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광장에 소 끌고 온 농민 "하야하소"

'박근혜 대통령 퇴진 촉구' 5차 촛불집회에서 한 농민이 26일 오후 서울 광화문광장에서 소를 이끌고 무대를 향해 이동하고 있다. (사진=이한형 기자)
서울 광화문 일대에서만 160만 명, 전국에서 190만 명의 시민들이 한목소리로 "박근혜 퇴진"을 외치며 거리로 쏟아져 나온 26일 밤, 민주주의 수호를 위한 해방구로 빛난 광장에 선 시민들은 역사의 한 페이지에 다시 한 번 '촛불혁명'을 새겨넣었다.

이날 낯 4시에 이어 밤 8시 즈음 청와대로 향하는 시민들의 2차 행진이 준비될 무렵, 광화문광장에서 경복궁 방면으로 가는 길에는 누런 소가 한 마리 서 있었다. 길을 가다 멈춰서서 소의 등에 아이를 태우고 사진을 찍는 부모들의 모습도 눈에 띄었다.


이 소를 끌고 경기 수원시에서 올라왔다는 농민 백도영(49) 씨는 "오늘 집회에 참가하려고 어제 저녁에 소를 농장에서 빼 왔다"며 "경찰 검문을 피해 오늘 오후 2시에 (광화문광장) 집회 현장에 도착했다"고 설명했다.

백 씨는 "소를 이곳에 데려오면서 (소가) 고생하는 걸 봤는데, 마음이 아프다"며 말을 이었다.

"아까 광화문광장에 들어올 때, 이 앞에서 경찰에 막히는 바람에 소가 3시간이나 갇혀 있었어요. 경찰이 우리를 세 겹으로 포위한 상태에서 소에게 물조차 먹일 수 없을 정도였으니까요. 그런 부분에 있어서 소에게 너무 미안하고 마음이 아픕니다."

소와 함께 광장에 나온 이유를 묻자 그는 "저희가 계획한 것은 박근혜 씨한테 '하야하소'라고 정중하게 얘기를 하려고 (소를) 데려왔어요. 그런데 도대체 (박 대통령이) 말을 안 들으시니까…"라며 한숨을 내쉬었다.

"농민들 같은 경우는 이 소를 키워도 소값이 안 나와요. 모든 게 마찬가지입니다. 소가 안 돼서 돼지를 키워봤자 돼지도 안 되고, 돼지가 안 돼서 밭농사를 하면 밭농사도 안 되고, 또 논농사도 안 되고…. 농업이 국가의 기본 산업임에도 불구하고 자본의 이익을 위해 가장 먼저 내쳐지고 피해를 당하고 있어요."

◇ "자급자족도 어려운 상황…최소한의 생산비는 보장됐으면"

26일 서울 광화문 일대에서 열린 '박근혜 퇴진 촉구' 제5차 촛불집회에 소를 데려온 농민 백도영 씨. 그는 "최소한의 생산비 정도는 보장하는 농촌, 사회가 됐으면 좋겠다"는 간절한 바람을 전했다. (사진=이진욱 기자)
농민 백 씨는 "생존이 걸린 문제"라는 표현으로 현재 우리나라 전체 농민들이 처한 절박한 입장을 대변했다.

"쌀 한 가마를 도정해 팔아도 지금 값이 14만~15만 원 밖에는 안 됩니다. 그러면 한 마지기(100여 평·약 330㎡) 농사지어 봤자 네다섯 가마 밖에 안 나오는데, 그걸로 어떻게 먹고 살 수 있겠습니까. 그렇다고 우리가 대기업처럼 거대한 농토를 갖고 있는 것도 아니잖아요. 끽해야 몇 마지기 갖고 농사 지어 먹는 건데, 결국은 자급자족하기도 어려운 상황입니다."

그에게 '박근혜 이후' 농업정책에 대한 바람을 묻자 다음과 같은 상식의 대답이 돌아왔다. 어쩌면 우리는 그 상식조차 잊은 채, 외면한 채 살아 왔는지도 모른다.

"최소한 우리가 자주적으로 살기 위해서는 먹고 사는 문제만큼은 해결해야죠. 먹거리는 국가 안보와도 직결된 문제라고들 하잖아요. (농민들에게) 최소한의 생산비 정도는 보장해 주는 농촌, 그런 사회가 됐으면 좋겠어요."

그는 끝으로 자신과 함께 광장에 나와 고생한 소에게 감사의 인사를 건네며 환한 웃음을 보였다.

"소야, 미안해. 그리고 오늘 고마웠다. 내가 내일 가서 맛있는 것 많이 해줄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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