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근로시간 감소에 월급 줄고 편법은 늘어"…노동자들 '한숨'

[주52시간 3주년③] 근로시간 줄어들자 '임금감소' 문제 수면 위로
대기업 근로자보다는 중소, 영세기업 근로자 감소 폭↑
정부 정책적 지원 필수…"일자리 함께하기 지원금 제도"
IT업계 중심으로 '편법' 그림자 노동 '심각'
"정부 정책적 불이익 이외에도 인식개선 필수"

오는 7월 1일부터 5인 이상 50인 미만 사업장에도 주 52시간 근무제가 적용된다. 지난 2018년 7월 300인 이상 사업장을 시작으로 3년 만에 근로기준법의 적용을 받는 모든 노동자들이 한 주에 52시간을 넘겨 일할 수 없게 됐다. 문재인 대통령은 후보 시절 '과로 사회'를 끝내겠다며 법정 최대 근로시간을 주당 68시간에서 52시간으로 단축하는 공약을 내세웠다. 노동시간 단축을 통해 일자리를 나누면 고용률과 국민들의 삶의 질을 획기적으로 높일 수 있다는 셈법이었다. 재계는 "경제가 망할 수 있다"며 속도조절론을 주장했다. 노동자들은 일하는 시간이 줄어들어도 월급은 깎이지 않는다는 말을 반신반의하면서도 환영했다. 그리고 3년, 많은 말들이 '거짓말'로 드러났다. [편집자 주]

글 싣는 순서
①근로시간 줄이면 일자리가 생긴다?
②"근로시간 줄이면 경제 망해"…경제계 오랜 '우려' 진실은
③"근로시간 감소에 월급 줄고 편법은 늘어"…노동자들 '한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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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합뉴스
장시간 근로 관행을 개선하고 일과 삶의 균형을 되찾는 것. '주52시간 근무제'의 정책적 목표다. 1.5배의 수당이 적용되는 추가 근로 시간이 제한되는 만큼, 자연히 임금감소 문제가 뒤따랐다. 시간당 실질임금이 오르는 것이 가장 이상적이지만 기업 규모가 영세할수록 그 여파를 감당하기 어려운 것이 현실이다.

한편, 주52시간 근무제가 시행된 일부 대기업 업종에서도 '그림자 노동' 같은 꼼수가 나타났다. 정부는 주52시간제의 부작용을 최소화하기 위해 사업장 규모별로 순차적용하기로 했다. 300인 이상 사업장은 2018년 7월, 50~299인 사업장은 지난해 1월, 5~49인 사업장은 오는 7월부터 시행하도록 했다. 2018년 3월 법개정이 이뤄진 점을 생각하면 3년이 넘는 시간이 주어졌지만 현장 정착은 난관이 많다.

◇"일과 삶의 균형이란 정책 목표, 결국 '임금 감소' 막아야 가능"

근로시간이 줄어들 때마다 제기되는 가장 큰 이슈는 임금감소다. 2004년 7월부터 주 5일제 시행으로 법정근로시간이 줄어들 당시에도 그랬다. 결국 개정 근로기준법 부칙에는 '법 시행으로 기존의 임금수준과 시간당 통상임금이 저하되지 않도록 한다'는 내용이 담겼다.

하지만 주52시간제 관련해서는 '임금보전'과 관련된 부칙이 없다. 주52시간제는 휴일근로를 포함해 1주 최대 연장근로를 12시간으로 제한한다는 내용이 골자다. 감소할 소득이 '단축한 시간에 따른 초과근로수당'인 만큼 사업자의 임금보전의무를 규정하기는 어렵다.

주52시간제가 이제 시행 3년에 접어들었지만 사업장 규모별로 단계적으로 적용된 터라 관련 연구가 많이 축적되지는 않았다. 몇몇 통계에서 임금감소 현상이 단편적으로 드러났을 뿐이다.

스마트이미지 제공
2019년 한국노동연구원 노동리뷰 4월호에 실린 보고서에 따르면 2018년 7월부터 주52시간제를 시행 중인 300인 이상 사업의 초과근로시간은 월 2.5시간 줄어들었다. 이에 따라 추정되는 초과급여 감소분은 4만 3820원이라고 한다. 당시 보고서는 "조사 대상 기간에는 (주 52시간제 위반에 대한) 처벌이 유예돼 노동시간 및 임금 감소 효과가 다소 약하게 나타났을 수 있다"고 설명했다.

대기업보다는 기본급이 낮아 잔업, 특근 등 연장근로 '수당'으로 소득을 보전해왔던 중소·영세기업 근로자의 임금감소가 더 클 것으로 보인다.

국회 예산정책처는 이미 주52시간 도입 전인 2018년 2월 분석한 자료로 이를 예상한 바 있다. 이 자료에 따르면 주52시간제 시행으로 대기업 근로자(300인 이상)의 임금은 7.9%, 중소기업(30~299인) 근로자의 임금은 12.3% 줄어드는 것으로 나타났다. 5~29인 사업장에 근무하는 근로자의 경우 12.6%의 임금감소가 예상됐다.

실제로 정부가 오는 7월부터 고용상황이 불안정한 5~49인 사업장까지 주52시간제를 확대하기로 하자 임금감소 우려는 더 커진 상태다. 해당 사업장에 근로하는 노동자들은 임금에서 기본급의 비중이 작은 데다 사업주가 자체적으로 감소한 임금을 보전해줄 만한 여력이 없다.

8인 규모의 식품포장기계 제작업체 공장장 정모(49)씨는 "근로자들은 잔업 많이 해서 월급을 많이 받는 걸 원한다. 하지만 시간을 정해놓고 못 하게 하니 임금이 10%는 준다고 한다"며 "그렇다고 고용주가 보전해주는 것도 아니다 보니 걱정이 클 것"이라고 말했다.

문래동에 모여있는 소규모 철강업체들. 백담 수습기자
특히 금형·표면처리·용접 등의 일을 하는 '뿌리산업'은 추가 근로시간 감축에 따른 임금 감소 문제를 심각하게 바라보고 있다. 해당 분야에서 일하는 생산직 노동자들은 근무 시간에 따라 일급이나 주급으로 급여를 받는 경우가 많다.

30인 규모의 용접기자재 회사를 운영하는 최모(63)씨는 "사람을 구하면 돈을 주겠다는데, 한국 사람 구하기도 힘들고 외국인 구하기는 더 힘들다"며 "결국 일하는 시간을 더 투자하는 것밖에 없는데 정부는 하지 말라고 하니 대책이 없다"고 지적했다.


이어 "오래 일하고 기술 있는 사람 중에 주52시간제를 실시하면 급여가 20% 가까이 떨어지는 사람도 있다"며 "(기술자 중) 애들이 아직 학교에 다니는 사람들도 많은데, 잔업을 안 하면 투잡을 뛰어야 할 판이다. 5인 이하 사업장으로 가보겠다는 사람도 나온다"고 토로했다.

25인 규모의 알루미늄 아노다이징 업체를 운영하는 김모(59)씨는 "최대한 잔업을 많이 하고 일을 많이 해서 박리다매 방식으로 수익을 내고 있다"며 "주52시간제를 실시하면 근로자들의 수당도 30%는 줄 수밖에 없다"고 토로했다.

이어 "우리 같은 3D 업체는 (노령화돼서) 근로자들이 다 50세가 넘는다. 아무나 뽑아서 기술을 다시 가르칠 수도 없지 않냐"며 "일단 내년 말까지 (주52시간제 상관없이) 현 상태를 유지하기로 합의했다. 근로자 중에서도 사인을 안 한 사람이 한 명도 없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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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업계나 건설업계도 마찬가지다. 조선업체 현장 기술직 노동자들의 경우 근로시간이 단축되면서 야근과 특근수당이 줄었고, 월급의 30%가 감소하는 타격을 입었다고 한다. 실제로 업계 평균임금이 10년 전으로 돌아갔다는 볼멘 목소리도 나온다.

현대중공업 노조 김형균 정책실장은 "주52시간제가 적용되지 않았던 하청노동자들에게 타격이 더욱 클 것"이라며 "잔업이나 특근 수당을 빼고 나면, 임금이 최저임금 수준을 겨우 맞추거나 부족할 가능성이 상당히 크다"고 말했다.

만일 부족한 임금을 보전하기 위해 근로자들이 이직이나, 다른 일을 병행하게 될 경우 결국 근로자의 총 근로시간은 줄어들지 않는다. 이는 주52시간제의 정책적 목표와 어긋난다는 점에서 결코 바람직하지 않다.

서울사이버대학교 법무행정학과 오세웅 겸임교수는 "6개월 유예기간을 준다고 해도, 임금 감소문제나 추가인력 채용 등의 문제를 영세사업장이 자체적으로 해결하기는 어려울 것"이라며 "국가가 지원제도를 만들고 시간을 주면서 나름대로 해결해 나갈 수 있게 해주는 방법이 최선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이와 관련, 노동부는 현재 주52시간 조기단축 기업에 단축 근로자 1인당 120만원(50명 한도)을 지원하는 '노동시간 단축 정착지원금'이나 '일자리함께하기 지원금 제도'를 운영하고 있다고 밝혔다.

일자리함께하기 지원금 제도는 주52시간을 준수하는 기업이 신규 채용 시 증가한 근로자 1인당 1~2년간 인건비 월 40~80만원을 지원하는 동시에 재직자 임금보전비용으로 월 최대 40만원을 지원하는 제도를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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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52시간제의 暗, '그림자 노동'…"조직문화 개선 같이 가야"

반면, 주52시간제가 '제대로 정착될 수 있는가'는 또 다른 차원의 문제다. 현재 주52시간제가 먼저 도입됐던 곳들에서 '그림자 노동' 등의 문제가 나타나고 있기 때문이다.

직장인 익명 커뮤니티 블라인드에는 "PC가 꺼져도 개인 노트북으로 사무실 자리에서 근무한다"거나 "휴게시간을 부당하게 늘려서 입력한다"는 불만 글이 종종 올라온다.

편법 운영이 가장 두드러지는 곳 중 하나는 IT업계다. 카카오는 최근 고용노동부 근로감독에서 근로기준법을 위반해 시정조치를 받았다. 이번 조사에서는 임산부 직원에게 시간 외 근무를 지시하거나 일부 직원에게서 52시간 이상 근무, 연장근무 시간 미기록 등 근로기준법 또는 최저임금 6개 항목에서 위반 사항이 확인됐다.

네이버 노조 '공동성명' 사무실. 임민정 수습기자
네이버 노동조합 '공동성명'은 지난 6일 보도자료를 내고 노조가 비즈·포레스트·튠 등 3개 사내독립기업(CIC) 소속 조합원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응답자의 10%가 '주 52시간을 초과해 일한 경험이 있다'고 답했다고 밝혔다. 사내 근태 관리 시스템에 근무 시간을 실제보다 적게 입력하거나, 휴게 시간을 늘려 입력하는 방식 등이 사용됐다고 한다. 법정 근로 시간이 다 차서 자동으로 생성된 임시 휴무일에 업무를 하는 경우도 있었다.

네이버 노조 관계자는 "시스템에 초과 근로시간을 입력해놓지 않았다가 다음 달에 쪼개서 입력하는 경우, 결재 자체를 못 올려서 인정을 아예 못 받는 경우 다양하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IT업계의 특징이 '조직장'의 권한이 매우 강하다는 것"이라며 "한 사람의 연봉인상률이나 인센티브, 스톡옵션, 업무 내용 등을 모두 다 통제하고 있다 보니 주52시간제가 넘었다고 항의하기는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고 덧붙였다.

중소 IT업계의 상황은 더욱 열악하다. IT노조 관계자는 "IT업계라는 게 재료비가 안 들어가고 사람이 다 개발을 한다"라며 "적은 인원으로 빠르게 완료할수록 수익이 난다. 주65시간 많게는 주70시간을 근무하는 개발자들도 많다"라고 했다.

결국 주52시간제의 성공적인 안착을 위해서는 정부 차원의 정책지원과 더불어 근로문화 개선이 함께 따라가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네이버 노조 관계자는 "근무시간이나 노동인권을 배제하고 성과에만 집중하는 문화와 경영진들의 인식이 개선돼야 한다"며 "기본적으로 업무 계획하고 진행할 때 주 40시간을 기준으로 산정하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고 주장했다.

한국노동연구원 김승택 부원장은 "근로문화가 바뀌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회사와 근로자 서로가 장시간 근로에 익숙해진 모습을 보인다"며 "이를 깨기 위한 사회적 캠페인이 필요하다. 몇 시간을 일했을 때 가장 사람들이 열심히 일하고 생산성이 높아지는지 기업들이 파악하고 노력할 필요도 있다"고 제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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