軍 성범죄 '부실 수사·회유·은폐' 늪에서 못 벗어나는 이유

구속영장 청구는 부대 지휘관 승인 필요…제식구 감싸기 유혹
수사 맡는 군 법무관도 계급과 인사권 영향받는 '군인'
국방부가 3년 전 발표한 군 사법개혁안은 일부만 실현

성추행 피해 신고 뒤 극단적 선택을 한 공군 여성 부사관 A중사가 안치된 경기도 성남의 국군수도병원 장례식장 영안실. 이한형 기자
여성 부사관을 극단적 선택으로 몰아간 성추행 사건을 공군이 처음부터 엉터리로 수사했던 것으로 드러나면서 군 수사제도의 한계에 대한 비판이 커지고 있다.

부대 지휘관이 수사에 개입할 여지가 많고 수사를 맡는 법무관들이 군인 신분이어서 구조적으로도 눈치를 볼 수밖에 없다는 이유에서다.

◇ 부대 고위간부 구속하는데 영장 승인은 지휘관에게 받아라?

보통 수사기관은 불구속을 원칙으로 수사를 진행하며, 구속영장은 수사를 마무리하는 단계에서 혐의를 입증할 증거가 충분히 모였을 때 청구한다. 피의자를 구속할 수 있는 기간에 제한이 있어서다.

이른바 '좁은 사회'가 되기 쉬운 군에서는 얘기가 조금 다르다. 피의자나 참고인 등이 말을 맞추거나 조직적으로 증거를 인멸할 가능성이 매우 높아서다. 피해자에 대한 위해, 또는 피의자의 극단적 선택 우려 등까지 감안해 구속수사하는 경우도 쉽게 찾아볼 수 있다.


하지만 수사의 대상이 부대 고위 간부이거나, 수사가 진행될 경우 부대장의 지휘관리 책임 등이 드러날 우려가 있는 사건은 그러기도 쉽지 않다. 군사경찰과 군 검사, 판사도 모두 해당 부대 소속이며 따라서 부대 지휘관의 영향력 하에 있기 때문이다.

실제로 군사법원법 238조 3항에 따르면 군 검사는 피의자에 대한 구속영장을 청구할 때 해당 군 검찰부가 설치돼 있는 부대장의 승인을 받아야 한다.

계급에 따라 위임전결로 처리돼 일일이 지휘관의 승인을 받지는 않아도 되는 경우가 있지만, 원칙적으로는 그럴 권한을 쥐고 있는 셈이다. 만약 피의자의 계급이 높다면 실제로도 승인받아야 한다.

A중사의 성추행 사건 당시 그는 선배인 노모 상사의 지인이 가게를 여는 회식자리에 불려나갔다. 당시 코로나19로 회식은 할 수 없었고 인원은 5명이었다. 방역 수칙 위반이다. 사건의 전모가 드러나면 부대원들이 감염병예방법 위반 혐의로 처벌받거나 군 당국의 감찰조사 등에 적발될 수 있었던 셈이다.

유족 측을 대리하는 김정환 변호사는 3일 오전 CBS 라디오 <김현정의 뉴스쇼>에서 "(방역 수칙을 위반한 것이 들통날까봐 회유가 들어간 게 아닌가 하는 의심이) 합리적이라고 생각이 든다"며 "'이 사건으로 인해 신고가 이뤄지면 회식 때문에 여러 사람이 다칠 수 있다'는 내용의 회유가 있었던 것으로 알고 있다"고 말했다.

사건 3일 뒤인 3월 5일 A중사는 20전투비행단 군사경찰의 피해자 조사에서 피해 사실을 비교적 구체적으로 진술했다. 이어 3월 17일 피의자 장모 중사도 처음 조사를 받았는데, 그는 혐의 일부만 시인한 채 구체적인 내용은 '기억이 나지 않는다'며 부인했다.

하지만 A중사가 직접 확보해 군사경찰에 넘긴 차량의 블랙박스 파일에는 그의 음성까지 포함돼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그런데도 군사경찰은 "도주와 증거인멸의 우려가 없다"며 장 중사에게 구속영장도 청구하지 않고 휴대전화조차 압수하지 않은 채 4월 7일 그를 기소 의견으로 군 검찰에 송치했다.

군 검찰 또한 A중사가 이미 숨진 뒤인 5월 31일 피의자 조사를 진행하기 전까지 구속영장은 물론 휴대전화도 확보하지 않았다.

지난 5월 22일 숨진 채 발견된 공군 여성 부사관 A중사를 성추행한 혐의를 받고 있는 장모 중사가 2일 저녁 구속 전 피의자 심문을 받기 위해 국방부 보통군사법원으로 압송되고 있다. 국방부 제공
◇ 군 법무관도 군인…지휘관과 각군 본부의 인사권 영향 배제 힘들어

이같은 사건의 전모가 드러나면 대대장이나 20전투비행단장(이성복 준장)에게도 영향이 있을 수 있는 상황이었다.

인사권을 쥔 비행단장을 의식할 수밖에 없는 부대 법무실이나 군사경찰이 엄정한 수사를 진행하기는 처음부터 어려웠던 셈이다.

군 법무관들도 군인이며, 때문에 일반 장교들만큼은 아니더라도 진급 등에 영향을 받는다. 문제는 이 때문에 법무관들이 인사와 군수 등 군대를 '운영'하는 군정권을 보유한 각군 본부의 눈치를 볼 수밖에 없다는 점이다. 이는 군사경찰도 마찬가지다.

참모총장과 함께 그를 보좌하는 각 참모부의 부장들은 육해공군의 주요 전투부대에서 한평생을 보낸 지휘관들이 임명되는 자리다.

여기에 더해 공군은 각 비행단별로 운용하는 기종이 다르다. F-4, F-5, KF-16, F-15K, F-35A 등 전투기들의 성능과 작전적 필요성 등에 따라 부대를 구성해 각 전투비행단을 배치한다.

장교는 주기적으로 전출입을 반복하지만, 전투기 조종사는 한 기종을 계속해 조종하는 경우가 많다. 자연스레 같은 기종 조종사들끼리는 같은 부대에서 만날 확률이 높다.

이런 상황에서는 수사 대상을 확실히 기소해 처벌받게 하지 못한다면, 미래에는 그 피의자가 지휘관이 돼 오히려 법무관이나 군사경찰의 인사권을 쥐는 일이 쉽게 벌어질 수 있다. 군 지휘부와 연줄이 있는 인원을 수사했다가 '찍히는' 일도 생기곤 한다.

국방부는 2018년 2월 12일 발표한 군 사법개혁안을 국방개혁 2.0에 반영해 추진하고 있다. 여기에는 사단급 이상 부대에 설치된 보통검찰부를 폐지하고 참모총장 직속의 검찰단을 창설하는 내용이 포함됐다.

군사경찰 또한 수사와 작전(부대 방호 등) 기능을 분리해 각군 참모총장 직속의 수사조직을 설치, 지휘관이 수사에 영향을 끼치게 하지 못한다는 내용이 포함됐다.

하지만 아직까지 관련 법 개정안 등이 국회에서 잠자고 있어 실현되지는 않았다. 이러한 개혁안 자체도 실효성 측면에서 비판을 받기도 한다.

참모총장이 되는 사람들은 결국 주요 전투부대에서 임무를 수행하는 지휘관들이다. 때문에 아무리 참모총장이 직접 감독한다고 해도 군 수사기관이 본질적으로 다른 장교들의 영향력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는 논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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