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딥뉴스]너도나도 공수처서 수사 받겠다는데…공수처도 '답답'

서욱 국방부 장관이 지난달 10일 국회에서 열린 법제사법위원회의 공군 부사관 성추행 사건 관련 긴급현안질의에 출석해 인사하는 모습. 윤창원 기자
전국민의 울분을 산 공군 부사관 사망사건 부실수사의 최종 책임자로 지목된 공군본부 전익수 법무실장에 대한 국방부 검찰단 수사가 지연되고 있습니다. 군대 내 만연한 성추행과 부실수사를 시급히 도려내야 한다는 국민적 공감은 이뤘지만 이와는 반대로 수사는 제자리 걸음을 하고 있는 모양새인데요. 그 이유 중 하나로 거론되는게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공수처)법'입니다. 기존 수사기관의 고위공직자들에 대한 수사가 '제 식구 감싸기' 또는 '윗선의 뭉개기'로 제대로 이뤄지지 않았다는 경험을 타산지석(他山之石)삼아 만들어진 공수처인데 참으로 아이러니합니다.

전 실장 뿐 아니라 이성윤 서울고검장과 이규원 검사도 이와 비슷하게 검찰의 수사를 받으며 공수처의 수사를 주장한 바 있어 기시감마저 들 정도지요. 비단 이성윤 고검장과 이 검사, 전 실장만 공수처의 수사를 주장할까요? 공수처법을 '방패' 삼아 수사 지연을 할 사람이 이 셋 뿐이 아니라는게 더 큰 문제입니다.

군검찰의 '법무실장 부실수사 의혹'은 현재?


공군 A중사가 극단적 선택을 할 수 밖에 없었던 건 성추행 뿐 아니라 그 이후 신고 직후부터 이뤄진 조직적이고 당연하게 이뤄진 부실수사 탓도 큽니다. A중사는 성추행을 당한 직후 상관에게 보고했지만 합의를 종용받았고, 20전투비행단 군사경찰은 피의자 장모 중사를 불구속 상태로 수사하며 휴대전화조차 압수하지 않았습니다.

사건을 넘겨받은 같은 부대 검찰은 피의자 장모 중사의 조사조차 4월 7일 사건을 송치받고 한 달이 넘게 지난 5월 31일에야 처음 했습니다. 사건 발생 거의 세 달이 지난 시점이었습니다. 심지어 A중사가 5월 22일(토요일) 숨진 채 발견되자 그 다음주에 장 중사의 휴대전화에 대해 압수수색영장을 발부받았지만, 집행하지 않고 있다가 31일 조사에서 이를 임의제출받았습니다.

공군본부 법무실은 공군 모든 검찰의 수사와 기소 등을 총괄하는 부서입니다. 전익수 공군본부 법무실장은 이 법무실의 '최고 책임자'이고요. 자연히 A중사가 성추행 피해 사실을 신고했을 당시 초동수사 부실 의혹이 제기된 공군 검찰의 '가장 윗선'이기도 합니다.

A중사의 사망사건이 언론에 대대적으로 보도가 난 뒤인 6월 초에야 국방부 검찰단이 재수사에 나서 직접 가해자에 대한 수사는 마쳤지만, △공보정훈실 △법무실 차원의 두 부분의 조사가 제대로 이뤄지지 않은 상황입니다. 국방부 검찰단이 지난달 16일 공군본부 법무실 관계자들의 사무실 등에 대한 압수수색에 나서 전 실장의 휴대전화 등을 압수했지만 아직 내용물을 분석하지 못했습니다. 소환 조사도 단 한 차례도 하지 못한 것으로 확인됐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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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처럼 수사가 지연되고 있는 건 전 실장이 공수처로 자신의 사건을 이첩해달라고 요청한 것과 관련이 있습니다. 전 실장은 압수수색 다음 날인 지난달 17일 공수처법상 고위공직자로서 공수처 수사 대상에 해당하므로 공수처로 이관해달라고 국방부 검찰단에 요청했습니다. 실제 검찰단은 이튿날 공수처에 사건을 통보했고요. 전 실장 외에도 공군본부 고등검찰부장(중령)과 보통검찰부장(소령)도 고위공무원이 아니라 공수처 수사 대상이 아닌데도 관련 사건이라며 이첩해달라고 요청해 공수처가 피난처냐는 비난이 높아지는 상황입니다.

전 실장은 일부러 국방부 검찰단의 수사를 거부하는 게 아니라 공수처법을 지킬 수밖에 없기 때문에 수사를 받을 수 없다는 입장입니다. 전 실장은 CBS노컷뉴스와의 통화에서 "포렌식을 받지 않는 것이 아니다. 나도 빨리 받고 싶다. 하지만 공수처로 통보를 했지 않느냐"면서 "공수처에서 이에 대한 결정을 해서 통보가 될 때까지 기다리는 게 맞다. 참관도 조사도 공수처에서 결정이 오면 언제든 일정을 잡아 빨리 가겠다"고 말했습니다.

공수처법 24조 2항(다른 수사기관과의 관계)에 따르면 다른 수사기관이 범죄를 수사하는 과정에서 고위공직자범죄 등을 인지한 경우 그 사실을 즉시 수사처에 통보해야 합니다. 전 실장은 공수처법상 수사 대상입니다. 공수처법은 2조(정의) 고위공직자 가운데 '장성급 장교'를 포함합니다. 공군본부 법무실장의 계급은 보통 대령이었지만, 대령이었던 전 실장이 올해 1월 준장으로 진급하면서 공수처 수사 대상이 된 것이죠.

공수처로 넘어온 공, 공수처의 선택은


공수처는 국방부에서 통보 받은 사건에 대해 현재 이첩 여부를 검토 중입니다. 공수처는 검찰과 달리 사건을 통보 받았다고 해서 모두 '입건'하지 않습니다. 다른 기관으로부터 사건을 이첩 받거나 고소·고발 사건이 들어오면 '사건 수리번호'를 매겨 사건분석조사담당관에게 넘깁니다. 사건분석조사담당관은 사건을 초기에 분석하고 검증·평가해 수사 개시 여부를 판단하는 역할을 하지요.  

김진욱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장. 이한형 기자
공수처의 사건사무규칙에 따라 공수처는 공군 A중사 사망사건의 부실수사 의혹에 대해 통보를 받은 날부터 60일 이내에 서면으로 해당 수사기관에 수사 개시 여부를 알려주면 됩니다. 60일이라는 시간이 있지만 공수처는 국민적 관심이 큰 사건인만큼 더 빠른 판단을 위해 국방부에 추가 자료도 요청한 것으로 전해지고 있습니다. 공수처는 신속한 결정을 하기 위해 노력하면서도 피의자들의 공수처 수사 요구에 대해 불쾌한 기색이 역력합니다. 공수처 관계자는 "국방부 검찰단은 정상적으로 수사를 진행하면 되는 상황이고, 공수처는 법대로 이첩 여부를 검토 중인데 엉뚱하게 공수처 핑계를 대면서 아전인수 하는 것이 아니냐"며 "공수처는 주어진 권한 안에서 직접수사 여부를 판단할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그도 그럴 것이 피의자들이 공수처법을 방패 삼아 수사를 지연시키고 있다는 지적이 만만치 않게 나오고 있어서입니다. 일반인보다도 법적 조력을 더 잘 받을 수 있는 고위공직자들이나 법조계 전문가인 검사들이 이같은 행위를 일삼고 있는데 분노가 치미는 것입니다. 한 법조계 관계자는 공군 부사관 성추행 사건 은폐 의혹과 관련 "전 실장에 대해 공군판 우병우, 법꾸라지가 아니냐는 얘기가 심심치 않게 나온다"고 전했습니다.

전 실장 뿐 아니라, 이성윤 고검장과 이규원 검사도 그랬습니다. 이 고검장은 중앙지검에서 수사를 받고 있을 때 아직 자리도 잡지 못한 공수처로 사건을 이첩해야 한다고 강하게 요청했고, 이첩이 정리돼 검찰에서 수사가 진행되고 있는 상황에서도 공수처 조사를 받겠다고 주장하기도 했습니다. 이 검사의 경우 윤중천 면담보고서 사건은 공수처에서, 명예훼손 사건은 중앙지검에서 두 갈래로 수사기 진행되고 있는 상황에서 공수처에서 소환 조사를 두 번이나 받았으니 중앙지검에선 조사를 받지 않겠다고 하기도 한 것으로 전해지고요.

전문가들은 공수처로 회피하고자 하는 이들의 사건일 수록 그들의 의도를 파악해 보다 빠른 판단을 해야 한다고 강조합니다. 피의자들 말에 휘둘릴 필요는 없지만, 수사 지연을 초래할 수 있는 어떠한 이유도 되지 않기 위해서 말입니다. 양홍석 변호사는 "피의자가 공수처의 결과가 나오기 전까지 소환 조사를 받을 수 없다는 건 말도 안되는 주장"이라면서도 "국방부 검찰단으로선 공수처가 수사를 할 지 안할 지 명확하지 않은 상황에서 당사자가 불응하면 진행하기 어려운 상황일 수 밖에 없다"고 설명합니다. 피의자가 포렌식 참여를 하지 않고 있는데 그 이유를 공수처법을 대니 정당한 이유가 없다고 단정하기도 어려워 무턱대고 진행하기 어렵다는 것이지요.

유족 측은 국방부 검찰단이 계속해주길 바랍니다. 신속하게 압수수색 영장이 나와 압수수색을 진행했고 포렌식 조사와 소환 조사가 이뤄지면 되는데 공수처가 가져가게 될 경우 어찌됐든 시간이 지체되서이지요. 무엇보다 전 실장이 수사기관으로 공수처를 원했다는 것 자체를 봤을 때 의도는 모르겠지만 그의 바람대로 흘러가지 않길 원하지 않고 있습니다. 유족 측을 대리하는 김정환 변호사는 "수사가 어디까지 올라갈 지 모르겠지만 지금 이 상황에선 전 실장이 국방부 검찰단의 조사를 받으면 끝내는 일이 아니냐"면서 "국방부 장관이 의지를 갖고 조사한다는데 항명 소리까지 들어가면서 공수처 수사 대상이다고 하니 장관 욕 먹이고 공수처는 피난처냐 욕 먹이는 처사로, 이해하기 어렵다"고 일갈했습니다.

공수처는 인력을 계속 충원하며 자리를 잡고 있는 상황에서 밀려드는 고소고발 건을 선별하는데만해도 시간이 한참 걸리고 있습니다. 지난 2일 기준 공수처의 수리사건만 1774건이 접수됐습니다. 이 가운데 현재 공수처가 직접 수사하기로 하고 '입건'해서 알려진 건 10건인데 일부는 이 마저도 수사에 착수했다고 보기 어려울 정도고요. 새롭게 자리잡는 상황에서 물리적 한계와 피의자들의 피난처냐는 비난까지 겹쳐 괴롭겠지만 사건의 특성상 조금 더 신속한 판단을 내려야 할 때라고 보여집니다. 공수처로 회피하고자 하는 이들의 의도를 파악하고 공수처의 위상을 지키기 위해서라도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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