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플, '통큰' 투자인가 '퉁친' 투자인가

소프트뱅크 테크 펀드에 10억달러 투자…폭스콘도 미국 투자나서

애플이 1천억달러 규모의 소프트뱅크 테크 펀드에 투자 협의를 진행 중이다. 월스트리트저널(WSJ)은 12일(현지시간) 애플의 투자 규모가 10억달러(약 1조2천억원) 수준이 될 것이라고 보도했다.

팀 쿡 애플 CEO, 손정의 소프트뱅크 회장 (페이스북 갈무리)
애플이 내년 출범 예정인 소프트뱅크 비전 펀드(Softbank Vision Fund) 참여를 놓고 소프트뱅크 측과 협상을 진행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양측 모두 초기단계로 정해진 것은 아무것도 없다고 밝혔지만 IT 업계는 애플의 이번 투자 방식이 이례적이라는데 공감하는 분위기다.


소프트뱅크의 비전 펀드는 손정의(손 마사요시) 회장이 사물인터넷(IoT)과 인공지능(AI), 로봇(Robotics) 같은 차세대 첨단 기술을 중심으로 전 세계 IT 기업에 5년간 1천억달러(약 116조5천억원)를 투자할 계획이다. 애플은 이 펀드에 대한 투자를 통해 새로운 기술에 대한 통찰력을 얻을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고 WSJ는 전했다.

◇ 스타트업 인수에서 펀드로 선회?…'독자→연대'로 바뀌나

애플의 이번 행보에 이목이 쏠리는 이유는 그동안 기술 스타트업 인수와 연구개발(R&D)에 집중됐던 투자 흐름을 바꿔 최초로 다자간 연합체인 글로벌 기술 펀드에 참여하는 방식을 선택했다는 점 때문이다. 그동안 독자적인 플랫폼과 생태계를 구축해왔던 애플이 사물인터넷과 인공지능과 같은 미래 기술 플랫폼 펀드 조직의 일원으로 참여한다는 것 자체가 이례적인 일이기 때문이다.

애플이 현재까지 인수하거나 투자한 업체만 십여 곳에 달한다. 대표적으로 중국의 차량 공유업체 디디추싱에 10억달러를 투자했고, 최근 중국 풍력발전 업체의 지분을 대거 인수했다. 앞서 인공지능 기술 스타트업인 인도의 튜플점프(Tuplejump)와 퍼셉티오(Perceptio), 투리(Turi), 이모션트(Emotient)를 사들였다.

애플뮤직을 위해 미국의 강력한 음악 스트리밍 서비스 업체인 비트(beat)와 비트 오디오 기기 부문을 통째로 인수했다. 최근에는 타이달(TIDAL)까지 인수할 것으로 알려졌다.

애플은 자체 R&D에도 전체 매출액의 3.5%에 해당하는 85억달러(약 10조원)를 투자하고 있다.

소프트뱅크는 펀드 자금으로 250억달러(약 29조원) 이상을 대며 사우디아라비아 국부펀드에서 최대 450억달러(약 5조2천억원)의 투자도 유치했다. 아부다비 국부펀드도 대규모 투자를 검토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애플이 펀드에 참여하더라도 운영은 소프트뱅크 비전 펀드 그룹이 맡게 된다.

애플이 내놓을 10억달러는 상당한 금액이지만 현금보유고 2370억달러(약 278조원)에 비하면 일부에 지나지 않는다. 일각에서는 애플의 '속셈'은 따로 있다는 분석이 나오고 있다.

◇ 애플, 떠밀리기보다 영리한 선택?

손 사장은 지난주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당선자와 만난 후 펀드 자금 가운데 500억달러(약 58조2천억원)를 미국에서 투자하고 5만개의 일자리를 만들겠다고 밝혔다. 여기에는 애플의 아이폰 공급업체인 폭스콘도 참여할 것으로 알려졌다.

이같은 소식이 전해진 직후 애플의 펀드 참여 시사가 최근 압박 강도를 높이고 있는 트럼프 노선에 부응하기 위한 조치라는 분석이 설득력을 얻고 있다.

블룸버그 등 미국 주요 외신은 오는 14일 뉴욕 트럼프타워에서 트럼프와 구글 모회사 알파벳의 에릭 슈미트 회장, 래리 패이지 알파벳 CEO, 팀 쿡 애플 CEO, 셰릴 샌드버그 페이스북 최고운영책임자(COO), 사티아 나델라 마이크로소프트(MS) CEO 등 IT업계 주요 리더들이 만난다고 전했다.

블룸버그는 이날 간담회에서 트럼프가 대선기간 내내 강조했던 미국 IT 기업들의 해외 공장 본토 이전 문제, 이민자 규제 문제 등에 대해 대화를 나눌 것으로 예상했다. 여기에서 애플의 중국 아이폰 생산공장 이전을 요구하는 이야기가 나올 것이라는 전망이 우세하다.

트럼프는 미국 기업이 본토로 공장을 이전할 경우 현재 법인세율을 35%에서 15~25%까지 대폭 낮추는 세금 감면 정책과 규제 완화를 제시한 바 있다. 애플이 앞서 폭스콘과 생산시설 일부를 미국으로 이전하는 문제를 협의를 했지만 폭스콘이 난색을 표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때문에 애플이 펀드 자금의 절반 이상을 미국에 투자하는 소프트뱅크 비전 펀드에 참여해 공장 이전과 규제 문제를 돌파하려 한다는 관측이 나오고 있다. 폭스콘의 갑작스런 미국 투자 참여 방침도 이같은 시나리오에 힘을 실어주고 있다.

시장 전문가들은 애플·GM·월마트처럼 실물이 있는 제조·유통 기업의 경우 정부의 압박 카드가 많지만 구글·페이스북·마이크로소프트처럼 소프트웨어·서비스 전문 기업들은 실효성 있는 압박 카드가 그리 많지 않다고 지적한다.

컨설팅 회사 피델룸의 크리스 말론은 CNBC와의 인터뷰에서 "트럼프에게 비정규직을 다수 고용한 제조업체나 대형 매장을 갖고 있는 유통업체들은 근로규정 들어 압박하기는 쉽다"면서 "(사업구조가 다른) IT 업체를 대상으로 압박할 카드가 많지 않다"고 분석했다.

손 사장이 스티브 잡스 시절부터 애플과 돈독한 관계를 맺고 있다는 것은 익히 알려진 사실이다. 2008년 일본의 아이폰 독점 공급사가 되면서 2011년 일본 제 3위 통신사로 성장했다.

소프트뱅크는 지난 7월 3조3천억엔(약 36조원)이라는 막대한 자금을 들여 영국 반도체 설계회사 ARM을 인수했다. 애플 아이폰용 프로세서, 삼성전자 엑시노스, 퀄컴 스냅드래곤 등이 모두 ARM의 코어나 아키텍처 라이선스를 기반으로 개발되고 있을 정도로 모바일 시장에서 절대적인 영향력을 갖고 있는 업체다.

공교롭게도 아이폰 매출이 가장 큰 애플과 폭스콘, 그리고 소프트뱅크가 트럼프의 채찍에 '당근'을 주는 연합전선을 구축했다는 점이 눈길을 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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