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교 졸업식서 "대도시 주변 땅사라" 황당 훈화

'급식비리' 파문 사태를 겪었던 서울 충암고등학교를 운영하는 학교법인 충암학원 이홍식 전 이사장(명예이사장)이 이 학교 졸업식 축사에서 '부동산 투기'를 종용하는 강의를 해 물의를 빚고 있다.

경향신문에 따르면 9일 오전 서울 충암초등학교 강당에서 열린 충암고 졸업식에서 이 전 이사장은 졸업을 맞은 학생과 학부모들에게 졸업식과 상관없는 '대도시 주변 부동산 매입'의 중요성을 역설한 것으로 알려졌다.

6분 가량의 녹취파일을 제보한 지역주민 박모(47)씨는 "예비 학부모라 근처에 일을 보러갔다 들렀는데 교육자가 '내가 경험해 봐서 아는데'라며 부동산을 사들이라는 말을 훈화라고 하는데 황당했다"면서 "우리의 현실을 적나라하게 보여주는 듯해서 씁쓸했다"고 말했다.

이 전 이사장은 졸업생들에게 미래 준비 필요성을 설명하며 "지금 물가가 아주 올라가기 때문에 여러분들이 아무리 은행에다 착실하게 저축한다고 해도 시간이 지나가면 불리하다"며 "요즘 부동산 투기라고 해서 많이 욕 먹기도 하지만… 앞으로 값어치가 많이 올라갈 수 있는 대도시 주변의 부동산이라든가 또는 기타 다른 그러한 것에다 여러분들이 꾸준히 해가지고(투자해서) 장래에 대비할 필요가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자 이를 듣고 있던 학부모들이 "지금 졸업식에서 부동산 투기하라는 거야"라며 황당함을 표현하기도 했다.


제보자 박씨는 이 전 이사장의 자리는 정중앙에 '이사장님'이라는 표시가 된 큰 의자였고, 정작 현 이사장은 옆쪽 '이사장'이라고 쓰인 작은 의자에 앉았다고 전했다.

충암고 관계자는 "자세히 듣지는 못했지만 앞으로 사회에 나가게 될 졸업생들에게 현실적인 경제관을 전달하는 내용이 짧게 들어 있었던 것으로 알고 있다"며 "의미가 다르게 전달된 것 같아 당황스럽다"고 말했다.

하지만 이를 접한 네티즌들은 "고등학생 졸업식에서 어울리지 않는 이야기"라는 반응을 보이고 있다.

중학생 자녀를 둔 오지선(47)씨는 "현실적인 경제관이라도 할 말이 있고 하지 않아야 할 말이 있는데 아직 자라나는 아이들에게 부동산 투기라니 그런 사람이 교육자라고 말할 수 있을 지 모르겠다"고 지적했다.

충암학원은 이인관씨가 초대 설립자로 1970년 갑작스럽게 사망하자 부인 정쟁금(78년 사망)씨가 1대 이사장을 지냈고, 아들 이홍식씨가 1971년 충암학원장을 지내다 1973년 2대 이사장에 취임한다. 1999년 학교 공금과 세금횡령, 친척 병역면제 청탁 뇌물 등으로 구속되면서 이사장직에서 물러났다. 이후 아내와 자식들에게 이사장직을 번갈아 맡기기도 했지만 실질적인 권한은 이홍식 전 이사장이 갖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현재 3대 이사장은 딸이 맡고 있다.

충암유치원, 충암초, 충암중, 충암고를 운영하며 야구와 바둑 명문학교로도 유명한 충암학원은 이들 학교 출신 바둑 프로기사들을 일컬어 '충암사단'이라고도 부른다. 하지만 2015년 '급식비 안 냈으면 밥 먹지 말라'는 막말 논란을 시작으로 4억원 대 급식비 횡령, 회계비리, 친인척 특혜채용, 세습 논란 등의 문제가 불거지면서 사학비리의 온상이라는 비판을 받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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