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개 구단 감독과 주장, 대표 선수들은 27일 서울 용산구 블루스퀘어 삼성카드홀에서 열린 '2017 타이어뱅크 KBO 리그 미디어데이 & 팬페스트'에 참석해 오는 31일 개막하는 시즌 출사표를 던졌다. 야구 취재 기자들과 10개 구단 팬들도 참석해 이들의 각오를 경청하고, 문답했다.
어느 해라서 이들이 진심을 전하지 않은 것은 아니었으나 올해는 더욱 그 절절함이 배어났다. 특히 우승에 목마른 팀들일수록 그 간절함은 더했다. 올 시즌 대권 도전을 위해 FA(자유계약선수) 대어를 영입한 LG와 KIA가 대표적이었다.
양상문 LG 감독은 우승후보를 묻는 질문에 일단 "한 팀이 롱런하는 프로 스포츠는 존재해서도 안 되고 발전도 없다"면서 "두산을 제외한 나머지 팀들이 그 어느 해보다 더 새로운 마음을 갖고 열심히 해야 할 것"이라고 포문을 열었다. 지난 2년 동안 한국시리즈(KS) 우승을 거둔 두산을 경계한 발언이었다.
이어 양 감독은 "우승은 하늘이 내려주는 것이라고 하니 한번 기다려보겠다"고 의미심장한 답도 내놨다. 진인사대천명(盡人事待天命:해야 할 최선을 다하고 나서 하늘의 뜻을 기다린다)이라는 한자성어를 떠올린 각오였다. 그만큼 LG가 우승을 바라볼 만큼 겨우내 비지땀을 흘렸다는 뜻이기도 하다.
LG는 지난 1994년 이후 KS 우승이 없다. KS 진출도 2002년 이후로는 감감무소식이었다. 그런 LG는 지난해 세대 교체 속에서도 플레이오프(PO)까지 진출하는 성과를 냈고, 4년 95억 원에 좌완 차우찬을 FA로 영입해 비원을 풀겠다는 각오다. 양 감독의 강렬한 표현은 그만큼 LG가 우승에 목이 마르다는 방증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런 KIA는 시즌 뒤 타율, 타점, 안타 3관왕 최형우를 4년 100억 원에 데려와 그토록 찾던 좌타 거포 공백을 메웠다. 여기에 에이스 양현종도 해외 진출 대신 잔류를 택했다. 2009년 이후 8년 만의 우승을 위해 뭉쳤다. 김 감독은 "하늘의 뜻을 기다린다"는 양 감독의 말을 듣더니 "내가 하고 싶은 말"이라면서 "모든 게 맞아떨어져야 우승을 할 수 있는데 정말 (우승에 대한) 마음이 간절한 팀에 하늘이 좋은 선물을 줄 것"이라고 우승 갈증을 드러냈다.
선수들의 진심도 감독들 못지 않았다. 삼성 프랜차이즈 스타로 발돋움하고 있는 구자욱(24)은 '리틀 이승엽'이라는 별명답게 한국 야구의 전설 이승엽(41) 선배에 대한 진정어린 존경심을 드러냈다.
이날 본 행사에 앞선 자유 인터뷰에서 구자욱은 "이승엽 선배가 은퇴 시즌인 올해 후배들과 함께 꼭 가을야구를 하고 싶다는 말을 하셨다"면서 "팀 누구나 더 열심히 노력해서 선배에게 좋은 추억을 드리도록 꼭 가을야구를 하고 싶다"고 간절한 마음을 드러냈다. 지난 1995년 데뷔한 이승엽은 한국 무대 14시즌, 일본 8시즌을 포함해 23시즌의 프로 생활을 올해 마감한다.
통산 최다 홈런(443개), 한 시즌 최다 홈런(56개) 등 한국 프로야구의 역사인 이승엽을 기리기 위해 KBO는 메이저리그처럼 전설의 은퇴 투어를 계획 중이다. 이승엽이 각 구단 구장에서 마지막 경기 때 은퇴 행사를 진행하는 것.
하지만 그것보다 절실한 것이 이승엽의 마지막 가을야구다. 그를 보며 야구 선수의 꿈을 키운 구자욱은 당연히 우상에게 명예로운 마지막 가을야구를 안겨드리고 싶은 마음일 테다. 주장 김상수도 우승 공약으로 농담처럼 "이승엽 선배를 데리고 번지점프를 하고 싶다"고 말했지만 어쨌든 전설에 대한 존경이 담겼다.
이날 이대호는 특유의 입담을 과시하기도 했다. 자신의 약점을 다 알고 있다는 예전 롯데 시절 은사 양상문 감독의 도발에 대해 "그게 언제 적 얘기인지 모르겠다"면서 "감독님을 모신 지 10년이 지났다"며 날카롭게 반격해 웃음을 자아냈다.
하지만 우승 공약은 진지하고도 진솔했다. 이대호는 "우리가 우승하면 그날은 부산 전체가 눈물바다가 될 것 같다"면서 "공약은 필요없고 그날 야구장을 찾은 팬들과 얼싸안고 밤새 얘기를 나누고 싶다"고 털어놨다. 롯데는 지난 1992년 이후 한번도 우승컵을 들어올리지 못했다. 돌아온 4번 타자의 진심이었다.
아무리 진심이 뜨거워도 통하지 않으면 말짱 도루묵이다. 청와대의 불통이 종식된 시대를 반영이라도 하듯 '소통'은 이날 미디어데이의 또다른 중요한 키워드였다.
특히 유일한 외국인 사령탑인 트레이 힐만 감독의 SK 구단이 보인 소통이 눈에 띄었다. 힐만 감독은 이날 통역을 대동했지만 출사표의 처음과 마지막에 "안녕하세요?" "감사합니다"는 한국어 인삿말을 잊지 않았다. 한국 팬들과 언어의 장벽을 넘어 소통하고자 하는 의지였다.
SK의 애정 행각(?)은 다른 팀들의 자극에서 비롯됐다. 먼저 감독과 주장 사이에 묘한 기류가 형성되면서 SK가 과도한 몸짓을 하기에 이르렀다. 그러나 이 모두가 선수단 사이에 소통이 잘 된다는 의미였다.
먼저 김상수가 신임 김한수 감독에 대해 "너무 편안하게 소통을 한다"면서 "과묵함 속에서 긴장의 끈을 놓지 않게끔 하시지만 너무 편안하게 해준다"고 물꼬를 텄다. 이에 대해 넥센 주장 서건창이 역시 새 지휘봉을 잡은 장정석 감독에 대해 "최근 몇 년 동안 계속 현장에서 (매니저, 운영팀장으로서) 선수들과 가깝게 지냈고 고충을 잘 안다"고 바통을 이어받았다.
여기에 막내 케이티가 기름을 부었다. 주장 박경수는 신임 김진욱 감독에 대해 "캠프 때 감독님에게 아버지 같으면서 친한 형님을 느꼈다"면서 "감독님과 선수가 독대하면서 여유있게 커피 한 잔 할 수 있는 팀이 과연 몇 팀이나 될까"라고 애정을 과시했다. 이어 박정권과 힐만 감독의 '썸타는 쌈' 행각이 나온 것이다.
양상문 감독은 "우승해서 감독님의 뽀뽀를 받고 싶다"는 주장 류제국의 소원을 즉석에서 들어줬다. KIA 김주찬은 "김기태 감독님이 '시즌 때는 선수가 더 위니까 나는 서포트만 해준다'고 했다"며 스승의 배려를 언급했다. 한화 주장 이용규와 이대호도 우승 뒤 각각 김성근, 조원우 감독과 술 한 잔 하고 싶다며 스스럼 없는 소통을 언급했다.
올 시즌은 오는 31일부터 팀당 144경기, 총 720경기의 대장정에 돌입한다. 과연 어느 팀이 진정한 소통을 이뤄내 모두의 진심이 담긴 가을야구와 우승의 꿈을 이룰 수 있을까. 어느 선수단의 진심이 하늘에 이를 것인지 지켜볼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