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종률의 도쿄 레터]日 택시 기사의 쓴웃음 "아내는 올림픽 말고 BTS 보겠대요"

도쿄올림픽 선수단과 취재진은 비행기에서 내려 나리타 공항에 발을 내딛자마자 환영 인사보다 코로나19 관련 서류 심사와 타액 검사를 받아야 한다. 사진은 19일 입국한 한국 선수단이 대회 조직위원회 관계자에게 서류를 제출하는 모습. 도쿄=노컷뉴스

 올림픽 현장을 다니면서 느낀 점은 공항에서부터 대회를 단번에 실감할 수 있다는 겁니다. 비행기에서 내려 수속을 마치고 개최 도시 입국장에 들어서면 곳곳에 올림픽 마크와 마스코트를 볼 수 있어 '아 곧 대회가 열리는구나' 생각이 저절로 듭니다.
 
 특히 형형색색의 대회 유니폼을 입은 자원 봉사자들의 환한 미소가 선수단과 취재진을 반겨줍니다. "환영한다"는 인사와 함께 친절한 안내로 고된 여행에 지친 관계자들을 위로합니다. 처음 올림픽을 취재했던 2008년 중국 베이징부터 영국 런던, 러시아 소치, 브라질 리우데자네이루까지 피부색과 인종은 달랐지만 그들의 미소만큼은 같았습니다. 참, 2018년 평창동계올림픽은 말할 것도 없었죠.

 하지만 올해 일본 도쿄는 완전 딴판이었습니다. 도대체 올림픽이 열리는 도시인지 의문이 들 정도로 분위기를 느낄 수 없었습니다. 코로나19 확산으로 조심하는 상황임을 감안해도 앞선 도시들과는 너무 달랐습니다.

 우선 비행기에서 내리자마자 관계자들은 입국 서류 심사와 코로나19 검사부터 받아야 합니다. 출국 전 96시간과 72시간 내 이뤄진 코로나19 검사 음성 확인서를 제출한 뒤 코로나19 검사를 위해 타액(침)을 제출해야 합니다. 검사 결과를 받기까지 3~4시간을 대기해야 하고, 음성으로 확인이 돼야만 짐을 찾으로 갈 수 있습니다.

 환영의 인사보다 일본의 올림픽 코로나19 방역 대책 애플리케이션인 옷차(OCHA)를 보여달라는 말부터 들어야 하는 도쿄 입국장입니다. 서류 심사와 코로나19 검사까지 축제의 들뜬 분위기보다는 무겁게 내려앉은 공기가 가득합니다. 혹시나 양성 반응이 나올까 노심초사하는 선수단과 취재진, 도쿄올림픽 조직위원회 관계자들까지 긴장한 기색이 역력합니다. (실제로 유승민 국제올림픽위원회(IOC) 선수위원 겸 대한탁구협회장은 이 검사에서 코로나19 양성 반응이 나와 도쿄 현지 호텔에서 자가 격리 중입니다.)

나리타 공항에 입국한 대회 관계자들이 코로나19 타액 검사를 받기 위해 키트를 제공받는 모습. 도쿄=노컷뉴스

 지루한 기다림의 시간 끝에 드디어 음성 판정이 나왔습니다. 아이디 카드를 받고 짐을 찾아 입국장 밖으로 나와도 올림픽 분위기는 찾아보기 어렵습니다. 안내하는 일본 자원 봉사자는 셔틀 버스로 안내하며 자신을 따라오라는 말만 하더군요. 공항 밖 훅 끼치는 더위를 말하자 그제야 "습도도 너무 높다"고 겸연쩍은 미소를 지었습니다.

 셔틀 버스에 올라 조직위가 지정한 택시를 타기 위해 도쿄 도심 터미널에 내렸습니다. 그러나 터미널에서는 올림픽 마크나 마스코트 '미라이토와'를 눈씻고 찾아봐도 없었습니다. 올림픽 한참 전부터 있었을 법한 도쿄 홍보 광고판만 눈에 들어왔습니다.

 "도쿄에 온 것을 환영한다"는 말을 직접 들은 것은 미디어 호텔로 향하는 조직위 지정 택시 안에서였습니다. 40대의 택시 기사 신타로 미즈노 씨에게서였습니다. 신타로 씨는 유창하진 않지만 친절한 영어로 "웰컴 투 도쿄"라고 인사를 건넸습니다. 휑한 입국장 풍경의 이질감에 다소 뜨악했던 마음이 그제서야 좀 풀어졌고, 그 이유도 들을 수 있었습니다.

 신타로 씨는 도쿄의 중심부를 지나면서 "원래 코로나19가 아니었다면 여기서 시민들이 모여 올림픽 경기를 응원하며 즐겼을 것"이라고 한숨을 내쉬었습니다. 그러니까 우리의 시청 앞 광장 쯤 되는 곳인데 역시 올림픽 오륜 마크나 대회 마스코트는 보이지 않았습니다. 신타로 씨는 "일본 사람들은 올림픽에 대해 거의 관심이 없다"고 하더군요. 코로나19로 긴급 사태까지 선언된 마당에 올림픽이 웬 말이냐는 겁니다.

공항에서 셔틀 버스로 이동해 미디어 호텔로 가는 택시를 타기 위해 내린 도쿄 도심 터미널. 그러나 올림픽 마크나 마스코트는 찾아볼 수 없다. 도쿄=노컷뉴스
일본 택시 기사 신타로 씨가 말한 도쿄 도심부. 그러나 역시 올림픽 분위기는 전혀 느낄 수 없다. 도쿄=노컷뉴스


 자신에 대해 신타로 씨는 열혈 스포츠 팬이라고 했습니다. 한국이 이번 대회 어떤 종목에서 금메달을 딸 것으로 예상하느냐는 등 나름 관심을 보였습니다. 그러나 극히 일부만이 올림픽에 신경을 쓴다는 겁니다. 신타로 씨는 "아내는 올림픽보다 BTS나 한국 드라마에 더 관심을 갖는다"고 귀띔했습니다. 일본 국민의 70% 안팎이 올림픽 개최를 반대한다는 여론 조사가 실감이 나는 것 같았습니다.

 이번 올림픽은 당초 지난해 개최될 예정이었지만 코로나19의 세계적 대유행으로 1년 연기됐습니다. 그러나 여전히 일본에 확진자가 하루 수천 명씩 쏟아지고 전 세계적으로도 코로나19 사태가 심각한 상황. 올림픽을 다시 연기하거나 취소해야 한다는 의견이 주를 이루지만 국제올림픽위원회(IOC)와 일본 정부는 개최 강행을 결정했습니다. 대회가 임박하면서 남아프리카공화국 축구 대표팀 선수 2명은 물론 대회 관계자들까지 19일까지 58명의 확진자가 나와 불안감은 더 커지고 있습니다.

 지금까지 현장 취재를 했던 올림픽 중 최악의 대회는 2014년 소치동계올림픽이었습니다. 수십조 원을 쏟아붓고도 펄펄 끊는 물만 나오는 숙소 등 제대로 준비를 하지 않아 대회 전부터 여론의 질타가 쏟아졌던 올림픽이었습니다.

 상황은 다르지만 이번 도쿄올림픽이 최악의 기억을 새롭게 바꾸지 않을까 하는 불안감이 엄습하는 이유는 뭘까요? 아직 대회는 시작도 하지 않았는데 벌써부터 걱정할 필요는 없다는 생각을 밀어내는 이 기우와 노파심은 무엇일까요? 3일 자가 격리를 해야 하는 호텔 창문 밖으로 후텁지근한 도쿄 하늘을 바라보는 마음이 무겁기만 합니다.

p.s-참고로 그동안 취재했던 올림픽 당시 분위기를 전할 수 있는 사진을 첨부해봅니다. 선수단이나 관계자, 자원 봉사자, 관중이 마음껏 대회를 즐기고 기념하는 모습을 쉽게 볼 수 있었습니다. 과연 이번 대회는 그런 게 가능할까요?

2016년 리우데자네이루올림픽 당시 입국한 대회 관계자와 자원 봉사자들이 기념 촬영을 한 모습. 리우=노컷뉴스
리우올림픽 양궁 경기가 끝난 뒤 사상 최초 전 종목 석권을 이룬 한국 선수단과 자원 봉사자, 관계자들이 함께 기념 촬영을 한 모습. 리우=노컷뉴스
2014년 소치동계올림픽 당시 입국장에서 환영 인사를 보내던 자원 봉사자들. 소치=노컷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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