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韓 야구의 계륵' WBC와 국가대표 '강제 리빌딩'

'이번에는 과연 얼마나 바뀔까' 2017 WBC 대표팀은 선수단 구성부터 주축들의 부상으로 강제 리빌딩을 해야 하는 상황에 직면해 있다. 사진은 2013 WBC 국가대표팀 출정식 및 유니폼 발표회에서 코치진과 선수들이 파이팅을 외치는 모습. 앞줄 오른쪽 세 번째 이승엽이 눈에 띈다.(자료사진=노컷뉴스)
처음 월드베이스볼클래식(WBC)이 열린다는 소식이 들려왔을 때 야구 팬들은 기대에 부풀었다. 야구도 축구 월드컵처럼 전 세계 강국들이 진검승부를 펼치는 꿈의 대결이 펼쳐지나 싶었다. 이전 야구 월드컵이나 올림픽에는 나서지 않았던 메이저리그(MLB) 선수들이 총출동하는 '별들의 전쟁'을 그렸다.

한국 야구도 2006년 초대 WBC에 최정예 멤버를 냈다. 박찬호(샌디에이고 · 이하 당시 소속팀), 김병현(콜로라도), 서재응(LA 다저스), 김선우(신시내티), 최희섭(보스턴) 등 코리안 메이저리거들이 대거 포함됐고, 이승엽(지바 롯데)과 이종범(KIA), 구대성(한화), 이병규(LG), 박진만(삼성) 등 국내외 최고의 선수들이 나섰다.

그 결과 한국은 1회 대회에서 숙적 일본을 연파하고 종주국 미국을 꺾는 이변을 연출했다. 비록 일본과 세 번이나 맞붙는 이상한 대진 탓에 결승행이 무산됐지만 4강이라는 값진 성과를 냈다. 반응도 폭발적이었다. 첫 WBC인 만큼 전 국민적 관심이 쏠렸고, 열화와 같은 성원에 선수들은 병역 혜택이라는 선물까지 안았다.

하지만 2009년 2회 대회부터 WBC는 살짝 미묘한 변화의 움직임이 일었다. WBC가 정작 선수들의 소속 리그 경기력에 영향을 미친다는 지적 속에 주축 선수들이 상당수 빠지는 결과를 낳았다. 미국 등 MLB 스타들이 빠졌고, 한국 역시 박찬호(다저스), 이승엽(요미우리) 등이 불참했다. 추신수(클리블랜드)가 출전했지만 구단이 개인 트레이너까지 보내는 등 대표팀에 다소 지나친 선수 보호를 요청하기도 했다.

2013년 3회 대회는 이런 양상이 더욱 심해졌다. 어쩔 수 없는 부상이 있기도 했지만 각 구단들이 주축 선수들을 보호하려는 움직임이 분명해졌다. 한국은 2회 WBC의 주역 봉중근(LG)과 김광현(SK), 홍상삼(두산), 김진우(KIA) 등이 부상으로 빠졌고, 류현진(다저스)과 추신수(신시내티) 등은 소속팀 적응을 위해 출전을 고사했다. 2회 대회 때는 그래도 국내파들의 분전으로 준우승의 쾌거를 이뤘지만 차포를 뗀 3회 대회는 1라운드 탈락이라는 쓴잔을 마셨다.

▲부상과 경기력 저하, WBC의 블랙홀

한국 야구에서 WBC는 점점 '계륵'이 된 모양새였다. 이는 개최국 미국 등 다른 국가들에게도 마찬가지였다. 애초 WBC는 MLB가 리그의 세계화를 위해 의욕적으로 추진한 대회. 그러나 생각보다 효과는 크지 않았고, 소속 선수들의 부상과 경기력 저하를 겪은 MLB 구단들의 반발은 심해졌다. 종주국의 자존심을 세우려던 의도와 달리 WBC 우승을 일본(1, 2회)과 도미니카공화국(3회)이 차지하면서 미국 내 반응도 기대에 못 미쳤다.

올해 4회 대회를 앞두고도 마찬가지다. 추신수(텍사스)는 부상 전력 탓에, 김현수(볼티모어)도 2년차 징크스 때문에 구단이 WBC 출전에 난색을 드러내는 모양새다. KBO 리그 선수들도 이런저런 부상으로 빠졌다. 김광현에 이어 강민호(롯데)가 빠졌고, 예비 명단에 들었던 김주찬(KIA)도 낙마했다. 김광현의 대체자로 거론된 류제국(LG)도 사실상 합류가 어렵다. 양현종(KIA)도 재활로 출전이 불투명하다는 소식이 들렸지만 그나마 선수 본인이 강하게 출전 의지를 드러냈다.


WBC 대표팀 코칭스태프가 4일 야구회관에서 기술위원회를 열고 선수 선발을 논의하는 모습.(사진=노컷뉴스)
KBO 리그의 모 구단 감독은 "사실 WBC는 시즌 개막을 한 달 정도 앞두고 몸을 만들어야 하기 때문에 선수들의 부담이 크다"면서 "특히 투수들은 전력 투구를 해야 하는 탓에 더 부상 위험이 크다"고 지적했다. 류현진, 김광현, 봉중근, 정현욱(은퇴) 등이 수술과 재활로 한동안 힘겨운 시간을 보내야 했던 이유라는 것이다.

이어 "물론 국가대표라면 나라를 위해 뛰어야 하지만 올림픽이나 아시안게임처럼 병역 혜택이라는 실질적인 보상이 주어지지 않는 상황에서 희생이 더 크게 강요되는 대회의 실효성이 있는가"라고 반문했다. 사실상 WBC의 지속 여부에 대한 회의감을 드러낸 대목이다.

박찬호 역시 1회 대회 이후 "당시 스프링캠프 대신 WBC를 택했는데 다른 선수가 선발 자리를 얻더라"면서 "그래서 WBC 출전을 후회하기도 했다"고 털어놓은 바 있다. 부상이 아니라도 팀내 입지에 영향을 줄 수 있다는 말이다. 그만큼 WBC가 선수들에게 주는 부담감이 큰 것이다.

▲그래도 소홀할 수는 없다…강제 리빌딩도 반갑다

그렇다고 해서 WBC를 허투루 치르기도 어렵다. 1, 2회 대회에서 한국 야구는 기대 이상의 성적을 내면서 국민들의 열띤 반응을 이끌어냈다. 2008년 베이징올림픽 금메달과 함께 야구가 '국민 스포츠'로 거듭난 발판이 됐다는 점을 부인하기 어렵다.

2013년 3회 대회 1라운드 탈락 때는 거센 비난에 직면해야 했다. KBO 리그 흥행에도 적잖은 영향을 미쳤다는 분석이다. 2012년 사상 첫 700만 관중(715만6157명)으로 최다를 찍은 KBO 리그는 2013년 644만여 명으로 관중이 줄었다. 물론 WBC 부진을 관중 감소에 모든 책임을 지울 수 없지만 여파가 있었던 것은 사실이다.

김인식 대표팀 감독이 반대 여론의 부담에도 도박 전력으로 논란이 되고 있는 오승환(세인트루이스)의 발탁을 포기하지 않는 이유다. 최정예 전력으로 나서도 성적을 장담하기 어려운 판에 주축들이 줄부상으로 빠지는 상황에서 오승환은 대표팀에게 지푸라기나 다름없다. 지난해 MLB 활약을 감안하면 튼튼한 동아줄로도 손색이 없다.

'이제 김하성 시대가 왔나?' 대표팀 주전 내야수로 꼽혔던 강정호(피츠버그)의 음주 사고로 대신 WBC에 출전하는 넥센 김하성.(자료사진=넥센)
이런 가운데 대표팀은 이른바 '강제 리빌딩'에 직면해 있다. 강민호를 대신하는 김태군( NC)에 이어 강정호(피츠버그)가 '음주 사고 파문'으로 빠져 김하성(넥센)까지 생애 첫 태극마크를 달게 됐다. 그러면서 내야수 오지환(LG)과 외야수 박건우(두산), 포수 이지영(삼성), 박동원(넥센) 역시 50인 예비 명단에 오르게 됐다.

대표팀의 세대 교체는 그동안 지속적으로 필요성이 제기돼 왔다. 앞서 언급했던 대표팀 주축들은 2006년 WBC 때부터 10년 동안 태극마크 단골손님들이었다. 하나둘씩 탈이 날 수밖에 없었다. 때문에 이들의 뒤를 이어줄 대표급 선수들이 나와야 한다는 의견은 꾸준했다. 물론 의도하지는 않았지만 부상 때문에라도 대표팀의 리빌딩이 반가운 이유다.

WBC 대표팀 최종 명단은 아직 확정되지 않았다. 양현종의 확실한 몸 상태 체크와 오승환에 대한 여론의 반응 등 점검해야 할 부분들이 많다. 계륵이라도 WBC는 태극마크를 달고 나서는 국제대회. "나라가 있고 야구가 있다"는 명언을 남겼던 국민 감독이 오는 2월6일 WBC 최종 명단 발표까지 어떤 결정을 내릴지 지켜볼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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