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지만 당내 차기 권력 다툼이 '변수'로 자리잡는 모양새다. 황교안 대표 사퇴 후 구심점이 사라진 상황에서 당권 및 대권에 대한 복잡한 셈범이 펼쳐지면서 비대위 구성 논의가 좀처럼 진척되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보수정당 역사상 최악의 패배로 지역구 84석 정당으로 전락한 '없는 살림'에 '밥그릇 싸움'만 요란하다는 비판이 나온다. 당 체질 개선과 혁신을 논하기 전에 주도권 싸움에만 골몰하고 있다는 지적이다.
◇위기의 통합당, '김종인 비대위' 군불…권한 관건
비상상황에 놓인 통합당에 비대위 체제 전환은 당연한 수순으로 관측된다. 관심은 비대위원장을 누구로 추대할 것인지에 쏠린다. 당내에선 김종인 전 위원장 등판론이 다시 피어오르고 있다. 당 한 관계자는 "김종인 외에 다른 대안이 있느냐 묻는다면 쉽게 얘기할 수 있는 사람이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번 총선에서 드러난 중도층 공략 실패를 극복하고 당 체질 개선을 위해선 그간 여야를 옮겨다니며 '해결사' 역할을 했던 김 전 위원장이 제격이라는 시각이다. 비록 이번 총선에선 참패했지만, 패배 직접적 원인으로 지목되는 공천 작업을 진행하지 않았고 합류 시기가 늦어졌다는 점에서 책임론을 일부 덜었다는 점도 한몫한다.
황교안 전 대표는 출마한 지역구인 종로에서 패배한 15일, 사퇴를 앞두고 김 전 위원장에게 전화를 걸어 "당 수습을 맡아줬으면 좋겠다"고 한 것으로 전해졌다.
김 전 위원장 측은 '비대위 역할론'을 주시하는 분위기다. 한 측근은 CBS노컷뉴스와의 통화에서 "황 전 대표의 부탁은 인사말일 뿐, 큰 의미가 없다. 비대위는 총선에서 살아남은 자들의 몫"이라면서도 "단순히 당 대표를 새로 뽑기 위한 '관리형 비대위'는 맡을 이유가 없다. 영남당으로 전락한 현재 당을 전부 개선해야 하는 비대위여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통합당은 오는 8월31일 전당대회가 예정돼 있다. 이때까지 당 위기를 수습하기 위한 징검다리 형식의 비대위는 의미가 없다는 뜻으로 풀이된다. '얼굴 마담' 보다는 '대수술'을 할 수 있는 권한이 필요하고, 단순히 당 지도부 재건이 아니라 대권까지 보고 주도권을 끌고 갈 수 있는 비대위가 되어야 한다는 설명이다.
김 전 위원장은 그간 '야당 개조' 의지를 일부 내비치기도 했다. 그는 총선을 하루 앞둔 기자회견에서 "이번 총선에서 기회를 주신다면 이 정당을 유능한 야당으로 개조하는 일도 거침없이 임하겠다"라고 강조했다. 또 총선 다음날 기자회견에서는 "통합당의 변화가 모자랐다는 것은 인정한다. 자세도 갖추지 못한 정당을 지지해달라고 요청한 것을 매우 송구스럽게 생각한다"며 변화 필요성을 언급했다.
김 전 위원장은 이번 주말 사이 비대위와 관련한 사안을 숙의할 것으로 전해졌다.
◇총선 참패, 없는 살림에 요란한 '밥그릇 싸움'
이에 이번 총선에서 살아남아 중량감이 커진 인사들의 논의에 귀추가 주목되고 있다. 당내 최다선(5선)인 조경태 최고위원(부산 사하구을), 정진석(충남 공주·부여·청양), 주호영(대구 수성갑), 서병수(부산진구갑) 의원 등이 대표적이다.
이중 정진석 의원은 "위기 극복을 위해선 김종인 위원장 뿐"이라는 입장이지만, 조경태 최고위원은 "빨리 전당대회를 치러 위기를 극복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조기 전당대회'는 비대위보다 새 당대표 선출에 무게를 두는 것으로 '김종인 등판'과는 거리가 있다는 해석이 나온다.
이렇듯 당내에선 향후 지도 제체를 두고 힘 겨루기가 펼쳐질 양상이 엿보이고 있다. 황 대표 사퇴와 최고위원 중 조경태 의원만 총선에서 살아남아 지도부가 패닉에 빠졌지만, 여전히 지도부를 구성하는 세력과 아닌 세력 간 주도권 다툼이 벌어진다는 얘기다.
지도부인 심재철 원내대표는 이날 비공개 최고위원회의 후 기자들과 만나 "당 사무처에 확인해보니 원내대표가 당대표 권한대행을 하게 돼 있어 (권한대행을) 하게 됐다"며 "최대한 빨리 당을 안정되도록 하겠다"라고 말했다.
이에 당 공천 배제로 무소속으로 출마해 생환한 홍준표 전 대표(대구 수성을)는 이날 자신의 SNS을 통해 "국민의 심판을 받은 당 지도부가 비대위를 구성하고 총사퇴 해야지 권한대행 운운하면서 당의 운명을 좌지우지 하려고 하는 것은 어처구니 없는 정치 코메디"라고 맹비난했다. 홍 전 대표는 비대위원장 대안이 없다며 '김종인 등판론'에 힘을 싣는 상태다.
이같은 기싸움은 사실상 '무주공산'이 된 차기 권력을 장악하기 위한 각자의 포석이 깔려 있는 행보로 풀이된다. 당권 및 대권을 두고 어떤 것이 유리한 고지인지 복잡한 계산이 흐르는 모양새다.
이날 열린 비공개 최고위에서는 '김종인 비대위'에 대한 일부 공감대가 형성되긴 했지만 비대위의 구체적 성격은 결론을 못낸 상황이다. 심재철 권행대항은 이날 오후 김 전 위원장을 직접 찾아가 비대위원장직을 제안했으나, 김 전 위원장 측은 성격이 불분명하다며 사양한 것으로 전해졌다.
당 일각에서는 총선 참패 후 '없는 살림'에 '밥그릇 싸움'이 요란하다는 '자성론'도 제기된다. 당 체질 개선과 처절한 패배 복기, 비대위의 성격 논의 등이 우선적으로 이뤄져야 하지만 뒷전에 밀리고 있다는 목소리다.
서울 용산에서 생환한 권영세 전 주중대사는 이날 SNS을 통해 "선거에서 처참하게 참패한 당이 고작 한다는게 감투싸움인 것으로 비쳐질까 두렵다"라고 우려했다. 3선에 성공한 장제원 의원(부산 사상) 역시 "이제, 우리는 장례식장으로 갈 것인가. 아니면, 새로운 생명을 탄생시키는 분만실로 갈 것인가. 운명의 시험대로 향하고 있다"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