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런 활약으로 이정후는 지난 15일 대구 라이온즈 파크에서 열린 올스타전에도 나서는 영광을 맛봤다. 18살 10개월 7일로 역대 최연소 올스타 기록도 세웠다. 사실상 신인왕을 예약한 것이나 다름없다.
아버지의 피를 그대로 물려받았다는 칭찬이 쏟아진다. 이정후의 아버지는 21세기를 전후해 KBO 리그를 주름잡았던 '바람의 아들' 이종범(47) 현 MBC 스포츠플러스 해설위원이다. 정규리그는 물론 한국시리즈, 올스타전 MVP까지 받았던 최고 스타다.
그런 이정후에게 아버지는 어떤 의미일까. 프로 입단 전 학창 시절부터 이정후는 '이종범의 아들'로 주목을 받았다. 휘문고 재학 당시 넥센의 1차 지명을 받은 지난해도 이정후는 '이종범의 아들'이라는 후광 속에 화제를 모았다.
심지어 별명조차 아버지와 관련된 '바람의 손자'다. '바람의 아들'의 별명인 이 위원의 아들인 까닭이다. 어쩌면 선수 시절 내내 '이종범의 아들'이라는 인식은 꼬리표처럼 따라다닐 수도 있다.
그러나 이정후는 아버지의 존재에 대한 부담을 이겨내며 꿋꿋하게 자신의 이름 석 자를 팬들에게 알리고 있다. 언젠가는 아버지 못지 않은 멋진 자신만의 별명을 갖겠다는 포부도 갖고 있다. 최근 CBS노컷뉴스는 이정후를 만나 아버지와 관련한 솔직한 속내를 들어봤다.
▲"아버지도 못한 신인왕? 내가 훨씬 부족하죠"
이종범 위원의 현역 시절은 대단했다. 특히 숱한 기록 중 1994년 타율 3할9푼3리는 프로 원년인 1982년 백인천(당시 MBC)의 4할1푼2리 이후 최고다. 1982년 당시 기록이 72경기만 치른 상황이었던 점을 감안하면 124경기를 소화한 이 위원의 타율은 사실상 KBO 역대 최고 타율이나 다름없다.
무엇보다 수비 부담이 큰 유격수를 보면서 거둔 기록이다. 당시 도루는 무려 84개, 역대 최고 기록이다. 그야말로 공수주에서 리그를 주름잡았던 야구 천재였다.
신인 시절인 1993년 한국시리즈(KS) MVP에 오른 이 위원은 1996, 1997년 해태(현 KIA)의 연속 우승을 이끈 뒤 일본 주니치 진출했다가 돌아온 이후 2009년 다시 타이거즈의 정상을 견인했다.
1993년 입단 당시 이 위원은 126경기 타율 2할8푼 16홈런 53타점 85득점을 기록했고, 도루는 73개였다. 다만 상무를 거친 뒤 입단한 양준혁(당시 삼성)에 신인왕을 내줘야 했다. 양준혁은 106경기 타율 3할4푼1리 23홈런 90타점 82득점을 기록했다.
이정후는 그러나 아버지도 못 이룬 신인왕에 거의 다가선 상황이다. 후반기 특별한 부상 등의 변수만 없다면 만장일치 수상도 가능하다.
만약 수상한다면 2007년 임태훈(당시 두산) 이후 10년 만의 순수 신인왕이라 더 값지다. 최근 신인왕은 상무나 경찰 야구단, 2군 등에서 기량을 갈고 닦은 뒤 1군에서 본격적으로 자리를 잡은 이른바 '중고 신인'이 대세였다. 사실 양준혁 역시 엄밀히 따져 순수 신인으로 보기는 살짝 어렵다.
이에 이정후는 "그때는 그 시대에 맞는 사정이 있었을 것"이라면서 "지금 나는 수치는 좋을지 몰라도 디테일한 부분에서는 아버지보다 많이 부족하다"고 손사래를 쳤다. 이어 "나는 고졸이고 아버지는 대졸 신인이어서 힘에서도 뒤진다"고 덧붙였다. 올해 이정후는 2홈런을 기록 중인데 이 위원은 현역 시절 30-30클럽에 가입할 정도로 호리호리한 체구에도 펀치력이 있었다.
▲"한번도 혼낸 적 없어…친구 같은 아버지 항상 고맙죠"
이정후의 야구 인생에 아버지의 존재는 크다. 이정후는 "어릴 때부터 아버지를 보고 자라서 야구를 하고 싶었고 영향을 받았다"면서 "다른 친구들보다 빨리 야구를 접하게 됐다"고 말했다.
하지만 한번도 야구와 관련해 구체적인 조언을 들은 적은 없다. 이정후는 "지금까지 아버지와는 한 마디도 야구 얘기를 안 했고, 조언을 해주지도 않으셨다"고 귀띔했다. 이어 "어릴 때부터 아빠는 '학교 감독, 코치에게 많이 배우라'고 하셨다"면서 "아버지에게 배운 것은 없다"고 덧붙였다.
아들의 경기 중계를 할 때도 마찬가지다. 이정후는 "아버지의 중계를 잘 보고 듣지도 않았지만 가끔 봐도 특별히 자세하게 말씀하시지는 않더라"고 말했다.
하지만 아들에 대한 애정만큼은 뜨겁다. 이정후는 "아버지는 진짜로 한번도 혼을 낸 적 없으셨다"면서 "못 해도 집에 오면 잘 했다 해주시고 본인이 해온 길을 가고 있어 얼마나 힘든지 알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이어 "아버지는 '네 나이에 이 정도만 해줘도 진짜 잘 하는 것'이라고 하시더라"고 전했다.
아들 역시 마찬가지다. 이정후는 자신의 외모에 대해 "어릴 때는 어머니를 닮았다는 소리를 많이 들었는데 커가면서 아버지를 닮아간다고 하더라"며 아버지에 대한 애정을 에둘러 표현했다. 아들을 스스럼 없이 대하는 이 위원에 대해 "약간 친구 같고 항상 아버지가 고맙다"고 했다.
▲"별명 고맙지만 언젠가 나만의 것 갖고 싶다"
어쩌면 아버지의 광대한 그늘이 부담스러울 수도 있다. 이종범의 외조카이자 이정후의 사촌형인 윤대영(23 · 상무)는 지난 14일 퓨처스 올스타전에서 "나도 프로 입단 당시(2013년) 부담됐는데 정후는 아들이니 더 그랬을 것"이라면서 "그런데도 흔들리지 않고 1군에서 자리를 잡은 게 대단하다"고 감탄했다.
본인 역시 언젠가는 아버지의 후광에서 벗어나 '이종범의 아들'이 아닌 '야구 선수 이정후'로 거듭나겠다는 각오다. 별명부터 그렇다. 아직 '바람의 손자' 외에 이렇다 할 별명이 없다.
이정후는 '바람의 손자'라는 별명에 대해 "크게 생각해본 적은 없지만 팬들께서 불러주시는 것이니 감사하게 생각한다"고 말했다. 그러면서도 "그러나 아버지의 영향으로 얻게 된 별명이어서 언젠가는 나만의 별명으로 불리고 싶다"는 바람을 드러냈다.
이어 "이종범 선배께서 아들이 청소년 대표 나간다고 장갑도 가져가더라"는 일화도 들려줬다. 현역 시절 최고의 자리를 놓고 경쟁한 것은 물론 2002년 아시안게임, 2006년 월드베이스볼클래식에서 국가대표 한솥밥을 먹으며 누구보다 이 위원과 절친한 이승엽이다.
아버지를 넘어서는 스타가 되기를 바라는 당부도 잊지 않았다. 이승엽은 "우리나라에서 야구 선수 2세들이 성공한 경우가 많지 않았다"면서 "좋은 본보기가 돼서 야구 선배로서 대견하고 여기서 만족하지 말고 넥센을 넘어 야구 전체에서 아버지보다 더 잘하는 선수가 되길 바란다"고 덕담했다. 이에 이정후도 다음 날 기자회견에서 "대선배님께서 그런 말씀을 해주셔서 영광"이라고 화답했다.
이정후는 또 이날 회견에서 "전반기를 치르니 '아버지가 힘든 길을 걸어가셨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면서 "나 역시 지금보다 더 발전해 한국을 대표하는 선수가 되겠다"고 다짐했다. 과연 이정후가 아버지인 '바람의 아들'을 넘어서는 멋진 별명을 프로야구 역사에 아로새길지 지켜볼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