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종현에 '욱' 했던 이승현, 경기 내내 이종현 배려했다

고양 오리온 이승현(사진 왼쪽)과 이종현이 14일 잠실에서 열린 서울 삼성전에서 승리한 뒤 기뻐하고 있다 (사진=KBL 제공)

14일 오후 서울 잠실실내체육관에서 열린 2020-2021 현대모비스 프로농구 서울 삼성과의 경기에서 4쿼터 막판 82대83으로 뒤진 고양 오리온의 빅맨 이승현이 자유투 라인 부근에서 공을 잡았다.

이승현은 4쿼터 중반 이후 하이포스트 컷을 통해 몇 차례 중거리슛을 터뜨렸다. 이승현이 같은 지점에서 공을 잡자 삼성 수비가 빠르게 반응했다. 순간 골밑에 패스할 공간이 열렸다.

이승현은 슛을 하는 척 하다가 골밑으로 공을 건넸다. 이종현에게 완벽한 오픈 기회가 주어졌다. 그런데 이종현의 마음이 급했다. 공을 잡자마자 슛을 시도하려고 하다가 그만 놓치고 말았다. 오리온은 실책으로 공격권을 날렸다.

이승현은 그 장면에 대해 "한대 때리고 싶었다"고 농담을 건넸다.

이승현은 "내 시야는 결코 좋은 편이 아니다. 한 시즌에 한번 나올까 말까 한 패스였다. (이)종현이에게 한번은 패스를 할테니 계속 보고 있으라고 했고 중요한 승부처에서 줬는데 그걸 놓쳤다"며 웃었다.

이종현은 "너무 안이하게 생각했다. 쉽게 득점을 할 생각에 손에서 미끄러졌다. 정말 큰일났다 싶었다"며 웃었다.

하지만 이종현의 실수는 오히려 약이 됐다.

다음 공격에서 가드 한호빈이 골밑으로 파고들어 이종현에게 날카로운 패스를 건넸다. 이종현은 이승현의 패스를 놓쳤던 바로 그 위치에 서있었다.

이종현은 실수를 반복하지 않았다. 침착하게 골밑슛을 터뜨렸다. 종료 15.5초를 남기고 스코어는 84대83으로 뒤집어졌다.

이후 이승현은 자유투 기회를 얻었다. 점수차를 3점으로 벌릴 수 있는 자유투 2개를 모두 넣었다. 이승현은 기쁨에 벅차 세리머니를 펼쳐 보였다.

이승현은 "종현이가 우리 팀에 와서 치른 첫 경기였고 처음 호흡을 맞춘 날이라 오늘 경기만큼은 너무 이기고 싶었다"고 말했다.

삼성의 마지막 슛이 빗나가면서 오리온은 86대83으로 이겼다. 이종현의 팀 데뷔전을 승리로 장식한 것이다.


'고양의 수호신' 이승현은 초반 야투 부진을 만회하며 20득점으로 활약했고 수호신의 보좌관이 되겠다고 다짐한 이종현은 25분동안 15득점 4리바운드를 기록했다. 그동안 부상으로 자신의 기량을 보여줄 기회가 많지 않았지만 이날 부활의 가능성을 알렸다.

이승현은 자신의 패스를 득점으로 연결시키지 못한 이종현을 장난기 가득한 목소리로 구박했지만 부상을 이겨내고 오랜만에 코트를 누빈 후배에게 한없는 애정을 드러냈다.

이승현은 "종현이는 아직 100%가 아니다. 오늘 보여준 게 절대 전부가 아니라는 사실을 내가 누구보다 잘 안다. 앞으로 더 기대해주면 좋겠다"고 말했다.

실제로 이승현은 이날 이종현의 복귀전을 위해 누구보다 많은 노력을 했다.

강을준 감독은 이승현과 이종현 그리고 외국인선수를 함께 투입하는 빅 라인업을 오랜 시간 가동했다.

이종현의 기를 살리기 위한 라인업이었지만 약점도 많았다. 3-2 형태의 지역방어를 동반할 수밖에 없었는데 발이 느린 선수들이 동시에 뛰다보니 외곽 수비에 어려움을 겪었다. 또 빅맨들이 많아 스페이싱(공간 창출) 역시 원활하지 않았다.

하지만 이승현은 투덜대지 않았다. 자신의 위치 선정을 끊임없이 고민하며 아직 실전 감각이 부족한 이종현을 배려했다.

이승현은 "초반에 힘들었다. 자리를 어떻게 잡아야 할지 고민하다 허무하게 체력만 소모했다. 그 때문에 슛 밸런스가 망가졌다"며 전반까지 스페이싱 때문에 걱정이 많았다고 밝혔다.

이승현은 경기 도중 김병철 코치의 조언을 받았다. 이승현의 농구 스타일을 잘 아는 김병철 코치는 "외곽에 서있다가 하이포스트로 올라와서 플레이하는 방식이 좋을 것 같다"고 동선을 알려줬다.

이승현은 "기가 막히게 잘 됐다. 빅 라인업에서는 공간이 좁은데 내가 외곽 코너에 서있는 것보다는 하이포스트로 올라오는 게 더 나았다. 또 로슨 선수가 3점슛이 되는 선수라 스페이싱에 큰 도움이 됐다"고 말했다.

이처럼 이승현이 자신의 위치 선정을 고민하고 해법을 찾고 있을 때 이종현은 평소처럼 농구를 했다. 이승현을 필두로 팀 전체가 새로운 출발을 시도하는 이종현이 편하게 할 수 있도록 배려한 것이다.

이종현은 "팀에 빨리 녹아들어야 할 것 같다. 수호신이 있으니까 든든했다"며 고마운 마음을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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