳐 진행됐으니까요. 1987년 6월항쟁의 경우 길게 잡으면 1984년 학원 자율화 조치 이후 본격화 되니까 3년이에요. 짧게 잡아도 박종철 군 고문치사 사건이 기점이니 그해 1월부터였습니다. 장기적인 과정을 인내하지 못하면 정권 퇴진 운동을 성공시키기는 어렵다고 봐요."


◇ "정권퇴진 운동 생활화, 작은 실천들이 창의적인 평화 투쟁의 길 열 것"

작가 심용환(사진=인터파크도서 제공)
앞서 심용환은 지난 10일 자신의 페이스북 페이지에 '긴급제안'이라며 "생활 하야 운동을 제안합니다"라고 적었다. '하야가 민심이다'라는 문구가 적힌 가로 120㎝, 세로 80㎝ 크기의 현수막을 집이나 일터 안팎에 걸어둠으로써, 시민들 스스로가 '박근혜 퇴진 운동'을 일상으로 끌어들이자는 것이다. 그는 참여를 원하는 시민들로부터 장당 5000원의 제작비와 3500원의 배송비를 받고 현수막을 제공했다. 일주일 만에 500여 장이 공유될 만큼 호응도 얻고 있다.

"사실 시민들 입장에서는 할 수 있는 게 그리 많지 않아요. 저야 SNS에 글이라도 올리면 (누리꾼들이) 조금 호응을 해주지만, 그것도 확장성에는 분명한 한계가 있어요. 막상 일반 시민들 입장에서는 광장에 나가서 촛불 드는 것 말고는 직접 해볼 만한 방식이 없는 거죠. 그러니 일상에서도 시민들이 자발적으로 참여할 수 있는 퇴진 운동을 하나라도 더 만들어보자는 마음이었어요. 현수막을 거는 것 역시 시민들에게는 용기가 필요한 과정이니까요."

결국 "정권퇴진 운동을 생활화하자"는 이야기다. 그는 "시민들 사이에서 이러한 작은 실천이 이어진다면 창의적인 평화 투쟁을 계속해 나갈 수 있는 길이 열릴 것"이라고 내다봤다. 지도부에서 대중에 지침을 내리는 '하향식'이 아닌, 시민들의 자발적 참여에 바탕을 둔 '상향식' 운동의 성격을 띠고 있다는 점에서 의미도 남다르다.

"지난 12일 서울 광화문 일대에 100만 명의 시민들이 운집한 것 역시 누가 시켜서 한 게 아니잖아요. 그날 집회를 주관한 민주노총도, 수많은 시민단체, 오래된 여러 단체들도 대표성을 띠고 있지 못했어요. 그렇게 많은 사람들이 모인 것은 어마어마한 자발성의 여파라고 봅니다. 저희가 벌이는 일(생활 속 풀뿌리 하야 운동)은 그 중에서 아주 작은 부분을 담당하고 있을 뿐이죠."

심용환은 "다만, 지금처럼 규모 있는 집회 현장을 만들어낼 수 있는 큰 단체들이 창의성을 발휘했으면 좋지 않을까라는 생각이 든다"며 아쉬움을 토로했다.

"지난 12일 집회에 50만 명 이상이 나올 거라고 모두 예상하고 있었잖아요. 오후 3시쯤 됐을 때는 이미 광화문·시청 광장 일대가 인파로 꽉 찼고, 5시 반쯤부터는 뒷골목으로 해서 청와대 행진이 시작됐습니다. 광화문광장에 앉아 있던 사람들은 그 현황을 잘 파악하지 못했죠. 그날 집회가 성공리에 끝났지만, 많은 시민들이 답답해 한 부분이 '앉아서 공연만 보고 왔다'는 거였어요. 심지어 '예배 드리고 온 것 같다'는 사람도 있었죠."

그는 지난 1989년 발트 3국(에스토니아·라트비아·리투아니아)의 200만여 명이 소련으로부터 독립을 염원하며 세 나라를 잇는 620㎞에 달하는 국경선에서 인간 띠를 만들었던 사건을 언급하며 말을 이었다.

"지난 집회에서 100만여 명이 모였으면 현장에서 6개 그룹으로 나눠서 행진할 수 있는 길을 생각할 수도 있는 거잖아요. 예를 들어 5만여 명이 남산터널을 통과해서 한남대교로 갔다면 아주 평화적인 방법으로 강북 전체를 마비시킬 수 있다는 걸 보여줬을 겁니다. 평화적인 수단으로 공권력이 얼마나 무력한가를 입증할 수 있는 기회였죠. 그런데 이러한 제안이 없었던 것도 아닙니다. 답답하고 아쉬울 따름이죠."

"조직화된 단체에서 이러한 시민의 역동성을 수용하고 부흥시켜야 하는데, 오히려 현실과 동떨어진 것을 고상한 것으로 여기는 듯해 답답하다"는 것이 그의 지적이다.

◇ "혁명 열기 거셀 땐 숨죽이는 보수파, 시간 늘어지고 상대 지치면 역공 시작"

'생활 속 풀뿌리 하야 운동'에 함께하는 한 시민이 '하야가 민심이다'라는 문구가 적힌 현수막을 집 앞에 걸어두고 있다. (사진=작가 심용환 페이스북 페이지 화면 갈무리)
그 연장선상에서 심용환은 6월항쟁 이후 야권 분열 탓에 전두환 정권의 계승자 격인 노태우 정권이 집권해 민주화의 열망에 찬물을 끼얹었던 역사의 반복을 우려했다.

"냉정하게 보자면 앞으로 날씨가 더 추워질 것이고, 운동의 열기를 이어가는 데도 고비가 있을 거예요. (광장에) 100만 명을 모으기도 쉽지 않을 것으로 보여요. 조금 전에 집필하면서 과거 독일의 '프랑크푸르트 국민의회'(1848년 독일 자유주의 혁명으로 들어선 입헌 기관으로, 프로이센 왕 등 당대 권력층의 비협조 탓에 1년여 만에 실패로 끝났다) 사료를 접했어요. 이때 역시 처음에는 혁명적 열기가 워낙 거세니까 보수파들이 숨죽이고 있어요. 그런데 시간이 늘어지고 지치고 하면서 그들의 역공이 시작됩니다."

"지금 우리의 문제는 시민단체나 민주노총처럼 기반을 갖춘 조직이 시민들의 제안을 수용하지 못하는데다, 야당 역시 더불어민주당 추미애 대표가 박 대통령과 영수회담을 가지려다 접었던 것에서 드러났듯이 너무 정략적이라는 데 있다"는 것이다.

심용환은 "당이나 단체의 조직화된 힘이 시민들의 자율성과 어우러지면 더욱 커다란 영향력을 발휘할 수 있을 것"이라고 확신했다.

"예를 들어 더불어민주당 문재인 전 대표 같은 영향력 있는 정치인이 서울 강동구에서 시민들이 작은 집회를 연다는 소식을 듣고 그곳에 가서 화젯거리를 만드는 겁니다. 그러면 그곳에 사람들이 모이게 될 테고, 자연스레 시민들이 중심에 선 민주집회로 자리잡을 것 아닙니까. 그곳을 그렇게 키운 의원들의 존재감도 빛날 테고요."

그는 "야당 조직이나 지도자, 민주노총·전교조 같은 조직력을 갖춘 단체는 스스로 깃발을 들려 하기 보다는, 시민들의 역동성을 수용하고 공유할 수 있는 역할을 구축하는 데 힘써야 할 것"이라고 당부했다.

"저 역시 역사교과서 국정화와 한일 '위안부' 합의 반대, 생활 속 정권퇴진 운동 등 다양한 사건에 관심을 두고 끄집어내려 애쓰고 있어요. 촛불집회 현장에 가보면 수많은 이슈가 잠복된 정도를 넘어 부글부글 끓고 있다는 걸 어렵지 않게 알 수 있잖아요. 그렇게 종합적인 열기가 있었기에 100만 명이 모일 수 있었다고 봐요. 정치공학적인 태도를 버리고, 그 수많은 이슈가 만들어내는 현장 곳곳에 당이나 조직들이 참여했으면 합니다."

"정당의 경우 조직 기반이 있으니 사이트를 만들어서 실시간으로 지역 어디어디에 모임이 있는지 정보를 모으고 공유하는 범용적인 터미널 역할을 해주면 좋을 것"이라는 게 그의 제안이다.

"한 예로 서울 강북구 미아동 주민들이 어느 아파트 앞에서 집회를 연다는 정보가 뜨면 그 일대 대학생들이 모일 수도 있고, 강북구 국회의원이 가서 참여할 수도 있고, 현장에서 간담회 같은 게 이뤄지면 시민들의 말을 들을 수 있는 기회도 마련됩니다. 부족하지만 저 역시 시민들과 나름 창의적인 일을 벌이고 있잖아요. 대학생들도 정말 다양한 아이디어를 내고 있습니다. 그런 것들을 야당과 단체에서 수용하고 지원해 줘야 해요. 말 그대로 '풀뿌리'를 지원해 주면 박근혜 정권 퇴진 운동은 강력한 구심점을 갖고 더욱 불타오를 수밖에 없을 테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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